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현.대.사 2011.12.27 00:46
세키노 타다시(關野 貞)가 1902년 7월부터 2개월간 경주, 개성, 서울 및 그 주변을 조사하여 1904년에 작성한 '한국건축조사보고'에 따르면 당시 불국사는 대웅전, 다보탑, 석가탑, 자하문, 극락전, 범영루와 무설전이 남아 있었고, 자하문과 범영루 사이에는 회랑도 서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불국사의 대 석축이나 청운교, 백운교 등은 모두 허물어져 있어 그 보존상태가 심각하였다. 수리전의 광경을 보면 '석단의 동쪽 가장자리는 파묻혀서 경사면을 이루었고, 서측의 석루 같은 것은 완전히 흙속에 묻혀서 석단다움이 사라지고 돌계단은 비틀어졌으며, 돌난간은 쓰러져 예전의 모습을 찾을 수 없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러다가 1905년경 자하문에 연결된 회랑마저 붕괴되고 1910년경에는 무설전이 붕괴되면서 총독부는 불국사 정비를 실시한다. 불국사의 정비는 1919년부터 총독부의 보조금으로 수리가 이루어지게 되는데 1925년까지 불국사 주지에게 지급되었다. 1934년과 1935년에도 추가 보수공사가 있었다.

오늘날 우리가 수학여행때마다 우루루 몰려가서 사진을 찍고, 유네스코에 등재된 세계문화유산이랍시고 자랑스러워 하는 불국사의 아름다운 모습은 당시 불국사 주지가 불교개혁이니 내선교류니 심전(心田)개발이니 일제정책에 적극협력한 댓가로 얻어낸 산물이라는 것은 알고 있어야 하지 않을까?


1. 일제에 합방된 직후 불국사 전경 (191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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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일제의 보수공사 이후 불국사 전경(192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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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오늘날과 같은 불국사의 장엄한 위용은 일제시대에 그 원형이 마련된 것으로, 소위 잘나신 학자들의 평가에 따르면 전통이 무너지고 왜색풍이 가미되었다든지, 실측도의 원형을 무시한 졸속복원이었다든지 말들이 많다. 자기 나라 문화재를 저렇게 폐허로 방치하고 남의 손에 의해 보수된 것에 대한 부끄러움과 반성을 느껴야 순서가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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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眞明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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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진빠 2011.12.27 01:1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활발한 포스팅 감사합니다.

    불국사 하니 패션진보들의 천사병이 떠오르네요.. 광화문 공사할 돈으로 가난한 아이들 밥먹여줘라, 4대강 공사할 돈으로 가난한 아이들 난방해줘라, 스키점프대회 할 돈으로 가난한 아이들 목욕시켜줘라... 정작 저런 문화유산이나 상징적 건축물로 인해 생겨나는 외부효과는 전혀 고려하지 않고 말이죠. 그렇게 따지면 불국사야 말로 민중을 수탈하고 백성들을 굶겨죽이면서 만든 전시행정일텐데 말입니다.

    아울러 우리가 그렇게 떠받치는 것들이 일제의 잔재요 (그분들 말에 의하면), 우리가 그렇게 혐오하는 것들이 한민족의 거지근성이라는 것을 구분하지 못하는 것이 안타깝습니다.

    • 백범 2012.01.05 23:20  댓글주소  수정/삭제

      "광화문 공사할 돈으로 가난한 아이들 밥먹여줘라, 4대강 공사할 돈으로 가난한 아이들 난방해줘라, 스키점프대회 할 돈으로 가난한 아이들 목욕시켜줘라..."

      참 핑계들은 좋지요.

      그덕에 서울시내에 상류층 학생들은 일부러 집에서 따로 영양간식이란걸 싸갖고 다니거나 배달하는 것(다 학교로 반입 가능합니다.)이며, 어느정도 되는 애들은 급식 안먹고 매점 달려가거나 월담하는 것을 저들은 모르나 봅니다.

      그리고 중학생, 고교생만 되면 그 유명한 노스페이스의 질로 빈부를 가르고 있거늘...

      현실감각없이 망상과 몽상에 빠진 먹물들이 사회를 잘못된 곳으로 오도하고 있지요. 이건 뭐 국가와 국민만 오도하는게 아니라 헛돈까지 낭비하고 앉아있으니...

    • 진빠 2012.01.28 00:09  댓글주소  수정/삭제

      초등학교를 전교생 100명 남칫 안되는 어촌에서 2년정도 다닌 적 있었는데, 여기 학교 급식이 말그대로 무료급식이었습니다.

      반찬은 5일에 2번꼴로 오징어국에(어촌은 일년내내 오징어를 말리죠 ㅡㅡ) 3번꼴로 베트남쌀과 찹쌀을 섞은 김주먹밥이 나왔습니다. 밥을 나기면 식판을 들고 벌을 서야 했기 때문에, 급식시간 5분 전에는 맨날 "하느님 오징어국이 나오지 않게 해주세요"하면서 '성부성자'를 하느라 가슴팍에 十자를 그리곤했습니다. 도시에서 전학온 어떤 애는 일부러 바닥에 국물을 쏟아 버리기도 햇는데, 지금생각해보면 웃기기도 하네요 ㅋㅋㅋㅋㅋㅋ

  2. 강희대제 2011.12.28 16:4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잘 읽었습니다.

  3. 드가모프 2011.12.29 03:0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올때마다 느끼지만 좋은 글이 참 많습니다. 주인장 형님의 블로그를 알게 된지 이제 1년이 좀 넘었는데 방명록이 따로없으니 여기에 감사인사를 남기고 갑니다. 연말 마무리 잘 하시고, 다가올 새해에 좋은일만 가득하시길 바랍니다^^

    • MAUS.K 2011.12.29 09:57  댓글주소  수정/삭제

      항상 졸필을 읽어주시고 격려주시는데 감사를 드릴 따름입니다. 드가모프님도 새해 만사형통하시기를

  4. 백범 2012.01.05 23:1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제 뭐... 불국사 복원도 일본놈들이 관광객들 끌어모으기 위해서 정비한 것이며, 조선인들을 강제로 노역에 동원했을 것이다 (카더라) 소리가 나올테죠 뭐... 보나마나 뻔할듯.

  5. ㅋㅋㅋ 2012.01.07 16:5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좋은 글 읽었습니다.

    추신 : 강희대제도 여기왔네?ㅋㅋ

  6. 미1쳤네 친일파 2012.03.04 21:0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일제시대떄 불국사 관리해줬다고 미1쳤네 가만히 있던 석굴암은 왜 건드는데?
    습기 잘 안차던 석굴암 괜히 건들였다가 시멘트로 떔방해서 습기 차는게 관리 잘해준거냐?

    • ㅎㅎ 2012.03.04 22:21  댓글주소  수정/삭제

      야이 화상아. 그럼 그대로 굴이 붕괴되도록 냅두냐?

      시멘트 외에 자연석에도 빗물이 계속 때리거나 침투하면 균열가는건 아냐?

    • 병신새끼 요깅네? 2012.04.19 18:56  댓글주소  수정/삭제

      어이쿠ㅋㅋㅋㅋ 그러시다면 그냥 불국사 없애버리지?ㅋㅋㅋ

    • 2012.07.04 13:48  댓글주소  수정/삭제

      불국사에 적용된 복원방식은 당시로선 최선의 복원방식이었다. 70년대 우리나라는 그렇게 안했을것 같은가? 콘크리트 복원의 한계가 지적된건 최근의 와서다. 그리고 탓할려면 조선왕조를 탓해라. 탈레반들마냥 자기네 유적하나 관리 못해놓고 이제와서 난리신가?

  7. 牙辛正烈 2012.07.15 09:1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불국사는 그 크기가 원래는 어마어마한 거대한 크기인데.. 이씨조선 시대는 GDP가 500년 동안 0%인데 수리가 했겠나. 5~10%의 인간들만 잘~ 처먹고 잘~ 사는 시대인데 그리고 여성은 완전 노예수준으로 키리까이 뎃쁘리고,,,, 무위문약의 이씨 조선시대는 그야말로 단군이래 최악의 시대다.

    그나마 일한병합이라도 해서 일한병합 시대 때문에 일반 국민이 36년 동안 잘먹고 학교다니고
    근대화가 되어 오늘날 대한민국이 될 수 있었지 않았나.

    병합 36년 말기엔 전쟁 때문에 본국에서나 한국에서나 많이 힘든 시기였는데.
    한국은 또 이 시기를 일본이 조선을 강정착취 했다며 비방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