인.물.평.론 2008.12.11 17:01

살다보면 누구나 한번쯤 매카시즘이라는 용어에 대해 들어본다. 매카시즘의 용례에 대해 우리나라처럼 폭넓게 구사되고 인용되어지는 경우는 참 보기 어려울 것이다. 역사적 배경이야 어찌되었든 간에 정신적 방어기재술(mental defense mechanism)을 구사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에게는 매카시라는 사람의 존재는 퍽 다행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겠다.

역으로 우파들에게는 구구절절한 반론따위 보다는 "너 매카시지?"하는 손가락질 하나가 더 효과적으로 먹히게 되었다. 이런 매카시같은 꼴통 새끼 같으니라구..라는 단정에는 빨갱이를 빨갱이라 부르지 못하고, 주사파를 주사파라 부르지 못하는 현실과도 직결된다. 그래서 170석의 거대 의석을 차지한 한나라당 병신들의 사모곡이 구슬퍼지는 이유가 된다.

혹시라도 이런 매카시 운운 소릴 듣게될까봐 미리 포석을 두시는 분들도 보인다. 반통일 세력이라는 힐난보다 매카시라는 미국의 한 시골 촌구석대기 상원의원과 동일선상에 놓여지는 수치를 조금이라도 덜어볼까 노심초사하는 머저리들이 우파를 대변한답시고 비싼 혈세를 받아 쳐먹고 있는 것이다.

이 글을 쓰는 이유는 매카시, 또는 매카시즘에 대한 오해를 조금이라도 풀어보고자 함에 있다. 매카시가 누구이며, 어떤 사람이고, 무슨 짓을 했는데 등등에 대한 구구한 설명은 이상돈 교수가 아주 정리를 잘하신 노트가 있어 굳이 여기서 다시 설명할 필요가 없겠다. (☞이상돈 교수의 매카시즘 요약)

다만, 李교수는 당시 피해자(?)였던 래티모어(Owen Lattimore)가 『중상모략에 의한 시련(Odeal by Slander)』이라는 저서에서 '매카시즘'을 최초로 거론했다고 기술하고 있는데, 이는 사실과 조금 다르다. 매카시즘을 최초로 사용한 사람은 래티모어가 아니라, 워싱턴 포스트지의 카투니스트 Herbert L. Block이었다.
뭐 어쨌든 좋다. 용어를 누가 먼저 사용했는지는 그리 중요한 사안은 아니니 말이다. 매카시가 역사의 무대에서 완전히 사라졌다가 최근에 재평가 받게 된 이유는 李교수가 설명했지만 1995년 베노나 프로젝트(Venona Project)라는 미국의 1급 기밀문서가 공개되면서 부터이다. (물론 국내외 좌빨들은 이 기밀문서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

그 전까지 매카시는 미국 민주주의 역사를 후퇴시킨 가장 수치스러운 정치인 중 하나로 인식됨이 보통이었을게다. 반세기가 지나 뚜껑을 열고 보니, 사실은 매카시가 지목했던 상당수의 정치인, 관료인사들이 소련의 간첩이었거나 그들과 내통한 사람들이었거나 공산주의자였음이 밝혀졌다.말 나온 김에 베노나 프로젝트 파일이라는 것을 구경이나 한번 해보자 (☞여기를 클릭)
                                                       <거미줄 처럼 얽힌 美 행정부내 간첩망>

특히 매카시즘이라는 용어를 즐겨 애용한 래티모어는 사실 그 자신의 공산주의자 경력에 대한 혐의를 벗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위증죄로 기소되기도 했다. 전직 소련 장군이었던 알렉산더 바민(Alexander Barmine)은 래티모어가 실제로 소련 군수사국원이었다는 사실을 증언한데 이어, 한때 공산주의자였던 번디즈(Louis Bundez)도 타이딩스 위원회의 청문회에서 래티모어가 공산주의자였다는 사실을 증언했기 때문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시의 미국내 리버럴리스트들은 이를 인정하지 않았다.

베노나 프로젝트 파일이 공개되자, 래티모어의 주변에는 소련 간첩들이 우글거리고 있음이 증명되었다. 몇몇 인사들은 여전히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거나, 함구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매카시즘을 뒤엎고 자신을 궁극적으로 변호하는데 실패했다. 李교수도 밝혔다시피 극동문제 전문가 래티모어의 경우 한반도를 포기하고 소련에 넘기자고 주장했던 인물이다. (오늘날 우리 종북좌빨들의 소망이기도 하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는 왜 하고 많은 미국 의원들 중 하필이면 무명의 매카시가 이런 악역을 담당했는지 알아볼 필요가 있다. 명백한 증거는 없지만 매카시 의원의 정보는 당시 FBI 국장이었던 후버(John Edgar Hoover)가 제공했다는 설이 꽤 설득력있게 들린다.

매카시가 유명해지게 된 계기인 1950년 2월 웨스트 버지니아의 휠링(Wheeling)연설에서 그는 서류뭉치를 들어보이며 자기 손 안에는 미 국무부에서 근무하고 있는 205명의 빨갱이들 명단이 들어있다고 주장했다. 국내 한심좌빨 학자들께서는 이 서류는 명단이 아닌 술집 외상장부라고 희화화 하면서, 매카시의 새빨간 구라임을 강조해왔다.

그러나 실은 이 명단은 실존하고 있었으며, 1957년 FBI의 메모에는 단지 한명만 더 추가된 206명의 간첩 혐의자들의 명세가 적혀있었다. FBI는 2차대전 중 미국 행정부내에 암약중인 5명의 간첩을 파악했고, 1946년 Elizabeth Bentley 일당이 일망타진 되면서 81명이 추가되었다. 나머지는 베로나 프로젝트의 진행과정에서 파악된 인물들이다.

이 명단들은 FBI가 제공하지 않는 한, 무명의 상원의원이었던 매카시가 알 수도 만져볼 수도 없는 내용들이었다. 후버는 매카시와 함께 방송에 출연하며 지지활동을 하는 등 매카시가  상원의원에 재선되도록 도왔다. 젊고 혈기왕성한 대신 잘나빠진 WASP 기득권 세력에 반감을 가진 아일랜드계 촌뜨기 의원을 이용해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도모하고자 했던 것이다. 매카시는 후버의 전략에 충실히 협조했지만, 후버가 기대한 이상의 오버를 하는 바람에 실족하게 된다.

즉, 매카시 상원의원은 FBI의 얼굴마담이었을 뿐이고, FBI가 제공한 자료로 한바탕의 굿판을 신명나게 벌였을 뿐이었다. 당시 소련과 중국문제, 한국전쟁의 발발 등 긴박했던 국제정세는 이 푸닥거리에 미국 국민들이 몰입하도록 열심히 추임새를 거들었으며, 매카시와 공화당은 열렬한 지지를 받게 된 것이다. 마크 랜디스(Mark Landis)가 지적했다시피, 매카시는 적절한 순간에 적절한 장소에 있었던 아주 적절한 사람이었다.

매카시나 후버가 반공주의를 전략적으로 활용한 것은 사실이지만, 제2차 세계대전 중 미국이 외교전략으로 채택했던 친소정책의 후유증이자 반작용이기도 하다. 이러한 대대적인 숙정작업이 없었더라면, 미국이란 사회가 어찌되었을지 장담하기가 어렵다. 물론 그 과정에서 정치적, 사회적 자유가 위축되고 기본권이 제약되는 부작용은 피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산주의의 급격한 팽창과 미국 행정부내의 광범한 간첩단 적발 사건은 미국 국민들로 하여금 "명백하게 현존하는 위험"이 발생할 때까지 마냥 기다릴 수가 없으며 지금이 바로 그때라고 인식하게 만들었다. 그러한 인식은 연방대법원과 의회, 행정부가 공유하였던 고로, 당시의 각종 판례와 정책으로 확인해주고 있을 뿐만 아니라, 미국 국민 스스로가 매카시즘을 선택하고 지지하였던 것이다.


<덧>
FBI가 매카시를 지원했다는 사실은 관련자들의 증언으로 어느정도 확인이 된 상태이다. 매카시의 초대 조사팀장인 도널드 서린은 전직 FBI 직원이었으며, 다른 주요 참모들도 전직 FBI 직원들이 대부분이었다고 한다. 매카시 위원회의 사무장이었던 루스 와트는 자신이 FBI로부터 상당한 량의 정보를 지속적으로 제공받았다고 고백했다. 윌리엄 설리번은 매카시 청문회 당시 FBI는 매카시가 이용한 모든 자료를 제공해주었다고 증언했다.

결국, 매카시의 자료가 사실이냐 아니냐의 여부는 그가 제공받은 FBI 자료의 진위성 문제로 넘어가게 된다. 매카시의 주장 중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지거나 과장된 것으로 확인된 정보는 후버 국장이 고의로 잘못된 정보를 제공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설이 있다. 하나는 사회적 파장을 크게 해 국가적 이슈를 극대화 하려는 시도에서 비롯되었고, 하나는 진성 간첩들을 압박하고, 그들과 연결된 관련자들의 네트워크를 단절하여 고립시키려는 의도가 있었다는 것이다.

어쨌든 그럼에도 불구하고 후버의 이러한 도박은 보기좋게 성공했고, 매카시는 그 대신에 총알받이가 된 셈이다.

Posted by 眞明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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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티안무 2008.12.11 17:0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런 의미에서 현 각하께서 차기 정부를 위한 질좋은 거름이 되기를 바랄 뿐입니다.

    • 眞明行 2008.12.11 20:3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잘하실까요.. 희망의 싹은 노랗습니다만.. 내년까지 더 지켜보는 것도 좋겠지요. 기업가 출신들은 매사에 좋게좋게 해결하려는 타성이 몸에 배여서 문제입니다. 정치도 그런 식으로 하면 안될텐데..

  2. 리드 2008.12.11 17:0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마초'라는 말은 스페인어 'Machismo'의 약어인데, 원래는 그냥 '남자다운'이란 뜻밖에 없다죠.
    마리 앙투와네트도 '빵이 없으면 고기를 먹으면 될텐데'라는 말을 한 적이 없다고 합니다.

    • 眞明行 2008.12.11 20:3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역사란 알고 보면 호사가들의 뻘소리로 윤색된 내용들이 많지요. 이런게 많을수록 저같은 마이너 아마츄어들이 창궐하는 것이고요.

  3. organizer 2008.12.11 17:0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공부하지 않으면 모를 그런 사실들이군요... (감탄 그 자체..)

    VERONA인가 뭔가 하는 공개된 문서는 '먹칠'이 과도하군요..^^ <--- 여전히 뭔가를 숨기고 있다는 소리로 보입니다.

  4. 2008.12.11 17:3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 眞明行 2008.12.11 20:3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그런 이성이 지배할 정도의 세상이었으면 공산주의가 태동하지도 않았겠지요. 모순을 천착하고 해결한다고 일어난 사람들이 또다른 모순을 낳고...결국 원점으로 다시 돌아오는게 또 역사가 아닌가 합니다. 말씀하신대로만 되었더라면 얼마나 좋았겠습니까만.. 당장 자기집 안방에 도둑이 준동한 상황이라 그럴 준비나 여유가 없었겠지요.

    • 미친과학자 2008.12.11 20:4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도둑을 잡기위해 허둥지둥 난리치다 보니 애꿏은 집안식구들이 도둑잡기 위해 휘두른 몽둥이에 맞은 꼴이군요....확실히 방법론적인 미숙함이 문제가 되지 않나 싶습니다.

    • 眞明行 2008.12.11 21:0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그때 당시에는 그런 무식한 방법이 아니면 아마 소탕이 어려웠을겁니다. FBI는 간첩명단을 손에 쥐고 있었지만, 그것을 FBI의 명의로 공개적으로 얘기하진 않았지요. 이것은 후버 국장이 의회에서 한 연설문에도 나오는데요, 안보사범과 일반 범죄자는 다르며, 접선자들, 정탐목적, 정보원, 교신방법등을 알아내는 것이 그들을 체포하고 공개하는 것보다 더 중요하다고 했지요.

      후버는 간첩 관련자들에게 교묘히 압박을 하면서 그들의 네트워크를 단절시키는데 매카시를 이용한 것입니다. 매카시가 무식하게 휘젓고 다니는 동안 진짜 간첩들은 부산하게 움직였을 것이고, FBI에게 더 용이하게 이것을 포착할 수 있었겠지요. 즉, 떡밥을 던진 것입니다.

    • 미친과학자 2008.12.11 21:0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그런 맥락에서 보면 간첩 잡았다고 동네방네 자랑하면서 TV에 울며 사죄하는 여간첩 사진까지 내보내는 얼마전의 사건은 병짓이 확실하군요..ㅡㅡ;;

  5. 2008.12.11 17:4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 眞明行 2008.12.11 20:4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네.. 좋은 지적입니다. 실제로 베노나 프로젝트 문서의 신빙성에 대해 의문시하는 학자들 (대표적으로 William Kunstler)같은 사람들이 몇몇 있습니다. Alger Hiss의 경우 죽기전까지 자신의 결백을 입증하려 별 짓을 다했다고 합니다.

  6. reske 2008.12.11 18:1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일전에 모 신문에서 매카시가 간첩으로 지목한 사람들 중 실제 간첩들도 분명히 있었다고 하는 이야기를 읽은 적이 있었는데, 음 그런 사실이 있었군요..

  7. 한단인 2008.12.11 18:2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음..그럼 궁금한게 있는데요. 57년 FBI 문건에서 1명 추가된 206명의 간첩혐의자를 추려냈다고 말씀하셨는데 그 인원에서도 실제 간첩으로 드러난 사람은 몇명인지 알 수 있나요? 간첩혐의자가 곧 간첩인 건 아니니까요.

    포스팅대로라면 매카시가 뒤집어 쓴 면이 없잖겠습니다만, 언어란 모종의 계기로 의미를 부여받는 것이기 때문에 매카시즘이란 용어의 함의가 해소되자면 실제 간첩인자와 그렇지 않은데 의심을 받아 사회적 제약을 받은 사람들의 비율이 문제가 되지 않겠나 싶습니다.

    뭐, 진명행님 포스팅은 매카시즘에서 매카시란 인물의 이름이 사용되는 것이 부당하다는 것이니 용어자체는 수정이 있어야하긴 하겠습니다만,,

    • 한단인 2008.12.11 18:3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후버가 기대한 이상의 오버를] 에 대해서는 전 자세히 아는바가 없는데 매카시즘의 언어적 함의에 대해서는 스스로가 초래한 오버도 포함이 되려나요?

    • 미친과학자 2008.12.11 18:4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개인적으로는 "후버가 기대한 이상의 오버"가 미국사회에 있어서 지나칠 정도의 사상비판 + 사회적 배타성을 만들어 버린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만...
      매카시가 나중가서는 아이젠하워까지 공산주의자라고 비난한 적이 있다는데 그게 사실이라면.....그점에 한해서는 오버질 + 자폭이 맞는거겠죠.

    • ghistory 2008.12.11 20:3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군부 전체를 공격한 게 몰락의 계기였다고 알고 있습니다만…

    • 眞明行 2008.12.11 20:5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군부전체와 자신이 속한 상원의원 전원에 대해 조사해보자고 했지요. 그때까지 좋다고 손뼉치던 양반들이 자신에게 칼 끝을 겨누자 그제서야 제 정신이 들었던 모양입니다. 하지만 우리나라도 사실 군내에 좌익인사들이 상당히 많았지 않습니까? 행정부가 저 모양인데 매카시가 옳았는지 틀렸는지 뭐라 장담은 못하죠.

    • 미친과학자 2008.12.11 20:5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불구경하다가 제대로 데인 꼴이군요....확실히 당시 미국사회에 있어 공산주의에 대한(이라기 보다는 정확히는 소련이겠지만) 공포심이 지나치게 작용한 부분이 있지 싶습니다.

    • 眞明行 2008.12.11 21:0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간첩들이 행정부와 의회를 장악하고 있었다면, 그것은 지나친 대응이라고 볼 수는 없을지도 모르죠. 당시 국제정세는 누가 봐도 공산주의 세력의 급팽창에 두려움을 느끼지 않을 수가 없었겠죠

  8. 2008.12.11 21:1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9. Eraser 2008.12.12 00:4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메카시가 '빨간색 벗기기' 에 열중하다가 상원의원 자리도 내어주고 만거군요.. 그것보다 미의회 상원의원이라는 사람도 결국은 FBI 얼굴마담 + 빨간역적 사냥용 스페어...일줄은 -.,-

    • 眞明行 2008.12.12 11:0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은밀히 덕을 본 사람도 많았을 것입니다. 직장이나 사회생활을 하다보면 매카시나 후버를 닮은 사람들을 꽤 많이 보게됩니다.

  10. Eraser 2008.12.12 00:5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나저나 핑백의 '바보'께서는 또 재미없는 떡밥질이나 하고 있으시군요. 저러면 좋을까나..)

  11. 銀王 2008.12.12 10:4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앨저히스에 대해 첨언하자면 카이버드의 주장은 베노나 프로젝트를 살펴볼때 앨저히스가 아닌 와일더푸트가 간첩(코드명 알레스)이었을 가능성이 크다이며

    http://news.hankooki.com/lpage/world/200704/h2007040819460322470.htm

    얼 헤인즈는 이에 반박하는 주장을 실었는데

    http://jeffersonflanders.wordpress.com/a-comparison-alger-hiss-wilder-foote-and-ales/
    http://hnn.us/articles/37456.html

    카이버드의 주장에 대해선 Gorsky가 앨저 히스가 돌아온 걸 몰랐을 가능성이 크고 간첩단의 정보전달체계 때문에 사실전달이 늦어졌을 가능성이 크며 와일더푸트가 알레스라고 한다면 더 모순되는 부분이 많다고 얘기하고 있습니다

    • 眞明行 2008.12.12 11:0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銀王님. 좋은 자료에 감사드립니다. Hiss만큼 논란이 많았던 인물들도 드물죠. 2005년에 출간된 G. Edward White의 "Hiss Alger Hiss's Looking-Glass Wars"을 해외주문한 상태인데 아직 책을 받아보지 못했습니다. 조사해주신 자료는 잘 읽겠습니다.

  12. 돈키호테 2008.12.12 11:4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시대상황을 보면 이해할 수도 있긴 하지만 좋아할 수는 없는 사람이네요.

    10명의 사람 중 1명이 간첩이라고 했을 때.

    1명을 잡기 위해 가장 쉬운 방법은 10명을 다 족치는거네요.
    그건 9명의 아무 잘못도 없는 사람이 다치는겁니다.

    간첩보다 더한 악질 범죄자죠.

    그리고 당시의 미국은 소련이라는 전무후무한 적을 견제해야 할 필요가 있었지만.
    지금의 한국에 그 정도 적수가 있는지는 의문이네요. (중국이 적수로 부상할 수도 있긴 하지만...)

    경제력으로나 군사력으로나 북한이 한국의 적수라고 보기엔 어렵죠.

    • 眞明行 2008.12.12 12:0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포스팅 본문의 내용은 10명의 사람중 9명이 간첩이고 1명이 아니라는 얘깁니다. 반대로 말씀하신듯 하군요. 평시라면, 1명씩 조사해서 솎아내는 것이 맞겠지만, 종양의 번식속도가 면역세포의 증식보다 빠를 때는 멀쩡한 생살을 도려내는 경우도 무시할 순 없겠지요.

      정부 한복판에 간첩이 득실거리는 세상이 온다면 누구라도 그렇게 했을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미국은 매카시 이전에도 간첩법과 반역선동법을 적용해 800명의 좌익분자들에 대해 단칼로 목을 친 사례도 있었습니다.

  13. 2012.08.03 01:4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14. 2012.08.03 01:5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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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 2012.08.03 01:5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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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 2012.08.07 16:4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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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7. 2012.08.07 16:5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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