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현.대.사 2007.03.26 00:27
최근 지방선거 때 일이다. 모 방송사의 서울시장 후보 TV토론이 있었는데 패널들이 민주노동당 후보로 출마한 김종철에게 가장 닮고 싶은 인물을 물었을 때 그는 주저 않고 녹두장군 전봉준이라 답변한 적이 있다.

누가 운동권 출신이 아니랄까봐 역시나 모범적인 답변이 아닐 수 없지만... 왜곡된 역사인식이 한 인간의 인성발달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지, 또 이런 사람이 1000만명의 시민을 대표하는 공직자 선거에 출마하여 당선되었을 때 그 파급효과는 어떠할지 불 보듯 뻔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운동권, 특히 NL계 학생들에게 전봉준은 어떤 의미인가. 전봉준 하면 외세를 몰아내고 사회주의 혁명을 시도한 갑오농민전쟁, 그러니까 이땅에서 최초로 의거(義擧)한 계급투쟁의 선봉장쯤으로 기억되었을 것이다. 그래서 지금도 소위 민중가요나 민중시라는 것을 들어봐도 이를 소재로한 내용들을 제법 접할 수 있는데 이 자쉭들은 화염병과 죽창 신공에 달통한 나머지 충실한 운동권식 커리큘럼에 따라 한반도 근대 민중 투쟁의 시발점를 동학혁명에서 찾고 있는 것이다.

왜곡된 역사를 바탕으로 지들 꼴리는대로 해석하면 6.25도 해방전쟁이고 김일성, 김정일도 불세출의 명장이 되는게 그 색히들의 논리이다.

해방 전에는 동학란, 또는 동비(東匪)의 난이라 했다. 그러다가 박정희가 집권한 이후 국사교육을 강화하면서 동학혁명으로 승격한다.(일설에는 쿠데타를 합리화 하기 위한 의도가 깔려져 있었다고 본다.)

전두환 때에는 그놈의 '혁명'이라는 단어가 불온하다 하여 국정교과서에서 혁명이라는 말을 빼고 '동학운동'이라 했다.

슨상님이 집권한 이후로는 수배자 신세였던 운동권 애들이 정치, 교육, 행정 분야에 대거 진출하면서 동학운동도 동학농민혁명운동으로 개칭되어 다시 혁명으로 환원되었을 뿐만 아니라 여기에다 '농민'이란 단어를 더 붙여 아예 대놓고 본격적으로 계급혁명으로서의 당위성을 주장하기에 이른다.

'운동'이란 단어를 지워버리지 못한 것은 나름대로의 알력과 고민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것은 어디까지나 국정교과서의 공식적인 입장일 뿐이고 운동권 내부적으로는 예나 지금이나 '갑오농민전쟁'이다. 거추장스러운 '동학'이라는 타이틀은 떼어버렸다. 이것은 적어도 그들에게는 계급전쟁이지 종교전쟁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느 쪽으로 보든 전봉준과 동학운동을 미화찬양하고 과대포장한 면이 없지 않다. 최근의 연구 성과물들은 전봉준 공초를 바탕으로 기존 찬양일색인 동학운동에 대해 반기를 들고 있는 바, 상당히 경청할 만한 내용들이 적지 않다. 앞으로도 활발한 토론과 연구가 속개되기를 기대하며 지금 몇 가지 소개해 보고자 한다.


첫째로, 동학란 내지 동학혁명은 계급투쟁이 아니다.


- 기존의 군주제 왕조를 전복하고 그대신 참신한 민주적 정부를 수립하려한 근대적 국민혁명으로 본다거나 또는 양반중심의 봉건적 사회체제를 뒤엎고 평등주의적 新사회를 건설하려한 사회혁명이었다고 보는 것은 천도교 종단과 좌익세력들이 자신들의 입맛에 미화찬양한 허구의 결론이다.

- 1894년 4월 30일 농민군의 사대명의을 보면 제2항에 '충(忠)과 효(孝)를 온전히 다함으로써 제세(濟世)하고 안민(安民)할 것', 제4항에 '왜이(倭夷)를 축멸함으로써 성도(聖道)를 맑고 깨끗이 할 것'이라 되어 있다. 징청성도(澄淸聖道)의 문구에서 알 수 있듯 유교적 기강을 바로 잡고 무너져가는 봉건적 신분질서의 회복하여, 종국적으로는 공자의 가르침(聖道, 聖訓)에 충실하려는 유교적 충효사상(忠孝思想)을 엿볼 수 있다.

좌빨들의 주장처럼 축멸양왜(逐滅洋倭)하는 주된 목적이 무슨 레닌혁명처럼 세상을 뒤집어 버리겠다는 그런 뜻이 있었던 것이 아님은 자명하다.

- 이는 1894년 4월 27일 무장동학포고문(茂長東學布告文)에도 비교적 자세히 기술되어져 있는데, 농민군의 지도부는 공자의 정명(正名)사상과 맹자의 민본주의로써 자신들의 의거를 정당화하면서 성상(聖上, 즉 국왕 高宗)을 둘러싼 간신배들을 척결하고 무너져 가는 사회신분질서(上下之分)를 회복시키려는 의지를 명시적으로 표출하고 있다.


둘째로, 토지균등분배, 계급철폐 등이 담긴 폐정개혁12조는 거짓말이다.


- 그런 것은 원래 있지도 않았다. 있었다 하더라도 일부지역 집강소에 국한된 얘기다. 폐정개혁 12조는 1940년에 펴낸 오지영의 소설 『동학사』에나 나오는 것으로 전봉준의 공초기록, 각종 포고문, 격문에는 그러한 내용을 발견할 수 없다. 오지영의 소설 『동학사』는 일종의 자전적인 소설로서 사료적 가치는 미흡하다.

여기서 오지영이 누군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여자 이름처럼 생겨먹은 오지영은 전라도 익산지역의 집강소 사무를 맡았던 자로서 동학혁명이 좌절된 이후에 천도교 내부의 분파적 갈등을 겪다가 모세처럼 익산지역 주민 200여명을 인솔하고 만주 길림성으로 이주하신 분이시다.

거기서 본격적으로 고려혁명당에 가입하는 등 공산주의자로서의 길을 걷게 되는데 이러한 영향으로 토지 균등 분작이라든가 계급철폐 같은 사회주의 노선이 그의 작품에 등장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이러한 사회주의적 색채가 농후한 폐정개혁 12조는 오지영의 소설외 다른 1차 사료에서 확인되지 않고 있으며, 현재로서는 없다고 보아야 한다. 그럼에도 국정교과서에는 한결같이 폐정개혁 12조가 등장하는 것은 참으로 모순이다.


셋째로, 동학란은 흥선대원군의 사주로 발생했으며 그의 정치적 귀환이 최종 목적이다.


- 전봉준이 여러 해동안 흥선대원군의 거처인 운현궁에 드나들면서 대원군과 깊은 관계를 맺은 사실은 이미 널리 알려져 있다. 대원군이 동학란을 일으키도록 전봉준을 사주하고 지원했다는 증거들도 적지 않다. (이동학의 『천도교 창건사』)

1894년 5월 22일 (음력 4월 18일) 전봉준이 나주 관아의 삼공형(三公兄, 즉, 호장, 이방, 수형리)에게 발송한 공문을 보면

'전하께 아뢰어 국태공(國太公, 즉 대원군)을 모셔다가 나랏일을 보도록 함으로써 아첨하고 비루한 자들을 모조리 파면시켜 내쫓으려는 것이니, 우리의 본의는 여기에 그칠 뿐이다'

음력 4월 16일 영광에서 창의소 명의로 완영유진소(完營留陳所)에 보낸 통문에서도

'국태공(國太公) 감국케 하여 위로는 공사를 보전하고 아래로는 백성을 편안케 한다'

음력 4월 19일 양호초토사(兩湖招討使) 홍계훈에게 보낸 정문(呈文)에서는

'억조(億兆)가 마음을 같이 하고 온 나라가 의논을 모아 위로 국태공(國太公)을 모시고 부자사이의 윤리와 군신사이의 의리를 온전히 하여 아래로 여민(黎民)을 편안히 하고 위로 종묘사직을 보전하는 것이 우리의 지극한 소원입니다. 장차 죽음으로써 맹세하고 변치않을 것이오니 엎드려 비옵건대 굽어 살피옵소서'

음력 4월 23일 전라감사 김학진에게 14개조에 달하는 원정(願情)에는

'國太公 于預國政 卽民心有庶幾之望事'

라하여 그들의 소원이 국태공의 국정참여에 있음을 밝히고 있다.

음력 5월 4일 전봉준이 전주화약 직전 관군사령관 홍계훈에게 보낸 소지문(訴志文)에서는

'태공을 받들어 나라를 감독토록함은 그 이치가 심히 마땅하거늘 왜 이를 불궤라고 합니까?'

라고 하고 있다.

- 대원군이 음력 6월 집권하자 체포된 동학도들을 구제할 방도를 지시하고 6월말부터 대거 석방하지만 그러나 반대로 대원군이 실각하자 동학도들에 대한 대규모 숙청작업이 이루어진다. 이 양자의 공모와 결탁이 없으면 불가능한 일이다.

- 2차 봉기때에는 전봉준, 김개남 등 동학지도부가 대원군의 밀지(密旨)를 받고 의병을 소집. 궐기했음은 1962년에 발표한 이상백의 논문 「동학당과 대원군」에서 증명하고 있다.

대원군은 전봉준의 처족 8촌이자 전주대도소 도집장 송희옥을 선공주사로 임명하고 대원군의 측근인 박동진과 정인덕은 이 송희옥과 접선하여, 전봉준에게 밀지(密旨)를 보내 대원군의 뜻에 따라 재봉기할 것을 주문하였던 것이다. 김개남에게는 대원군의 손자 이준용을 통하여 前承旨 이건영과 접촉하고 이건영은 김개남을 만났다. 이에 전봉준, 김개남이 적극 호응하였음은 물론이다. 체포된 이후 전봉준은 이를 부정하고 있으나 김개남은 대원군의 지시에 의한 것임을 자백하고 있다.


넷째로, 동학란은 일본 국수주의 단체인 천우협(天佑俠)의 자금과 무기를 지원 받았다.


- 통리교섭통상아문의 음력 6월 16일자 일기에 의하면 "일본인 요시쿠라 등 14명이 통행증 없이 안약과 총을 가지고 전북 순창에 와서 도적의 우두머리를 만나 온갖 것을 종용했다." 고 되어 있는데 또 다른 증거『고종시대사』를 보면 "요시쿠라, 스즈키, 다케다 등 스스로가 천우협(天佑俠)이라고 하는 14명의 일본인이 이달 초에 路照(통행증)을 휴대하지 않고 비밀리에 부산을 출발하여 전라북도 순창에 도착하여 동학 교도들과 내통하다" 라고 하여 좀 더 구체적으로 기술하고 있다.

전봉준이 천우협(天佑俠)의 일본인들과 회견했다는 유일한 기록이지만 이는 동학측 자료에서도 전봉준과 천우협(天佑俠)의 접촉을 확인해주고 있는데 『천도교 창건사』에 의하면 "일본인 다케다(武田範之) 등 15명이 금시계 1개와 마노(瑪瑙, 보석의 일종) 하나를 보내어 믿음을 보이고 면회를 청한 즉 전봉준이 거리낌 없이 이들을 면담하고 시국을 서로 논하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한상일, 「동학과 일본 우익:천우협(天佑俠)과의 제휴에 관한 고찰」에서 재인용)

- 1894년 2월 21일 주일본 러시아 공사 미하일 히트로포(mikhail Hitrovo)가 주조선 러시아 공사 베베르(Karl L. Weber)에게 보낸 비밀 정보에 따르면 "나는 나의 정보원을 통해 다음과 같은 첩보를 받았다. 임금의 아버지(대원군)가 주모자로 나서서 중대한 폭동을 조성하고 있으며, 이 폭동은 오는 여름 혹은 아무리 늦어도 가을 이전에 폭발할 것이며, 공모자와 대리인들이 일본과 중국에서 무기를 구입하고 있으며 이미 4천여정의 소총이 구매되었는바, 그 중 일부는 일본에서 나왔고 소수의 일본인이 이에 가담하여 일을 같이 꾸미고 있으며, 이 음모에 대해 일본 정부는 전혀 모르고 있다는 등이다." (유영익, 「갑오농민봉기의 보수적 성격」에서 재인용)
Posted by 眞明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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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슈타인호프 2007.04.08 14:0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1번은 이미 익히 알고 있던 바, 3번과 4번도 약간은 알고 있던 내용이지만 2번이 완전한 허구였다는 건 처음 알았네요. 이런 쇼크가-_-;;

  2. leinon 2007.04.17 20:2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헉 저는 전혀 몰랐습니다;

  3. claudius 2008.03.22 23:5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음 요즘 열심히 폐정개혁안 외우고 있는데, 좀 뜨끔하네요.. 이런 출처가 불확실한 사료가 검정교과서로 수십만 수험생에게 열심히 주입된다는게 좀 안타깝습니다. 하루빨리 근현대사가 없어지든지 해야지 원..;

  4. 眞明行 2008.03.23 00:3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근현대사가 문제가 아니라 국사교과서 전반의 문제입니다. 국사선생님께 한번 여쭤보세요. 폐정개혁안의 출처를 아시냐고.. 그럼 아마 어버버 거릴 확률 100%

  5. GREENBAUM 2008.03.26 12:2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동학당의 진상
    http://img237.imageshack.us/img237/8220/16560113zj8.jpg

  6. 르젠느 2008.03.26 21:3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완전 충격 그자체네요 -_- 학교에선 폐정개혁 12조 못외우면 시험 망친다 소리에 열심히 외웠건만..
    하아...

    저도 2번에서 쇼크..

  7. 르젠느 2008.03.29 20:5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늘 여쭤보고 왔습니다. 답변..

    "그..글쎄다.. ...(5초 침묵) 나도 잘 모르겠는데 하하.."

    두..둥..

  8. 眞明行 2008.03.29 22:3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하하..진짜로 물어보실 지는 몰랐습니당

  9. 2008.04.21 23:4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10. 眞明行 2008.04.22 12:0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글/ 인터넷에서 구하기는 아마 쉽지 않을 것입니다. 제가 가지고 있는 논문은 메일로 보내드리겠습니다. 좀 어려울 수도 있겠지만 참고는 많이 되실 겁니다. 그리고 저서는 학생신분에 구입에 부담이 될 수도 있으니 가까운 도서관을 이용하시면 될거 같네요. 수고하세요.

  11. 나루나루 2008.06.21 19:5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뭐 동학운동은 한국판 '존왕양이' 운동이지요[..] 계급적 운동이라고 했다간 레닌이 잡아 패고 싶을듯.

  12. 궁금합니다. 2016.01.29 05:2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폐정개혁안이 고종실록에 기록되어있다고 하는데. 이에 대해서 어떻다고 생각하십니까

    • 眞明行 2016.02.01 20:2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폐정개혁안이라는 단어에 집착하지 마시고, 국사교과서에 등재된 내용이 고종실록 몇권 몇호 어디에 나오는지 찾아보시고 댓글을 다시는게 순서라고 생각됩니다.

  13. 궁금합니다 2016.02.04 17:0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저 궁금했던게 뭔가 시비조로 물어보는 것 같아서 뭔가 오해가 있는 것도 같네요.
    그러고보니 출처만 적혀 있을 뿐 몇권 몇호인지 어디에 적혀있는지가 서술이 되어있지 않았다는 점을 또
    간과한 것 같습니다.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