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현.대.사 2012.01.03 01:22
방선주 박사가 발굴한 일본군 암호전보문에 의하면 위안부 모집과 관련 적지 않은 돈이 오갔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위안부 모집비용은 전차금 명목으로 소요된 비용이 가장 컸을 것이고, 그외에도 운임비, 식대, 숙박비가 포함되었을 것으로 보여진다. (암호 전보문 내용은「정신대연구소 소식 제30호, 2001」참조)

1945년 3월 14일 장가구(張家口)에서 일본 동경으로 보낸 비밀전보의 내용을 보면, 대략적인 1인당 모집비용을 산출해 볼 수 있는데, 구체적인 내용은 생략하고 비용 부분만 간추려 소개하자면 다음과 같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송금액을 위안부 인원수로 나누면 적게는 5,000엔에서 많게는 15,000엔이 소요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위안부를 수입한 현지 군부대에서 직접 모집비용과 소정의 수수료를 업자에게 송금하고 있는데, 송금환의 거래취소나 위조문제를 방지하기 위해 현지 은행에 3배 정도되는 보증금을 예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렇다면 조선에서 중국이나 기타 해외 등지로 위안부를 내보냈을 경우 업자들에게 들어오는 송금액이 있었을 것이고 이 송금액은 고스란히 은행 송금환 계정에 잡혀있을 것이다. 따라서 이를 추적하면 국내 학자들이 추산하고 있는 최대 20만명의 위안부설은 "장군님 뻥치신다" 수준으로 간주해도 무방할 듯 하다.

1910년부터 1943년까지 조선의 각 은행에 잡힌 위체수불고 현황을 보면, 해외에서 국내로 송금한 거래 규모을 어느정도 파악할 수 있다. 위안부 20만명이 10년에 걸쳐 해외로 송출되었다고 터무니없는 가정을 해볼때 중일전쟁 이후에는 위안부 수요가 증가해서 송출인원도 비례하여 급격히 증가했을 것이다.

그러면 상기 비밀전보문에서 추산된 1인당 모집비용을 5,000엔~15,000엔으로 계산했을 경우 송금환 수입금액은 급격히 증가하거나 어느정도 영향을 미쳤어야 한다. 하지만 아래 도표에서도 볼 수 있듯이 중일전쟁기 이후 해외 위체 수입 증가율은 그 이전에 비해 두드러진 변화가 없다. 설령 위체수입 증가분의 전액이 위안부 모집비용과 관련되었다 가정해도 위안부 20만명은 택도 없는 개솔이라 사료된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왜 이런 오류가 발생했을까 하면, 군인 몇명당 위안부 몇명이라는 아주 단순한 산수로 위안부 규모를 터잡았기 때문에 생긴 초보적 실수일 것이다. 일본이 운영한 위안소는 중국에서 남태평양에 이르는 각지의 모든 부대에 설치된 것이 아니라, 병참이 운영되는 거점 부대를 중심으로 설치된 것이기 때문에 이를 감안하지 않으면 저런 무리수가 나올 수 밖에 없다.

20만명의 위안부를 고용할 수 있는 천문학적인 돈을 대체 어떻게 일본 정부가 감당했을 수가 있겠나. 상식적으로 말이 되는 소릴 해야지 이 양반들은... 설마 이 많은 인원을 돈도 안주고 그냥 납치나 유괴로 데려왔다고 하진 않겠지?

Posted by 眞明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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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님 2013.01.20 13:0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20만명 가지는 안되더라도 그렇게 될수도 있는겁니다.
    당시 일본정부가 그 돈을 제대로 지불 하지 않았을 것을 감안하셔야죠...

    • 眞明行 2013.04.11 19:3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일본군이 돈을 제대로 지불하지 않았다면, 모집업자들은 그냥 공짜로 위안부를 잡아다가 자비로 전선까지 끌고가서 인계한모양이군요.

  3. 감탄고토 2013.04.09 10:5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일본군 위안부에게 돈이 한푼도 지급된 적이 없다는 일본군 회계 담당 모리카와 마치코씨의 기록이 있었습니다. 돈이 한푼도 지급되지 않았으니 충분히 가능한 이유겠지요.

    • 眞明行 2013.04.11 19:3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모리카와 마치코씨의 나이가 몇인데, 당시 일본군 회계담당이었다는 말입니까? 그 양반은 위안부 문옥주의 이야기를 전한 일본의 프리랜서 작가일 뿐입니다.

  4. 2013.05.22 03:2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조선인만 20만명이 아니에요

    조선인 50% 중국인 30% 일본인12% 그외 8%

  5. 2013.06.06 20:4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20만명은 근로정신대에 동원된 수입니다. 그중 조선인이 5만~7만이고 13만명은 일본인이었답니다. 일본군위안부는 정신대 간 여자 소수가 취업사기나 납치등을 당해서 생긴겁니다. 우리가 도와야할 할머니들은 이 할머니들이죠. 정신대와 위안부는 다릅니다. 이 정신대와 위안부를 혼동하기 시작하더니 정신대 20만명이 위안부 20만명으로 둔갑되어 왜곡을 했습니다. 위안부 할머니들 이용해먹는게 꼴페미들입니다. 이걸로 노무현때 꼴페미들이 엄청 설쳤습니다. 근로정신대 아니라도 20만명이 말이 안돼는게 20만명이 말이 안돼는게 그 당시 조선인구가 2천만명인데 어떻게 20만명이 동원될 수 있을까요. 여자인구만 7,8백만명인데 20만명이면 20대 여자 대부분이 위안부였다는건 이건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숫자입니다. 위안부가 실존했었다는건 사실이지만 자꾸 수를 부풀리는것도 일본한테 빌미를 주는겁니다.

  6. 2013.06.06 20:4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 숫자 계산도 이영훈 교수가 단순계산한거죠. 어쨌든 20만명은 완전 개뻥입니다. 조선인 강제징용수도 날조구요. 자꾸 한국에서 저런식으로 날조하니까 일본에서 지랄하는거지요.

  7. 2013.06.06 20:4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강제징용도 2백만 3백만 이러는데 상식적으로 말이 안됩니다. 그럼 조선남성 대부분이 끌려간게 돼거든요.

  8. 01 2013.06.07 00:2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잘 정리된 글이네요.

    논리적으로 생각하고 합리적으로 정보를 분석하는 한국이 되어야 하는데

    마냥 동정여론으로 할머니들 불쌍하다며 근거없이 일본 미워하는건 이제는 그만해야합니다.

    쓸데없는데 에너지를 낭비할 필요는 없죠.

  9. 아아 2013.06.09 01:4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럼 저렇게 월급주고 한게 끝이고 일시켜준다고 데려가고 강제로 끌려간거는 없다는소리인가요??

  10. J X 2013.08.08 09:3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와.. 미치겠다.!! 뭔 말이 되는 소릴 해야.. 들어주지!!!!
    옆 섬나라에서 갖혀들 사니까. 심심하고 답답하신가봐~
    당장 우리내 할머니, 할아버지께서 겪으신 일들입니다.
    반성합시다.

  11. zzgs 2013.09.25 07:1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잘 보고 갑니다. 예전에는 미처 생각못하던 걸 짚어주시는군요.(윗글보고 말문이 막힌 나머지 딴소리하는 인간들도 몇몇 보이긴 하는군요. ㅋㅋㅋ) 사실 근거없이 숫자를 부풀려대는 짓거리를 하는 인간들이 꽤 많긴 하지요. 예전에 본 한 진상중엔 통일되면 북한지역의 인적자원유출을 해소하기 위해 남한사람 천만명을 강제징용해서 부칸에 쳐넣을거라는 아스트랄(?)한 소리를 하던 작자도 생각납니다. 솔직히 천만명이면 20세이상 청년층의 대다수를 다 부칸에 끌고가겠다는 뜻인데 애초에 개념이 없는것이지요. 그런 사람들 보면 마치 감정호소를 위해서 닥치고 다 숫자 안에 집어넣는게 특징인것 같습니다..

  12. 맹목적 2013.12.01 00:0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맹목적인 애국심은 비웃음만 받을 뿐입니다. 역사를 올바르게 알아야 일본에 대적할 수 있습니다. 20만명 위안부설은 매우 허황된 것이며, 이것은 일본 우익들의 표적이 되어 비웃음을 사고 있습니다. 상식적으로 20만명이란 엄청난 숫자를 위안부로 삼을 동안 우리나라의 가족들과 이웃들은 가만히 있지 않았을 거니까요. 이것이 위안부가 있었다는 것을 부정하는 것도 아닌데 사실을 증거로 둔 주장에 대해 친일파냐? 이딴 소리 하는 사람들은 무식한 사람들입니다. 일본에게 무식함을 보여주고 망신을 당하는 겁니다.

    • 동감 ㅇㅇ 2013.12.18 11:59  댓글주소  수정/삭제



      공감합니다.


      http://pds26.egloos.com/pds/201310/11/56/d0065056_5257c2043d791.jpg



      http://pds21.egloos.com/pds/201310/11/56/d0065056_5257c20734369.gif



      http://pds21.egloos.com/pds/201310/11/56/d0065056_5257c20ab5dd4.png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7090600289111001&edtNo=6&printCount=1&publishDate=1997-09-06&officeId=00028&pageNo=11&printNo=2977&publishType=00010




      이것들만 살펴보아도 종군위안부 문제는 다시 재조명되야 한다고
      봅니다.

    • 동감 00 2013.12.18 12:2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을 다시 수정해서 올리면


      http://pds26.egloos.com/pds/201310/11/56/d0065056_5257c2043d791.jpg



      http://pds21.egloos.com/pds/201310/11/56/d0065056_5257c20734369.gif



      http://pds21.egloos.com/pds/201310/11/56/d0065056_5257c20ab5dd4.png

    • david yoo 2016.02.15 03:52  댓글주소  수정/삭제

      20만명 위안부설은 일본 요시미 요시아키 교수의 5 - 20만명 사이 일거라는 설에서 시작된것으로 알고 있으며 여기서 주의해야할 것은 한번에 20만명이 동원됐다는것이 아닙니다. 베트남전의 경우 8년동안 31만명의 군인이 파견되었으나 그렇다고 해서 동시에 31만명이 참전한건 아닌것처럼 말입니다. 위안부의 경우에도 마찬가지겠죠. 또한 20만명에는 한국 위안부만 포함된게 아니라 다른 나라의 위안부 역시 포함되어 있으며 한국 여성들은 약 50프로 정도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13. rkddkwlzb 2014.04.14 19:0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보여지는 자료가 전부일 거라 생각하는 건가요?
    위안부와 관련한 많은 자료들이 폐기되었고 남아있는 자료가 있더라도 일본은 불리한 자료는 절대로 내놓지 않고 은폐하죠.

  14. 녹두장군 2014.10.08 10:2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설마 이 많은 인원을 돈도 안주고 그냥 납치나 유괴로 데려왔다고 하진 않겠지?
    //
    이게 실제 한국인들이 믿고있고 주장하고 있는 내용임 ㄷㄷ

  15. ㅁㅎㅁㅎㅁㅎㅎㅁ 2015.01.07 13:4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뭐지 이 논리적 비약은?
    성노예 숫자에 대한 정확성이 떨어진다. -> 일본은 강제 동원 하지 않았다?
    아휴~ 이런 또라이 세끼 블로그에 글 다는 시간도 아깝다만
    너 정신병자냐? 지엽적인 거 몇 개 물고 늘어지면서 별 꼴같잖은 호도질은
    애~휴~
    미친 세끼들이 왜이리 많어

    • 2015.01.13 22:56  댓글주소  수정/삭제

      이래서 멍청한놈들은 댓글달면 안되
      이 글 주제가 위안부 20만명설에 대한 반론이지
      위안부 강제동원설에 대한 반론은 아닌데?
      물론 글쓴이의 이론이 위안부 강제동원설에 대한 반박이 주를 이루지만 적어도 이 글은 아닌데?
      팩트에는 팩트로 반박해라 시덥잖은 개소리 지껄이지말고

    • 지랄탱이 2015.07.15 12:41  댓글주소  수정/삭제

      닭대가리 같은놈 당시 조선 인구가 몇명인데 여자를 20만명을 데리고 갔다는 거냐? 머저리개뼈다구병신같은새끼야

  16. 다크소울 2015.03.16 16:1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솔직히 인용한 자료가 블로거가 손으로 그려서 조작한건지 정말 맞는 자료인지도 의심스럽습니다.
    하지만 정말 맞는 자료라고 치더라도,
    위안부 모집에 들어간 돈이 모두 "대기타외국" 예산에만 들어갔다면 혹시나 만의하나 블로거 의견을 조금 고려할 가치가 있을지도 모르죠.
    하지만, 그보다 훨씬 규모가 큰 "조선내" 예산에 조선 위안부 모집비용이 섞여 들어가 있다면.....
    1943년과 1942년간 예산 차이인 813,953,000원만 쳐도, 블로거가 역시 수상쩍은 종이 쪽지 하나에 근거해서 주장하는 평균 모집 비용인 10,000원 기준으로 81,395명이나 위안부를 모집할 수 있는 금액입니다.
    최저 모집 비용인 5,000원 기준으로는 162,790명이나 모집할 수 있는 금액이구요.
    이 따위 수상쩍은 글과 자료를 올려서 위안부 규모 축소를 시도하는 이유는 블로거가 일본인이기 때문인가요? 아니면, 친일파 매국노이기 때문인가요? 말투가 공손하지 못하지만, 반말이나 욕을 쓰고 싶은 걸 참고 적고 있으니 양해 바랍니다.

    • 한심한엽전 2015.03.20 14:36  댓글주소  수정/삭제

      지가 진실이라 믿는 세계관과 다른 사실들을 접하게되면 생각짧은 한국인들이 보이는 전형적인 반응이 이런것임.

      "아닙니다 아닙니다 이럴리가 없습니다. 이건 쪽바리들의 날조입니다. 글쓴이는 매국노입니다"

      순진한 열정이 눈을 멀게하는 20대 초중반이라면 그나마 이해하겠는데 나이 30대 들어서도 저런다면 답이없다. 답없는 좌좀 감성팔이 테크로 민족팔이 정치꾼들에게 이용이나 당하며 들쥐근성으로 한평생 살아가는거지.

    • 眞明行 2015.03.21 11:1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다크소울 / 위안부 모집비용은 모집업자에게 군에서 지불하도록 되어 있고, 현금이 아닌 보증금이 예탁된 계좌로 이체를 하도록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당연히 대외계정으로 잡히는 것이고요. 계정상 잡히는 금액의 규모가 아니라, 저쪽분들 주장처럼 위안부가 일제말에 급증했다면 계정상 돈 부친 규모도 급증했을테니 계정의 증가율을 봐야하는 겁니다. 반론도 좀 그럴싸하게 하시죠. 한심합니다.

  17. 제대로보자 2015.07.15 12:5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일본군대는 위안소를 운영하는 데 일정규칙이 있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입니다. 위안부 한 명당 병사들의 비율은 대략 1:100이었습니다. 요즘으로 말하면 1개 중대당 한 명 정도의 위안부가 있던 샘입니다. 그런데 대동아전쟁 상시 일본군의 숫자는 8-9백만 정도로 추산됩니다. 그리고 말기에는 최대로 충원되어 천만이 넘었다고 하는데 사망자도 많았지요. 천만을 가정해도 위안부의 최대숫자는 10만입니다. 그런데 위안부의 대부분은 일본여자였고, 일본여자로 이 비율을 맞추지 못했기 때문에 조선과 대만여자로 충원한 겁니다. 전체적으로 일본여자가 80%였기에 20% 즉 2만명이 조선과 대만 출신입니다. 그러니 조선여자가 1만명 정도였다라고 보는 것이 합당합니다.

  18. david yoo 2016.02.14 15:0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주인장이 일부러 그러는건가 아니면 단순한 실수 일까???? 왜 조금씩 팩트를 바꾸지?

    번역된 해당 비밀 문서를 잘 살펴보면, 당지는 해당 지역 즉 중국 장가구(張家口)를 뜻하고 장가구에서 일본 군인들을 위해 위안부 관련 업체들이 위안소를 설립했고 위안부의 수입을 신청했는데 송금 발송지(일본)에서 발송하는 금액의 3배를 당지(장가구)에서 해당 업체들이 은행에 먼저 비치해야 일본에서 송금된 금액의 수령이 가능한데, 너무 높은 금액으로(수령액의 3배) 비치가 불가능하기 때문에 이 규정을 제거하든지 낮쳐주기 바란다는 내용이다. (2번 내용) 난독증 있는 넘들은 차근 차근 잘 읽어 봐라.


    현금까지 (일본)군 전용의 위안소를 위한 수배(手配)는 이루어지지 못했었는데 근래에 와서 군의 요구에
    부응하여 당지의 업계에서는 1 개소를 설립했고 위안부의 수입을 신청했다. 그러기 위하여 다음과 같은
    조치를 바라고 있다
    1) 송금총액의 허가 인준
    2) 송금 규정에 의하면 당지에서는 송금액의 3배의 금액을 (은행에) 비치하여야 된다. 그러나 현 상황하
    에서 당지의 업체들이 이러한 자금을 축적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고 함으로 이 규정을 제거하든지
    경감시키는 방책을 고려하여 선처해 주기를 우리는 바라고 있다.


    조선에서 중국이나 기타 해외 등지로 위안부를 내보냈을 경우 업자들에게 들어오는 송금액이 있었을 것이고 이 송금액은 고스란히 은행 송금환 계정에 잡혀있을 것이다. 따라서 이를 추적하면 국내 학자들이 추산하고 있는 최대 20만명의 위안부설은 "장군님 뻥치신다" 수준으로 간주해도 무방할 듯 하다.


    1. 그 당시 조선에서 해외로 위안부를 보냈을 경우 일본 본토에서 보낸 송금 기록이 어딘가 남아 있을 것이나 그 송금이 조선으로 유입됐다는 근거는 무었인가? 업자들이 위안부를 데리고 간 해외에서 수령한게 아니라 조선에서 수령했다는 근거는 무엇인가?

    2. 저 금액이 단순히 위안부 1인당 모집하기 위해 쓰여진 금액이 아니라 다른 부대 비용도 포함되어 있다면 어떻게 분리해서 계산할건가? 왜 업소 마다 5000 - 15000엔 까지 3배까지 차이가 날까?? 이런건 안 궁금하지?


    3. 해당 문서를 보면, 업체마다 요청한 금액이 이상한게 아직 위안부들을 데려오기 전인데 어떻게 무슨 근거로 산출해낸 금액일까? 만약, 이미 위안부를 구한 상태에서 산출해낸 금액이라면 저 업소에 포함된 위안부 들이 정상적인 절차를 거친 합법적인 일본 위안부일까 아니면 각 식민지에서 강압적으로 송출된 위안부인가?


    4. 일본의 경우 그 당시에 선진국중의 하나 였으며 이미 1910년 부녀매매금지에 관한 국제조약과 1921년 부인 및 아동의 매매금지에 관한 국제조약에 가입을 한 상태였는데, 이런 불법적인 행위에 관한 자금을 기록이 고스란히 남을수도 있는 금융권을 통해서 합법적으로 보냈을까?? 만약, 그랬다면 그런 기록들이 온전히 남아 있거나 공개 될수 있을까?





    • 眞明行 2016.02.20 20:5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뭐래니?

      당발송금, 타발송금 뜻 모르면 답을 달지마세요.
      1938년~1942년 대장성이 개정한 해외송금규정은 읽어보고 온거?
      기가차서 하나하나 댓글 달기도 짜증나네.

  19. 병신 2016.02.25 09:1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20만명은 13개국에서 동원된 위안부 숫자입니다.
    병신새끼..에휴..
    뉴라이트 깨시민인 척 하는 게 더 무섭네.
    역사 바로보기는 그렇게 하는 게 아닙니다.

    • 2016.02.25 21:08  댓글주소  수정/삭제

      누가 그래~? 20만이 존 세계인이라고

    • 眞明行 2016.02.26 01:2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군위안부 총수에 대한 학자들의 의견

      千田夏光 8.4만 (이중 조선인은 6.5만)
      金一勉 20만 (이중 8~90%는 조선인)
      秦郁彦 6만~9만
      吉見義明 5만~20만
      板倉由明 3만
      上杉千年 4만~6만
      林博史 수만~수십만 (위생콘돔 배분으로 추계)
      高木健一 10만~20만
      鄭鎭星 8만~20만 (절대 다수는 조선인)
      蘇智良 30만~40만 (조선인은 10만~20만)
      G.힉스 13.9만 (700만명에 50:1로 계산)
      C.S.soh 7만~20만 (80%는 조선인)

      20만명이 13개국에서 동원된 위안부수라고?
      저 중 절대다수는 조선인이라는데? 그럼 뭐가 달라져?
      누가 병신인지 이제 잘 알겠으면 꺼지렴.

    • 2016.03.05 18:44  댓글주소  수정/삭제

      ㅋㅋㅋㅋㅋㅋㅋㅋ 위안부 20만이 전세계 13개국 총합 와 진짜 정말로 웃겼다 이런 개새끼들이 귀향보고 팝콘뜯나며 양아치짓 하겠지 아마?

  20. ㄻㅄ 2016.03.10 14:1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http://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49628
    이거라도 보고 와라.
    20만명은 학자들마다 주장이 다른 부분인데 지가 본 게 팩트인 것마냥ㅋㅋㅋㅋ
    글 병신같이 적어 놓고 좆도 안 되는 반박하는 꼴 좀 보소
    '설마 이 많은 인원을 돈도 안주고 그냥 납치나 유괴로 데려왔다고 하진 않겠지?'
    크 뉴라이트님 무서워서 지리겠습니다ㅠㅠ
    당사자들이 말하는 건 구라고 니가 추측하는 건 팩튼가요??

    • 2016.03.20 17:55  댓글주소  수정/삭제

      우우우우우 우리 할머니 명예를 훼손하였단 말이냐아아아아아^^

    • 2016.03.20 17:56  댓글주소  수정/삭제

      할말이 없으니 다큐 들이대면서 욕만^^ 제발 위안부 관련해서 책이나 좀 보고 오지?

  21. 다음 이용자 2016.04.24 16:5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멍청이 일본은 고용한게 아니라 납치하고 강제로 끌고간거다! 다른 나라까지 합쳐서 20만명이고~
    5 세 소녀까지 위안부 ... 일제 강제 동원의 증거 나왔다 2014 년 02 월 10 일 08시 35 분 [ⓒ 중앙 일보 / 중앙 일보 일본어 버전] comment 16 share mixi 일본군이 제 2 차 세계 대전 당시 위안부를 강제 동원한 사실이 문서를 통해 확인되었다. 또한 위안부 관련 기록에 대한 유엔 교육 과학 문화기구 (유네스코) 세계 기억 유산 등록도 추진된다. 성균관 (성균관) 대학 동아시아 역사 연구소의 한 · 혜인 연구원은 8 일 중국 상하이 사범 대학에서 열린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위한 한중일 학술회의'에서 상하이党案館 (정부 기록 문서 실)에 소장되어있는 「시민 (중국인) 楊水 길이가 우라 카미로 6 번지에 개설 한 위안소 상황에 대한 이슈 "(R-3-134)를 공개했다. 이 문서는 상하이 경찰 국장이 1939 년 2 월 25 일 시장에게보고 한 것으로, 楊水 길이가 위안소 개설을 위해 당시 상하이를 점령하고 있던 일본군 헌병대와 육군 경비대에 행정 허가를 받았다는 사실을 기록하고있다. 이 위안소는 "일본군 전용"이며 통역 및 미성년자 15 세의 여성을 포함한 7 명의 위안부가 있었다고 문서에 기록되어있다. 한 연구원은 "일본군이 직접 부녀자를 강제 연행 해 친일 중국 업체를 통해 위안소를 개설 한 공문도있다"며 "일본군이 중국의 괴뢰 (괴뢰) 정부를 이용하여て 군 위안소를 개설하고 관리하는 제도를 만들었다는 사실을 확인 한 것 "이라고 밝혔다. 샤베이 남경시 당 案 館 책임자도 "일본 괴뢰 정부 위생국이 작성한 기록은 위안부의 정기 신체 검사의 내용이 상세하게 기재되어 일본군이 중국 기업의 사무실과 3 층 주택도 빼앗아 위안소로 활용했다는 자료와 이에 대한 시민의 진술이 포함되어있다 "고 밝혔다. 이날 회의에 참가한 일본의 후지 나 소우 · 大阪産業大 교수는 "위안부 문제는 여성의 잔혹한 인권 침해이며, 보편적 인 인류의 양심에 관한 문제 다. 최근 상황이 최악으로되어 있지만 일본은 당연히 사과하고 반성해야한다 "고 지적했다. 이번 회의에서는 중국인 위안부의 숫자가 한국인 위안부 (최소 5 만명에서 최대 29 만명)보다 많은 최대 30 만여명에 달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회의 참석자들은 한중일 협력은 물론 인도네시아 · 필리핀 · 대만 · 네덜란드 등 국가의 위안부 문제를 연구 한 각국 연구자들과 국제 연대 강화를 모색 해 나가기로했다. 그들은 또한 위안부 관련 기록의 유네스코 세계 기억 유산 등록을 추진하기로했다. 이에 앞서 한국 여성 가족부도 지난달 일본군 위안부 관련 자료의 현황을 조사하고 2017 년에 유네스코 세계 기억 유산 등록 신청 준비에 들어가면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