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현.대.사 2009.09.13 19:20

동양척식주식회사(이하, 동척)과 관련하여 네이버 백과사전에 실린 기술을 보면 "1908년 일제가 조선의 토지와 자원을 수탈할 목적으로 설치한 식민지 착취기관"으로 요약되어 있다. 국내에 간행된 중고등학교 교과서의 설명들도 이와 대동소이한데, 만약 이에 대한 이의나 반론을 거론한다면 이놈의 나라에서는 졸지에 매국노나 친일파 취급받기 십상이다.

수탈, 수탈하는데 대체 뭘 그리 수탈해갔고, 뭘 그리 착취해갔는지 학계에서 제시한 구체적인 데이터나 실증자료를 보면 빈약하기 짝이 없다. 식민지 조선에 설립된 제국의 국가기관들이 헤비타트 같은 봉사단체가 아닌 이상, 자국의 이익을 어느정도 대변하지 않을 수 없는 노릇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강도떼처럼 몰려와서 세간살이를 다 들어내고 강탈해간 것처럼 피해상황을 쓸데없이 과장하고, 억지로 말을 만들고, 견강부회하는 식의 설명들이 학생들에게 막연한 적개심 외에 무엇을 심어줄 것인가.

1. 동척의 설립목적이 토지수탈과 소작료 착취에 있었나?

척식이란 말 그대로 외지에 버려진 땅을 개척하여 그곳에 자국인을 이주, 정착시킨다는 얘기다. 1900년 초 일본정부는 넘쳐나는 농업인구를 감당하지 못해 해외의 농지를 개척하여 이들을 이주시키면 어떨까 하고 잔대가리를 굴린다. 그래서 생겨난 것이 척식회사다. 토착민의 반발을 우려하여 선량근면하고 농사경험이 풍부하며 어느정도 돈이 있는 사람들만 뽑아서 이주시키되, 일본의 우수한(?) 선진농법을 전수하여 주면 상호 win-win이 아니겠느냐 하고 시작한 것이다.

2. 과연 토지수탈인가?

수탈이란, 말 그대로 타인의 재화를 강탈해갔다는 말이다. 네이버 백과사전의 인용예를 보자.

"회사가 설립되자 한국정부로부터 토지 1만 7714정보를 출자받고, 1913년까지 토지 4만 7148정보를 헐값으로 매입하였다. 토지조사사업이 완료된 이후인 1920년 말에 회사 소유지는 경작지의 3분의 1에 해당하는 9만 7천여 정보에 달하였다. 이와 더불어 일제는 국유지를 강제로 불하하여 막대한 면적의 산림지를 가로채어, 1942년 말 16만여 정보의 임야를 소유하였다."

이게 수탈의 내용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꼼꼼하게 살펴보면 또 얘기가 달라진다. 우선 한국정부로부터 출자받은 1만 7714정보의 농지에 대해서는 꼬박꼬박 배당료를 지불했으며, 출자예정지에 대해서는 소작료의 80%를 주고 유상으로 임차했다. 왜 100%가 아니냐, 착취아니냐며 따지면 나도 할말은 없다.

그러나 오늘날의 토지신탁이라는 것도 임대수익의 100%를 건내주는 것은 아니다. 또한 소작지의 체납비율이라든가, 개간사업에 대한 투자비 회수, 관리비용 등을 감안했을 때 80%의 유상보상을 꼭 수탈이라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 걔네들도 땅파서 장사하는 것은 아닐테니 말이다.

두번째, 일제가 1913년까지 확보한 4만 7148정보를 거저 빼앗아 간 것도 아닐텐데 이걸 강탈이라 보기도 어렵다. 이중 논(畓) 3만 554정보와 밭(田) 12,563 정보는 실거래가를 감안하여 전부 유상보상하였다. 논은 1정보당 291원을 지급했고, 밭은 1정보당 129원을 지불했던 것인데, 일본의 농지거래가와 비교했을 때 오히려 후하게 쳐준 것이다.

그나마, 전국 각지의 불량배들과 모리배들이 개입해 토지매매를 방해하고, 투기꾼들이 극성을 부려 지가(地價)가 앙등하자 결국은 매수작업은 자금고갈로 중단되고 만다. 수탈이 목적이었다면 땅문서 갈아치우고 말뚝이나 박지 이런 식으로 굳이 일을 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또한 일제는 국유지를 강제로 불하하여 막대한 면적의 산림지를 가로채었다고 하는데, 이 양자는 상호간에 아무 관련이 없는 사안이다. 거꾸로 산림지를 매수해 경작지로 바꾼다음 조선인 소작인들에게 불하했다고 하는 것이 맞는 표현이다. 국유지 불하는 그 특별법에 의해 동척이나 일본인 지주들이 소유하는 것을 금하고 조선인을 포함 순수하게 자작을 원하는 소작인들에게 분배되었다. 산림이나 황무지, 임야 소유도 개간을 위한 일시적인 소유에 불과하다.

3. 소작료를 착취했나?

또한 네이버에는 이런 말이 있었다. "강제로 빼앗은 토지를 소작인에게 빌려주어 50%가 넘는 고율의 소작료를 징수하고, 영세 소작농에게 빌려준 곡물에 대해서는 20% 이상의 고리를 추수 때 현물로 거둬들였다"

백과사전 저술에는 학자들이 참여했을 텐데 어찌하여 이런 엉터리 기술이 나왔는지 모르겠다. 첫째로 강제로 빼앗은 토지가 아니다. 둘째로 소작인에게 토지를 빌려주고 50%가 넘는 고율의 소작료를 징수하였다고 하는데, 조선 후기와 비해서 무슨 차이가 있는지 모르겠거니와 일본 본토의 사정도 이와 다를 바가 없는데, 어째서 유독 일제시대의 조선 소작인인들에게만은 문제가 되는 것인가?

정약용은 후기 조선시대의 소작료 징수의 문제점을 다음과 같이 지적하고 있는데 일제시대의 소작료 논쟁과 비교하여 참고할만 하다.

"원래 토지에 대한 주인은 국왕과 경작농민의 二主가 있을 뿐인데 부유한 자가 토지를 겸병하여 "租" 地代를 사사로이 수취하게 되니 토지에 三主가 있게 되고, 농민은 국세 이외에 私租의 부담을 짊어지게 되었습니다. 관청이 징수하는 地稅는 법제상 총생산량의 약 20분의 1에 지나지 않은 가벼운 것이나 소작제도가 형성된 토지에서는 지주의 수취지대 즉, 私門之租는 50%이며 민곤국빈(民困國貧)의 모든 원인이 이 가혹한 소작지대에서 말미암은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소위 공물과 각종 부담에 있어서도 잡다한 명칭의 징렴(徵歛)이 행하여져서 결국 그것이 생산량의 10분의 5에 달하고 있으니, 사적지주가 50%의 지대를 징수하고 관청도 50%를 징수하면 소작농(佃夫)는 무엇을 가지고 생활을 영위할 것입니까"
 

두번째, 영세소작농에게 빌려준 곡물에 대해서는 20% 이상의 고리를 추수 때 현물로 거둬들였다고 하는데, 이는 당연한 것이다. 소작료를 현금이나 현물로 내지 못하고, 연체한 농민에게는 일종의 리볼빙을 실시하게되었고, 당시 금융권의 이율이 1년에 12% 정도였는데, 동척의 이자율은 조선은행이나 일본 내지 금융기관의 이자율에 비해 오히려 저렴한 편에 속하였다.

4. 그래서 악마의 화신인 동척을 일반 조선농민들은 어떻게 대했나.

네이버 백과사전을 보면 "조선을 식민지화할 목적으로 창립되었기 때문에 한국의 반응은 냉담하였다" 고 되어있는데 이 또한 사실이 아니다. 동척의 설립초기 5년간 자금대부 현황을 보면, 1911년 46.1%, 1912년 47.9%, 1913년 64.4%, 1914년 59.6%, 1915년 57.4%를 조선사람들이 사용했다. 결코 적지않은 사람들이 동척의 자금을 사용하여 농지구입이나 운영비용에 충당하였던 것이다.

5. 일제는 동척의 설립을 한국정부에 강요했나.

네이버 백과사전에는 "일제는 ...한국정부에 강요하여 1000만 원 자금으로 한국에서 척식사업을 목적으로 회사를 설립하고.."라고 나온다. 그러나 이 강요하고..라는 표현은 전혀 근거가 없는 얘기다. 오히려 한국정부가 황무지개간 사업에 적극적이었다고 보는 것이 맞는 표현이다.

황무지개발 사업은 대한제국 탁지부에 조세징수권을 빼앗긴 궁내부가 일본공사와 결탁하여 황무지개간사업을 협의하면서 시작된 것이다. 당초 협의안은 이렇다. 황무지의 개간사업은 한일합자 척식회사에 위임하되 개간사업시에 기술자, 감독원을 제외한 소요인력의 9/10를 한국인으로 충당하고, 개척된 토지에 대해서도 한국인이 경작을 희망하면 일정한 조건하에 불하 또는 대여할 수 있도록 하였다. 대체 뭐가 강요란 말인가?

6. 동척은 성공하였나.

실패하였다. 저렴한 토지분양에 미혹되 이주한 일본 내지인들은 쌀 생산량 증대로 인해 쌀값은 급락한 반면에 치솟는 지대와 소작료와 각종 비용을 감당하지 못하고, 파산 후 일본으로 귀국하는 사람이 나날이 급증하였다. 1927년 동척은 이주사업을 완전히 접고, 이주사업은 만주와 대만으로 무대를 갈아타게 된다. 이후 동척은 평범한 금융기관으로서의 위상이나마 갖추지만, 식산은행과 조선은행의 규모에 비하자면 초라하기 짝이 없는 수준이었다.

따라서 동척의 사업으로 말미암아 1920년대와 1930년대의 소작쟁의가 격렬하였다는 식의 주장은 아무런 근거가 없는 막연한 얘기일 뿐이다.

Posted by 眞明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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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백범 2009.09.13 19:2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동척이면 '전두환 장군님을 찬양하신' 똥녕이으 아부지가 다니시던 회사 아닙네까? ㅋㅋㅋ

  2. 피그말리온 2009.09.13 19:3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불공평하기는 하지만 어쨌든 나름 해외투자의 형식을 취한건데 실패한거라고 봐야겠네요.

  3. arche 2009.09.13 20:0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런저런 기록들을 보면 조선후기사회가 워낙 엉망인지라 오히려 일제시대의 법과 행정이 훨씬 낫더군요. (독립운동 하신분 외엔 태평양전쟁 전까지는 괜찮게 산 편이더군요)
    만약 일제시대가 없었으면 남의탓 할게 없어서 심심할 사람들이 많을거 같습니다.

    • 검투사 2009.09.13 20:2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민비가 "명성황후"가 되고, 이제는 "초콜릿과 와인을 음미할 줄 알았던, 불꽃 같은 삶을 살다간 왕비마마"로 기억되게 생긴 판인데요... -ㅅ-; "이 아이는 내 누이동생이오. 사는 게 어려워 궁녀로 입궐한 아이를 왜 이리 괴롭히시오?!"라는 항의에 "아~ 그렇군요. 지송~" 했던 군사들에게 누군가가 타임머신 타고 가서 진실을 알려줘야 하는...응?

    • 인민해방군 2009.09.14 20:1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법학을 전공하며 법학사를 보다 보면 지금의 법률체계는 일제시대에 완성된것이라는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조선말기의 법체계는 완전히 기득권층 몇몇만을 위한 법이었을 뿐이죠.
      현대적인 법체계는 일제시대에 온겁니다.

      왜놈들이 침략한건 맞지만, 이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그럼 왜놈들이 왜 착하게 보일까 이럴때에?
      그것은 이들이 식민지 경영이라는것을 영국으로부터 배웠기 때문이죠.
      지들이 착해서 그런것이 아님.

    • BigTrain 2009.09.14 23:3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이영훈 교수의 '해방전후사의 재인식" 강의에서 본 것 같은데, 왜정시대엔 승진하면 간단한 다과로 책상에서 승진축하 파티를 열었었는데, 독립하고 나니 고급 요정에서 승진축하 잔치를 열더라."는 식의 회고가 많다고 하더군요.

      그래도 근대국가의 시스템이 남아있었던 대한민국과 그 시스템이 모조리 무너져버렸던 북한과의 차이를 본다면야 뭐...

  4. reske 2009.09.13 20:1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잘 읽었습니다.

    하긴 경제적 관점에서 본다면 일제의 식민지 경영은 결과적으로는 실패죠. 배후 생산기지로 만들려고 그렇게 많은 시간과 자원을 때려박았지만 결국 고스란히 대한민국 정부에 넘기고 와야 했으니..

    생각해보면 일본의 식민지 경영은 단순한 약탈이었다기보다는, 일본인들이 독점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생산기반 건설에 있었던 것 같더군요. 근대적 제도의 이식, 기술자와 엘리트 양성, 사회간접자본 건설 등을 보면..

    흠 그런데 질문이 있습니다. 동척이 한국정부로부터 출자받은 토지에 대해서는 배당금을 지불했다고 하셨는데요, 한일합방 이후 배당금을 수취한 주체가 누구죠? 대한제국의 이씨 왕가인가요? 아니면 총독부인가요?

  5. 제3의사나이 2009.09.14 01:4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잘 읽고 갑니다.

    한국에서 이런 글을 쓰는 것은 거의 '목숨'을 걸어야 하지요.
    진실을 말하는 것도 목숨을 걸어야 하는 나라에 얼마나 '진실'이 있을까 의문입니다.

  6. BigTrain 2009.09.14 23:3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영훈 교수의 '해방전후사의 재인식' 강의에 일부 실려있더군요.

    사실 이야기하는 내용은 거의 같은 이야기인데, 그걸 표현하는 방식이 다른 것 같습니다. 기존의 수탈론이나 착취론은 뭐랄까, 학술적인 서술방식은 아닌 것 같고 말이죠.

  7. 2009.09.15 00:5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8. 곰표간장™ 2009.09.15 01:1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냥 수탈과 강탈이 목적이었다면 회사따위는 필요없었겠죠.
    그냥 밀고들어가서 말뚝만 뚝딱뚝딱 박으면 끝이었을테니까요;;

  9. 2009.09.15 15:2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10. 我行行 2009.09.15 18:5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인민민주공화국을 자칭하는 김씨왕조의 현물세가 소출의 50%라는 소문도 있지요.

  11. 여우비 2009.09.15 18:5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과연 현상은 어느 쪽으로 바라보냐에 따라서 천차만별인 것 같습니다. 제대로 된 근거와 자료를 바탕으로 비난하고 증오해야지요. (아무리 객관적인 시각을 유지한들 일제의 긍정적인 면이 부정적인 면을 덮을 순 없겠습니다만은)
    결코 잊지 말아야 할 시대의 비극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나저나,
    www.dailian.co.kr/news/news_view.htm?id=171055&sc=n
    초끔 무개념인 것 같습니다. 횽님들, 요거 어떻게 생각하세요? 화해도 좋지만 이건 화해를 넘어선 엎드려서 빌기 같은데?

  12. 海凡申九™ 2009.10.18 00:3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착취하니냐며(x)

    정정부탁드림미돠

  13. 백범 2009.10.24 18:4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동척하면... 아 정동영!!!

  14. 만슈타인 2010.03.08 11:5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동척에 대한 흥미로운 글을 봐서 감사드립니다. 그런데 이 자료의 근거가 어디신지만 좀 밝혀주셨으면 합니다.

  15. 짚신 2011.12.08 19:4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여기서 간과한 것이 있다. 어떤 데이터를 가지고 동양척식주식회사를 보냐에 따라서 기준이 달라진다.
    일제가 우리나라 민간인을 잔인하게 죽이는 사진자료와 수탈자료를 보고 글을 쓴다면 또다른 글이 만들어질 수 있다. 분명 일제가 근대적토지제도의 기반과 근대적법제도의 기반을 만들어주는 것은 맞지만 이 글에 나와있는 것처럼 정당하게 이 모든 과정은 결코 하지 않았다는 것도 사실이다. 과연 이 글쓴이가 당시 우리나라 서민이었다면 일제에 대해 이런생각을 가질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16. 흠냐 2012.12.07 16:0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건 정말 아닌듯.동양척식주식회사까지 변호를 하는건 아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