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평.론 2009.01.02 00:07
☞ Vermin씨의 블로그에서 트랙백 : 본격 김구=미래에서 온 터미네이터설 : 외수횽은 빨리 쳐보십니다

치하포 사건이란  백범일지에 의하면 1896년 3월 8일 김구가 황해도 안악군 치하포의 한 여관에서 일본 육군중위 쓰치다 조료(土田讓亮)를 살해한 후 체포되어, 사형을 언도 받은 사건을 말한다. 문제는 백범일지가 이 사건을 의거에 가까운 영웅적 행동으로 자화자찬을 하고 있음에 반하여, 당시 재판기록인 공초문서라든가 일본측 1차사료에 의하면 상당 부분이 사실과 다르다는데 있다.

가장 논란이 많은 부분이 김구가 살해한 쓰치다(土田讓亮)의 정확한 신분이다. 현재로서는 백범일지 외에 "육군중위설"을 입증할만한 자료는 없다. 공초기록이나 다른 자료에도 육군중위를 거론하는 대목이 없다. 정황상으로도 "일군 장교"가 "그렇게 많은 돈을 지니고" 고작 변방을 염탐하기 위해 위장 침투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국내 학자들도 육군중위설을 그대로 인용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다만, 도진순(1997)에 의해 쓰치다(土田讓亮)를 계림장업단(鷄林奬業團)과 연결시키려는 시도가 있었다. 어떻게하든 쓰치다의 신분을 일본의 국익을 위해 복무하는 세작으로 둔갑시켜, 김구의 살인을 정당화시키고자 애쓴 흔적이 보인다.

그러나 도진순의 연구는 몇가지 문제가 있다. 첫째는 계림장업단이 설립시기를 오해하고 있다. 둘째는 계림장업단의 임무와 설립목적에 대한 부정확한 서술이 보인다. 셋째는 인용한 논거의 해석적 오류이다. 첫째 + 셋째의 지적은 같이 연관시켜 생각해 볼 문제이다.
도진순은 "동경 소재 일본 외무성 외교사료관의 자료에 의하면 쓰찌다는 계림장업단에 소속되어 있었다."고 확언한다. 그런데 그 근거를 ③번 밑줄에서 찾고 있는 것 같다. 계림장업단이 일본 제국주의의 끄나풀이었다는 식의 복선을 깔아준 후 "1896년 치하포사건 직후 평양 지역에 일본 행상인은 총 73명이었는데, 모두 계림장업단 단원이었다"  따라서 쓰치다도 그 단체의 일원이었을 것이라고 추리를 한 것이다. 결국 김구가 죽인 쓰치다는 죽어 마땅한 놈이었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을까?
그러나 도진순이 인용한 위 자료는 표지와는 달리 1896년 6월 29일에 작성된 자료이다. 도진순은 치하포사건 발생 직후라 설명하고 있지만 6월말과 3월초는 시간적으로 매우 많은 차이가 난다. 계림장업단은 조선 내지에 진출한 일본 행상인들의 상권과 신변을 보호하기 위해 1896년 4월 29일 福井三郞 등 48명이 인천에서 최초로 조직한 단체이다. (註: 4월 29일은 인천주재 일본영사관으로부터 인가를 받은 날이며, 정식출범은 5월 17일이다. 출범일 당시 단원은 219명)

이 단체가 37명의 단원으로 평양에 제1대구(大區)를 조직한 것은 그로부터 한달 뒤인 1896년 5월 22일이었다. 따라서, 쓰치다가 살해된 1896년 3월 8일은 평양에 계림장업단이란 조직이 있지도 않은 때였다. 3월 8일이면, 일본 행상인들이 본국의 훈령을 받고 인천으로 한참 철수 중이었을 때다. 쓰치다 역시 조선인 복장으로 변장하고 철수를 하다가 황해도의 한 여관에서 봉변을 당한 것이다.

도진순은 계림장업단의 설립 목적이 ①일본 상인들의 자위(自衛)를 도모하고 상권(商權) 확대와 군사관계를 포함한 광범위한 정보를 모집하는 조직이었다라고 하지만, 이는 바른 설명이 아니다. 계림장업단의 설립목적과 임무는 시기별로 다르기 때문이다. 특히 "군사관계를 포함한 광범위한 정보"라는 부분을 눈여겨 볼 필요가 있는데, 도진순이 좀 오버한 게 아닌가 싶다.

계림장업단이 수집한 정보는 군사관련 정보가 아니라, 상황(商況) 및 민정(民情)과 관련된 정보다. 게다가 이런 정보수집 임무는 1897년에 이 단체가 일본 정부의 보조금을 받으면서 관변화될 무렵에 부여받은 것이므로, 초기 상황을 설명하기에는 매우 부적절한 부분이 있다.

계림장업단은 단체의 위세와 규모가 커지면서 재정적인 압박을 받게 되자, 일본정부에서 보내주는 보조금에 연연하다가, 정치색을 띤다는 이유로 1898년 3월부로 보조금이 중단되면서 해체위기에 직면한다. 계림장업단의 필요 이상의 오버질에 넌더리가 난 일본 영사 및 공사들이 일본 정부에 비토를 하기 시작한 것이다.

대표적으로 加藤增雄  일본공사는 "종래의 경험에 의하면, 日·韓人간의 갈등은 십중팔구 日人의 도발적인 행위로 말미암아 일어난다. 該團(계림장업단)의 조직 중 자위 혹은 방어 등의 핑계로 거기에 일종의 의미를 함축시키려는 것은 오로지 團의 성립상 필요없을 뿐 아니라 외교상으로 매우 불온한 혐오감이 있으므로 이들의 형적을 제거시키지 않으면 안된다"고 보고하면서 계림장업단의 활동범위를 매우 축소시키는 방안을 건의하였다.
Posted by 眞明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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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티안무 2009.01.02 00:1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백범일지에는 일본인의 생피를 마신 협기행각을 기술해 놓았습니다만 다행히 문초기록을 보니 그런 내용은 없더군요. (........)

    문초 내용을 보면 결국 좋게 말해 객기에 맘에 안드는 외국인을 죽인 살해행각 - 이건 김구가 후에 독립운동에 공헌을 했다 하더라도 도저히 미화할 수 없는 범죄행위겠지요.

    • 眞明行 2009.01.02 11:4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제 기억으로는 생피를 마신게 아니라, 쓰치다를 살해한 후 낭자한 피를 얼굴에다 쓰윽 묻히고, 투숙객들을 상대로 누가 나한테 까부냐? 일갈을 내치는 바람에 다들 쫄아서 벌벌 떨었다는군요. 김구의 치하포사건은 의거라기 보다는 실수에 가까웠습니다. 찬양할 일과 잘못된 일은 구분해야하죠.

      막무가내로 미화하는 분들 보면 참 안타깝다는 생각이 절로 들더군요,

    • 티안무 2009.01.02 12:2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어린이를 위한 백범일지'에는 그 인혈을 마시는 장면이 적나라하게 묘사되어 있더군요 -ㅅ-;;

      [.........추운 새벽이라 빙판이 된 땅에 피가 샘솟듯 흘렀다.나는 손으로 그 피를 움켜 마셨다. 나는 피가 뚝뚝 떨어지는 칼을 들고 방으로 들어갔다.]

      이런 구절을 얘들 보라고 집어넣는 놈들은 도대체가 뭔 정신인지 -ㅅ-;;

      http://book.naver.com/bookdb/book_detail.php?bknu=03030244&menu=cview&encrt=zMv92a150wbTmAzYMDI0NCZzZWNzdWJudW09MTE=&query=%B1%E8%B1%B8%20%C7%C7%B8%A6%20%B8%B6%BC%CC%B4%D9#middle_tab

  2. 천지화랑 2009.01.02 00:2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사실 백범일지 읽으면서도 고개가 갸웃거려지긴 했죠. 대체 일본육군 중위가 그 동네에는 왜 갔을까. -_-;;

    • 眞明行 2009.01.02 11:5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일본 육군중위설은 여러가지로 문제가 많죠. 첩자나 밀정은 대부분 언제 죽어도 아깝지 않을 말단이나 하위직급을 쓰는 것이 일반 통례라는 사실에 비추어 볼 때 말이 안되는 점이 많습니다.

  3. 한단인 2009.01.02 00:3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계림장업단의 필요 이상의 오버질]이 어떤 것인지 궁금해지는군요. 공사들이 넌더리를 낼 정도의 오바라..뭔 짓을 했길래..?

  4. 천지화랑 2009.01.02 01:3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또 이오공감 올라갔는데 이번엔 과연 얼마나 버틸 수 있을런지 궁금해지는군요. 쩌업. -_-;;

  5. Esperos 2009.01.02 03:2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한 번 뜻 있는 사람들을 모아, 전에 어떤 무리가 했듯이 모든 게시물을 반대하기를 해 보고 싶어지는군요. 그러다가 제가 이글루에서 짤리지는 않을까 걱정되기도 하지만요.

    • 眞明行 2009.01.02 11:5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말씀은 고맙습니다만.. 굳이 그럴 필요는 없을듯합니다. ^^; 단, 이글루스 운영진에게 정식으로 건의를 하거나 본사를 방문하여 취지를 설명해볼까 합니다.

  6. 반동분자 2009.01.02 08:0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친필본 그게 궁금해지는 군요... 저도 읽어보질 못했습니다.. 김구 선생은 대한민국 일반인들에게는 성역입니다.. 심지어 해방후의 행적까지도 성역이 되어 버렸습니다...항일 운동에 대한 정신과 업적은 존경하지만 모든것이 옳다고는 생각치 않습니다. 이글이 폄하의 수단이 될거라고 생각해서 적극적 옹호론으로 변질시켜서 너희들은 친일이다라는 딱지가 날라올것으로 예상되는 포스팅 입니다.......-_-;;

    • 眞明行 2009.01.02 11:5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진보주의자들도 해방 후 김구의 테러노선에 대해 비판적인 분들은 많더군요. 물론 그런다고 이승만의 가치가 올라가는 것은 아니지만, 확실히 요즘 젊은 세대들의 무비판적인 추종은 눈에 거슬리는 점이 많습니다.

  7. 제갈교 2009.01.02 08:1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까 이오공감에 올라간 것이 보였는데 지금은 내려갔네요. ;;;

    그나저나 아무리 그 나라 안에서 위대한 사람이라고 해도 빛이 있으면 어둠이 있기 마련인데, 저런 면에 일부러 정당성을 만드는 것은 좋지 않을텐데요. -_-;;

    • 眞明行 2009.01.02 11:5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1. 이오공감은 어차피 기대도 안했습니다. ^^

      2. 당연하지요. 위인을 위인시 하는 역사서술은 지양해야 한다고 봅니다.

  8. 타누키 2009.01.02 09:2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반론이 기대됩니다만 보긴 힘들겠죠...ㅡㅡ;;

  9. 천지화랑 2009.01.02 11:0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 오오 아직도 역사밸리에서 살아있습니다!

  10. 반동분자 2009.01.02 17:5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안중근의사 아들인 안준생이 변절했다고 하여 암살하려고 했고 백범일지에도 쓰여 있다고 하는데 만약 확실한 증거 없이 살인을 하려고 했다면 백범 김구선생의 한계도 보여주는 대목이라고 생각됩니다... 과연 안준생이 아버지의 행적에 대해서 사과를 하고 다녔는지 고증이 필요할듯 합니다....

  11. 미친과학자 2009.01.02 18:4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쩝, 김구가 젊은 시절 혈기를 못이겨 일본인을 살해한 사실이 김구의 항일활동 전체를 깎아내리지는 않는다고 봅니다만, 저렇게까지 역사적 팩트를 무시하고 싶은것인지...

    그냥 무리한 신격화 열폭으로 자살골 넣는것은 좌우를 가리지 않는듯.

  12. 우왕구우웃 2009.01.03 08:5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나츠메같은 10세키랑 안놀면 안되나열?

  13. 위서가 2009.01.03 09:5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시간이 되신다면 안익태와 애국가 문제를 한번 다뤄보시길.

    나츠메님 블로그에 별 같잖은 것들이 와서 댓글을 단 것을 보니 웃겼는데,
    그 중 애국가 예가 가장 인상적이었거든요.

  14. 2009.01.04 03:1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15. 백범 2011.04.28 23:3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뜬금없는 딴소리 같겠지만, 김완섭이 억울하다는 증거가 나왔네요.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051135&EVEC

    이 기사에는 지금

    "2004년 7월 서울고검은 "김구가 무고한 일본인을 살해했다"고 주장한 문건을 배포한 친일작가 김완섭씨를 허위사실로 인한 명예훼손으로 직권 기소한 바 있다. 당시 정현태 검사는 김씨에 대한 기소는 국사편찬위원회와 보훈처 자료를 면밀히 검토하고 나서 내린 결정이었다고 말했다."

    그런데...

    http://dna.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7081300329119001&edtNo=45&printCount=1&publishDate=1997-08-13&officeId=00032&pageNo=19&printNo=16186&publishType=00010&doNotReadAnyMore=notClose

    "도 교수는 1895년 백범이 살해한 왜인 쓰치다(토전양량)의 직위를 중위로 기록한 것을 '백범일지'의 대표적 오류로 들었다. 일본 외무성 자료에는 쓰치다는 일본 계림장업단 소속의 상인으로 기록되어 있다."

    결국 도진순 교수가 찾아낸 자료만 보면 김완섭은 거짓말을 한게 아닌데...

  16. 그게 2011.06.16 17:2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거 그냥 강도 살인입니다.
    http://gonews.kinds.or.kr/OLD_NEWS_IMG3/DLD/DLD18960922u00_02.pdf

    구월 십륙일 인천 감리 리지정씨가 법부에 보고 하였는디 해주 김창수가 안악군 치하포에서 일본 장수 토전양량을 때려죽여 강물속에 던지고 환도와 은전 많이 뺏었기로 잡아서 공초를 받아올리니 죠를 재판하여 달나고 하였더라

    http://www.mediagaon.or.kr/jsp/search/SearchGoDirMain.jsp?code=DLD&year=1896&month=11&day=07 당시 기사 지면 http://gonews.kinds.or.kr/OLD_NEWS_IMG3/DLD/DLD18961107u00_02.pdf

    "그전 인천 재판소에서 잡은 강도 김창수는 자칭 좌통령이라 하고 일상(일본상인) 토전양량(스치다 조료)를 때려죽여 강에 던지고 재물을 탈취한 죄로 교(교수형)에 차기로 하고"

    http://e-gonghun.mpva.go.kr/portal/web/book/book_xml_view.jsp?lm_sHisCode=PV_DJ&lm_sBookCode=A011&lm_sItemCode=002.000.000.000&lm_sSrchYear=&keyword

    "이튿날 밝은 새벽에 조반을 마치고 길을 떠나려 하였는데, 점막(店幕)의 법도가 나그네에게 밥상을 줄 때 노소(老少)를 분별하여 그 차례를 마땅히 지켜야 하는데도 손님 중에 단발을 하고 칼을 찬 수상한 사람이 밥상을 먼저 요구하자 여점원이 그 사람에게 먼저 밥상을 주므로 마음으로 심히 분개하였다"

  17. 그게 2011.06.16 17:4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http://e-gonghun.mpva.go.kr/portal/web/book/book_xml_view_detail.jsp?his_code=PV_DJ&book_code=A011&item_code=005.002.000.000&keyword=&rid=005.002.000.000

    판결
    황해도 신천군 두나일소면(斗羅一所面) 청계동(淸溪洞) 1통 4호
    농업 해주읍 출생
    강도 및 강도미수
    안명근(安明根) 33세
    황해도 신천군 읍내면 사리(四里) 18통 9호
    금전 대출업 황해도 신천군 읍내면 사리(四里) 18통 9호 출생
    강도 배경진(裵敬鎭) 27세


    로 시작합니다.

    안악사건도 강도사건입니다. 안명근이 있었는데,김구도 그때 당시 참가했습니다. <강도미수 보안법 위반
    김구(金龜) 36세>라고 나오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