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현.대.사 2012.01.02 01:00
고대의 역사를 보면 처녀를 권력자의 부장품과 함께 순장하거나 또는 신전에 제물로 바치는 행위를 반복해 왔다. 단순한 인간의 생명이 아닌 처녀를 희생하는 행위 이면에는 종족번식과 관련된 인간의 욕망을 읽을 수가 있는데, 여성의 정조가 이들에게 어떤 의미였는지 쉽게 알게 해준다. 반만년(?)의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우리나라의 경우 삼국시대부터 이미 처녀를 공출하여 중국에 보내왔다는 기록이 있다.

외세의 강압에 의한 처녀공출의 역사는 어느 민족에게나 아픔일수 밖에 없고 수치의 역사였을 것이다. 위안부로 희생된 여성들의 처녀성을 강조하는 이유가 이런 집단적 수치심을 자극하고, 내재된 역사적 트라우마를 동조화하려는데 있지 않나 하는 의구심이 든다.

일본인 위안부는 매춘녀 출신이 많았는데, 조선인 위안부는 대부분 순결한 미혼 처녀들이었다는 식으로 논리를 전개한 뒤 그 죄질의 경중을 상대화 하려는 시도는 창녀에 대한 강간이 부정되었던 19C의 전근대적 사고방식과 무엇이 다른지 모르겠다.

예컨대 이런 식의 자료를 들고 와서,
사용자 삽입 이미지
이런 식으로 무리한 논리 확장을 시도한 후
사용자 삽입 이미지
일본은 성병의 예방을 위해 조선의 미혼녀를 위안부로 집중 동원했다는 결론을 도출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군의관 麻生徹男의 보고서에 등장하는 고작 80명 내외에 불과한 조선女들이 상해에 설치된 17군데 위안소를 대표하지도 않으며, 이러한 제한된 샘플의 표본만으로 일군 상층부가 조선여성의 "순결성"과 "상품성"을 인정했는지는 확실치 않다.

위의 주장이 설득력을 가지려면 조선인 위안부가 일본인 위안부보다 화대가 비쌌어야 하는데, 현실은 그렇지 못했고 천진(天津)의 육군병원에서는 麻生徹男의 보고와는 정반대로  조선인 위안부의 성병이 심각하여 주의를 요한다는 자료도 보인다. 天津陸軍病院特設分院,, 杭州陸軍病院,, 蘇州陸軍病院에서 공동으로 성병에 감염된 장병들을 조사한 결과, 조선女에게 성병이 감염된 경우가 4,403명, 일본女에게 감염된 경우가 2,418명, 중국女는 3,050명으로 조선女로부터 성병이 감염된 경우가 가장 많았다는 것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이 조사에의 비고란에는 '조선女들의 활약이 타지 출신을 압도하므로 장래 전지에 참고를 요한다'는 견해가 첨부되어 있다. 이 견해가 조선女들의 활약을 칭찬한 얘기인지, 아니면 성병의 감염에 유의하란 얘기인지 판단이 어렵지만, 적어도 조선인 위안부들이 일본女에 비해 순결한 처녀들로 구성되었다는 식의 주장은 설득력이 없다고 해야 할 것이다.

이와 비슷한 조사보고로 보병 제224연대본부 의무실의「1939~1942년도 위생관계 참고서류철(1/3)」중 1940년에 작성한 성병에 관한 제 통계표에 따르면, 일본女의 경우 1,427명 조선女의 경우 2,455명, 중국인은 1,535명으로 조선女의 성병 감염률이 타지 출신을 압도하고 있다. 이 조사보고서에도 '이번 사변에서 반도 부녀의 진출이 활발하나 병원(病源)을 가진 자가 많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일부 자료의 기록만을 가지고 일군 상층부에서 조선의 미혼처녀들에 눈독을 들이게 되었다는 식의 의도까지 간파하는 연구자의 놀라운 창작력에 머리가 숙여지는 바이다.

Posted by 眞明行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에드워디안 2012.01.02 11:3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성병에 감염된 국적 불명의 위안부도 3700여명이 넘었다니, 이들은 주로 어디 출신이었을지가 궁금해지네요.

  2. 강희대제 2012.01.02 16:1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잘 읽었습니다.

  3. 2012.01.02 16:2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 MAUS.K 2012.01.02 22:20  댓글주소  수정/삭제

      근거없이 자기비하적인 역사관을 갖거나 상대방에 대한 지나친 동경심에 정체성을 잃는 사고도 그다지 바람직 하지는 않다고 봅니다. 다만 제 자신부터가 조선까나 일빠로 불리는 판국에 이 부분에 대해 한마디 거드는 것은 괜한 참견이 될 거 같습니다.

  4. tex2100 2012.01.03 00:3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무조건 포스트 콜로니즘, 종속 이론, 민족주의 역사관으로 봐라 본다고 해서 해결되는 문제가 아닙니다. 위안부 문제는 조선인 스스로가 한 면이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나 그들이 알겠습니까? 일본이나 서구 같은 제국주의 국가 앞에서는 조선 민중은 '힘 없는 약자'가 되는 겁니다. 조선인 스스로가 위안부에 공헌했다는 것을 무조건 인정하지 않은 체로요.

  5. 45acp 2012.01.03 05:0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일본 근현대사를 공부하면서, 그리고 일본이라는 나라에 3년 가까이 머물면서 느끼는 것은 일본이란 나라는 옛부터 사회적 약자에게 잔인하고 강압적인 나라였다는 것이었습니다. 패전 후 미점령군의 성욕 해소용으로 그쪽의 직업여성으로 수요가 모자라자 정부차원에서 도시로 상경한 순진한 자국의 처녀들을 단순여급이나 사무직, 영어를 배울수 있는 기회라고 속여서 모집해 위안부로 '헌상'해놓고도'다수 일본 여성들의 정조를 지키기 위한 용단'이었다고 주장한 기시 노부스캐의 개드립이 대표적 사례겠지요.
    자국민에게도 저따위로 대하는 인간들이, 식민지인들에게 '평등'하게 대해봤자 저모양이 아니었을까? 그리고 저런 일본의 지도층들에게 무턱대고 사죄와 반성을 논해봤자, '우리국민들도 똑같은 꼴을 당했는데 새삼스럽게 무슨?' 식의 모럴해저드적 대응만 돌아오는게 아닐까란 생각이 들때가 많습니다.(그런 식의 모랄 해저드가 일본인들의 '우리도 전쟁의 피해자'라는 우리입장에서 이해하기 힘든 드립으로 발전하지요)
    그런 상황에서 어설픈 팩트로 그들을 비난해 봤자, 그들의 모랄해저드만 공고히 할 게 뻔하기에 좀더 객관적 차원에서 위안부 문제에 접근하려는 MAUS.K님의 시도도 분명 가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나아가 위안부 문제는 제국주의 국가의 식민지에 대한 성적 유린문제만이 아닌 당시 일본사회자체에 내포되어 있던 약자, 여성에 대한 잔인함(1930년대에도 동북 시골의 10대 소녀들이 빚 대신에 유곽에 팔려가거나 끌려가는게 비일비재하던 곳입니다.)에까지 시각을 확대하고 그 잔인함을 타 민족에게까지 행사했다는 측면에서 접근해 보는 것은 어떨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 에드워디안 2012.01.03 06:34  댓글주소  수정/삭제

      '사회적 약자에게 잔인하고 강압적인 나라였다'

      그런 측면에서 바라본다면, 한국도 일본을 떳떳하게 비난할 수 있는 입장은 아닙니다. ...1930년대 대공황기 일본 농촌의 '딸 지옥' 현상을 언급하셨는데, 당시의 (전세계적) 기준에서 '인권'이나 '휴머니즘'에 신경을 쓴 정부가 얼마나 존재했을지 의문입니다. 전체주의가 기반을 잡았던 독일과 소련이야 말할 것도 없고, 프랑스 같은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조차 공개처형 제도가 버젓이 유지되고, 자국 출신의 죄수들을 남미 오지로 유배보내 반쯤은 노예마냥 부려먹으며, 인간 이하로 취급하던 실정이었는데요. 북아프리카 일대의 '매춘 제국'은 또 어떻구요?

      지금도 유럽(특히 계급의식-학벌이 정관계를 지배하는 영국과 프랑스)이나 일본 지배층의 특권의식, 엘리트주의, 대중 멸시의 감정은 상당한 수준인 것으로 알려져 있습죠. 권력이란 암세포에 감염된 위정자들의 만행과 추태는 동서고금을 불문, 정도와 스케일의 차이만 제외하면 어디서나 마찬가지인 셈입니다.

    • 45acp 2012.01.03 07:41  댓글주소  수정/삭제

      에드워디안 님의 답글을 보니 확실히 제 표현이 좀 애매한 부분이 있었다는게 느껴지는군요.
      다만 일본은 자신들의 과오에 대해 당시 전세계 어디서나 비슷하지 않았느냐? 그런데 왜 우리만 갖고 물고늘어지느냐 식의 경향이 강하기에 일명 '어그로'를 끄는 측면이 강하다는 생각입니다.
      그리고 선악관이 우리들과는 상당히 다르다는 것도 약자에 대한 잔인함으로 연결되는게 아닐까란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우리야 좀더 감정적이고 즉물적인 정의감에 의해 선과 악을 구분하는 경향이 강하지만, 일본인은 그것이 질서냐? 질서에 반하느냐?라는 기준으로 선과 악을 구분하는 경향이 강하더군요 일명 和에 부합하냐 부합하지 않느냐는 것이지요. 따라서 전체적인 질서의 안정에 별 영향이 없다면 소수자나 약자의 희생은 그냥 넘어가고, 심지어 전체의 안정에 폐가된다는 이유로 저런 부조리에 대한 항의조차 묵살하는 경향도 느껴집니다.
      뭔가 사람을 위해 질서가 존재하는게 아니라 질서를 위해 사람들이 존재 하는 것같은 느낌까지....
      후쿠시마 원전 문제를 다룬 일본 정부나 피해지역 외의 일반 시민들의 모습을 보면 그런경향이 더욱 강하게 느껴집니다. 한국인들은 광우병 소동같은 과장된 선동에 너무지나치게 잘 혹하는 반면, 일본인들은 평소의 일상 다시말해 和가 깨어지는게 두려워 자신들이 요구할수 있는 정당한 요구까지 참고 인내하며, 당장 자기들 생활에 안정만 해치지 않는다면 후쿠시마 원전 문제같은 것도'모르는 게 약이다' 식으로 부조리를 방치하는 경향이 강하더군요.
      이런 느낌은 지진이래 1년가가운 시간동안 더욱 강하게 느껴졌고, 일본의 지인들도 저의 저러한 지적에 어느정도 동의하더군요. 저런식으로 문제점에 대해 안다해도 현재로선 바꿀 길이 없어 보인다 식의 자조섞인 동의 였지만......
      물론 저의 경우에도 한정된 인간관계와 경험만으로 일본을 정의하는 오류를 범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다만 저런 모습을 보면서 왜 우리와 일본사이에서 과거사 문제를 두고 왜 계속 평행선상태인지는 조금은 감이 오는 것 같습니다.

    • MAUS.K 2012.01.03 11:08  댓글주소  수정/삭제

      저 역시 에드워디안님의 말씀처럼 그게 일본만의 문제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국민 개개인의 인권과 가치보다는 국가의 이익이나 대의명분을 내세워 당위성을 부여하는 경우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참 많죠. 다만 일본의 경우 관이 주도하는 위기극복의 역사가 유난히 길었던 탓에 국민들의 자율성보다는 타성에 의존하려는 경향이 더 강한듯 합니다.

      일사불란함과 침착함은 그래서 때로는 경외의 대상이 되기도 하면서, 사회의 내재적 발전을 저해하는 요소로 작용하는 양면성을 가지고 있죠. 따라서 일본이라는 국가적 특성을 이해하고 외교적 갈등이나 문제를 해결하자는 45acp님의 취지에는 일부 공감하는 바입니다.

    • 백범 2012.01.05 23:24  댓글주소  수정/삭제

      일본이 '일본은 자신들의 과오에 대해 당시 전세계 어디서나 비슷하지 않았느냐? 그런데 왜 우리만 갖고 물고늘어지느냐 식의 경향이 강하다'면

      한국인들은 '자신들의 잘못이나 과오를 언급하는 것조차 허용하지 않고, 만약 그것을 허용하면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거나, 불평불만 많은 사람 정도로 치부해버리고 매장'시키려 듭니다.

      많은 한국인들은 피해자가 아니라 피해자인 척 하는 비열한 사기꾼들이 대부분입니다. 그리고 정말 중요한 것은 쉬쉬 하고 숨기고, 외부인 바가지씌우는데 명수들이지요. 솔직히 한국인들은 피해자라고 자칭할 자격도 없습니다.

      조선인 인신매매나 직업소개 업자들이 위안부로 팔아먹거나 가족, 친지들이 속임수를 써서 팔려간 여자들도 많은데, 그런데도 100% 일본만의 잘못인 것처럼 사실을 호도하는 것부터가 참 쓰레기같고 무책임한 발상일 뿐이지요.

  6. 2012.01.04 06:1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 MAUS.K 2012.01.05 14:31  댓글주소  수정/삭제

      삿쿠(콘돔)착용이 의무화된데다 삿쿠를 착용하지 않은 장병은 관계를 거부할 수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위안부는 매주마다 검진을 받았고 성병감염이 확인되면 격리조치가 되었다니 무한정한 감염자를 양성하지는 않았겠지요.

      물론 하루 최대 100명까지 상대해야했다는 어느 할머니의 증언은 말도 안되는 소리구요. 24시간 내내 식음을 전폐하고 스섹만 한다고 해도 1인당 14분 내에 처리를 해야 가능한 일이지요. 통상은 10인~15인 내외였던 것으로 조사되고 있습니다.

    • 2013.05.07 06:21  댓글주소  수정/삭제

      비밀댓글입니다

  7. 2012.01.05 23:3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8. w 2013.05.07 05:3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보통 표본 조사는 만명이면 만명 일일이 다 할 수 없고 무작위 추출로 조사합니다.
    위에서 언급하신 사료 외에도
    일본군 고위층의 1938년 언급 등이 있는데 대충 내용은 이렇습니다
    -위안부는 어릴수록 좋은데 내지인(일본인)보다 조선인이 어리고 초심자라 흥미롭다-(일본군 관료의 이름은 정확히 생각나지 않는군요)
    이 외에도 같은 말(성관계 경험이 없는, 어린 여자)이 반복되어 증언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물론 일본인 여자는 모두 매춘부 출신에 늙은 여자였고 조선인 여자는 어리고 성경험이 없는 여자만 존재했다!라고 단정지을 수는 없을 것입니다만
    여러 일본군들의 증언과 자료, 보고서를
    보았을때 전반적으로 조선인 여성은 20세 이하의 성경험 없는 처녀가 "대부분"이고
    일본인 여성은 "대부분" 매춘 경험이나 성경험이 있던 20세이상의 여자이다. 라고 유추할 수 있을 것입니다.

    매춘 경험이나 성 경험등으로
    조선인과 일본인을 구분 짓는 것은
    일본인들은 조선인이 순결해서 위안부로써 선호했다고 말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많은 일본군들, 당시 위안부들의 증언을 보면)조선인 여성은 취업사기로 온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에 어린 여성이 많고, 성경험이나 매춘 경험이 없는 여성이 대부분이었던 것과 다르게
    위안부로 일본인 여성들은 매춘이나 성경험이 있으니 자발적으로 왔을 가능성이 있으니 엄연히 조선인위안부와 일본인위안부는 그 문제의 성격이 다릅니다.

    첫번째,왜 일본인 여자보다 조선인 여자의 가격이 낮았냐?라고 물으신다면
    그 시절은 일본 아동 노동자가 조선 성인 노동자보다 많은 임금을 받던 시절인데, 내지인보다 식민지 여성의 몸 값이 더 높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이해할 수 없습니다. 성병 유무로 가격이 책정되거나 성관계 유무로 가격이 책정된다고 착각하신건지요...

    두번째,조선인 성병 비율이 타민족보다 높았던 이유는?

    먼저, 조선인의 성병 검사가 언제 이루어졌는지 봅시다.
    조선인은 성병에 걸린 사람이 극히 적었다-라고 말하는 군의관의 조사는
    조선인 여성이 처음 위안소에 왔을 때입니까? 조선인 여성이 위안소에서 생활하고 있을 때입니까?

    즉, 당신은 조선인이 위안소에 오기 전부터 성병 보유자인지, 아닌지,
    위안소에서 옮았는지, 위안부 생활에서 걸리게 된 성병인지 하는 여부를 전혀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예를 들어
    조선인 여자들이 처음 위안소에 왔을 때 하는 성병 검사를 통해서 조선인은 성병 보유가 극히 드물고 건강체가 많다는 당시 일본인 군의관의 언급이 있습니다만
    조선인에게 성병을 옮은 일본 병사 비율을 통해 위안소에 존재한 조선인의 숫자는 50%으로 통계된다(나머지는 중국인,일본인 순서)라고 조사 발표한 일본인 교수가 있습니다.

    이럴 경우, 보통
    아-성병이 없었던 조선인 여성이 위안소 생활을 하는 동안 성병이 걸렸구나,라고 생각하는 것이 보통 아닐까요?


    마찬가지로 일본군들의 증언을 보면
    중국에 있는 위안소들에 있는 여성들은 대부분 조선인이고 90%가 조선인이거나 100%가 조선인이었다는이야기들이 많습니다.

    예를 들어 위안소에
    조선인 1000명이 있고 일본인 10명이 있습니다. 조선인에게 성병 옮은 일본인이 많을까요? 일본인에게 성병 옮은 일본인이 많을까요?

    만약 조선인과 일본인이 각각 100명씩 있는데 조선인에게 성병을 옮은 일본군은 60명인데 일본인에게 성병을 옮은 일본군이 20명이면, 조선인이 순결하지만은 않다는 결론이 나올 수 있습니다만

    위안소에는 조선인이 대부분이었으므로
    당연히 타민족보다 성병 보유 가능성이 더 높을 수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위안소에 조선인이 몇명 있었는가 대략적인 비율로 통계한 자료는
    위에서도 언급했다싶이
    조선인 여성을 상대해서 성병에 걸린 병사 숫자, 일본인 여성을 상대해서 성병에 걸린 병사 숫자, 기타 중국 여성을 상대해서 성병에 걸린 병사 숫자로 조사했습니다.

    그 말 뜻은 무엇이냐하면,
    위에서도 말하고 있습니다만
    만약 위안소에 50명의 조선인과 50명의 일본인이 있는데 조선인한테 전염된 일본군이 60명이고 일본인한테 전염된 일본인이 20명이라고 말하면 글쓴이님의 주장처럼 조선인은 순결하지만은 않다!라고 말할 수 있겠지요.
    하지만
    당시 위안소에는 90명의 조선인과 10명의 일본인이 있습니다. 똑같은 환경에 처해져있고 성병은 서로간에 전염됩니다.
    이런 상황에서 조선인으로부터 전염될 확율이 높은건 당연한건데 이런 배경은 전혀 고려하지않고 성병의 통계만 보고 기존 자료를 부정하는 행위는 비이성적으로 보이네요.

    순결한 여성을 데리고 왔다-라고 하는 주장에 반박을 하고싶으면, 위안소에 오기 전부터 성병에 걸렸었다드라, 하는 것을 증명해야 합니다만 글쓴이님께서 위안소 생활에서 걸리게 된 성병 통계와 혼동하고 있어 도대체 무엇을 말하고 싶어하는지 의문입니다.

  9. ㅎㅎ 2014.01.16 15:2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한국말잘하는 극우 일본인이라고 믿을게요 정말 같은 한국인이라면 이런블로그를운영하는것 자체가부끄러워질것같아요 이년전 글인데 지금뉴스에 나오는 증거들 일본도부인못하는 수많은 비인간적인만행 사진자료들 일본도반박못하는것 어디한번반박해보시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