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현.대.사 2012.01.06 11:07
3. 정○○ 할머니의 증언

"어느날 내가 일해주던 주인집 아들이 나를 강간하려 해서 나는 죽을 힘을 다해 반항하여 겨우 빠져나왔다. 정신없이 빠져나와 혼자 몸으로 부산 바닷가에 와서 눈물을 흘리면서『연락선은 떠나가네』라는 노래를 부르며 내 신세를 한탄하고 있었다. 갑자기 뒤에서 몇명의 일본군인들이 나타났다. 나는 반항하지 못하고 입과 눈을 틀어막힌 채로 군용트럭에 실렸다. 그 때 나는 열네살(1938년)이었다."

정대협에서 채록한 정할머니의 증언을 보면 14살의 어린 나이에 일본군인에 의해 납치를 당한 후 강제로 위안부 생활을 했던 것으로 보인다. 정할머니의 증언은 일제의 위안부 모집에 있어 공권력에 의한 폭력과 강제가 수반된 사례로 학계에서 널리 인용되어왔다.

그런데 1996년 3월 6일 연합뉴스「北韓국적 정신대 할머니 영주귀국」제하의 기사를 보면
"외무부에 따르면 정할머니는 지난 39년 14살때 부산 어느 부잣집에서 식모살이하다 청년들에 의해 하얼빈으로 강제로 끌려가 군대 위안부가 됐다."
고 되어 있다. 납치를 당한 나이는 같으나 연도가 1939년으로 다르고, 일본군인이 아닌 신원불상의 괴청년들에 의해 납치를 당했다고 한다. 일본군인에 의해 납치를 당한 것과 일반 청년들에 의해 납치를 당한 것은 여러모로 의미가 다를 수 밖에 없다.

그런가하면 이보다 앞선 1992년 7월 31일  동아일보「종군위안부 정부보고서로 본 전모」제하의 기사에는
 "1942년 3월 당시 내 나이가 14세에 불과할 때였다. 부산에서 식모살이를 하던중 잠깐 놀러나갔다가 일본 순사에게 잡혀 임시구금소에 10일 가량 구금된 뒤 기차로 만주의 위안소에 넘겨져 하루 15~20명의 군인을 상대했다"
라고 기술되어 있는 바, 역시 나이는 같지만 납치당한 년도가 1942년으로 다르고 납치된 경위도 놀러갔다가 일본 순사에게 잡혔다고 되어 있다. 그리고 군용트럭에 의해 곧바로 압송된 것이 아니라 임시구금소에 10일 가량 구금된 뒤에 만주로 이동하였다고 되어 있어 납치과정도 상이하다.


4. 정△△ 할머니의 증언

살아 생전 위안부 피해보상 및 사죄촉구 활동에 남다른 열정을 보였던 정△△ 할머니의 증언은 안타깝지만 그대로 가져다 쓰기에는 오류가 너무 심각해 보인다. 정대협에서 채록한 그의 증언을 보면 구체적인 연대기가 나와있지 않은데 다행히 서문에 간단한 약력이 나와있다.

◈ 1924년         경상남도 하동에서 출생
◈ 1937년(14세) 집에서 취업사기로 연행
◈ 1938년(15세) 부산→시모노세키→대만→중국 광동→태국→싱가포르→사이공→인도네시아 등으로 이동
1938년(15세) 인도네시아 수마라이에서 위안부 생활
◈ 1945년(22세) 해방 후 싱가포르 수용소 생활
◈ 1946년(23세) 부산으로 귀국

위의 약력 중 취업사기에 속아 위안부가 된 시점이 가장 중요한다. 할머니의 구술을 보면 "열 네살에 잡혀가서 동짓달에 갔어."라고 언급하고 있어 위의 약력상 연대기는 할머니의 구술 내용과 일치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문제는 여기서 시작된다. 할머니가 14세였던 1937년에 부친은 창씨개명 거부하다 일제의 미움을 샀고, 그 후 놋그릇 공출까지 거부하다 일제에 잡혀갔다고 되어 있다. 주지하다시피 창씨개명은 1939년의 일이고, 마을 단위 놋그릇 공출은 1941년「유기 제작 및 판매 금지령」이 공포된 이후의 일이다.

할머니가 연대를 착각하고 있거나 아니면 의도적으로 피해 연령대를 낮추고 있을 수도 있다. 시간을 달리는 할머니의 증언은 계속된다. 15세였던 1938년에 취업사기에 속아 부산에서 일본 시모노세키를 거쳐 인도네시아로 이동했다는데 인도네시아는 1942년에 일본이 점령했으므로 할머니의 증언은 심각한 오류에 부딪히게 된다. 또한 위안부 이송은 할머니의 설명처럼 수천명씩 태운 대규모 함선이 저렇게 중국과 동남아 각지를 셔틀하며 사람을 내려주는 일은 없었다. 병력을 태운 군수송선이기 때문이다.

할머니는 또 취업사기의 순간을 증언에서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메칠 후에 이장이 와 '아가씨, 일본에 센님바리 맨드는 공장에 가서 한 일년 아니 이년 내지 이년 반만 고생하시고 나오시면 됩니다.' 그래. 그러면 내가 가는 날 아버지가 풀리 나온다 이기라."
그런데 센님바리 만드는 공장이란 없다. 센님바리는 천인침(千人針), 말그대로 가가호호 천명의 여자가 아래의 사진과 같이 돌아가며 군인의 복대를 1인당 한땀씩 바느질을 하는 것으로 이걸 차고 다니면 전쟁터에서 총알도 피해다닐 수 있다는 일종의 부적 같은 것이다. 이게 이상했던지, 다른 증언자료에서는 센님바리 공장이라 하지 않고 "방직공장"이라 정정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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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眞明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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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igTrain 2012.01.06 22:2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구술사 연구가 나름대로 의미가 있고 중요성도 없진 않지만 왜 제한적으로, 검증을 거쳐 받아들여져야 하는지 알 수 있을 것 같네요..

  2. 악의곰푸우 2012.01.07 09:1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정할머니의 의도보다는 일제 만행을 무조건 부각시키려는 주변의 멍청이들과 할머니의 흐릿해진 기억의 합작품일 가능성이 높겠습니다.

    • 백범 2012.01.13 23:50  댓글주소  수정/삭제

      여성단체에서 위안부 할머니들을 이용해서 정부지원금도 갈취하고, 일본의 양심적 시민단체가 '아세아여성기금' 지원을 받게 해주려던 것도 모두 실패했습니다.

      그걸 안 심미자 할머니 같은 분들은 진작에 그 여성단체 년들하고 결별했지요. 다른 분들은 그냥 그 여성단체년들 피해서 숨어버렸지만

      심미자 할머니 같은 분들은 지만원 박사한테 그 사실을 알렸습니다.

      그리고 광복회 원로들 귀에도 그 얘기가 들어가는 바람에 광복회 근처에 위안부기념관 짓는다 하니까 지금 고인이 되신 광복회 원로분들이 열받아서 반대했던 거고요.

      그게 진짜 위안부할머니들을 도와주는 인간들이 그 이상한 기념관 설립 그런 일을 했더라면 광복회 아저씨들이 90이 다됐던 양반들이 그렇게 열받아서 펄펄 날뛰지는 않았을 겁니다.

  3. 인민해방군 2012.01.11 09:2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보상금에 눈먼 할매들의 소설이 아니기를....... 인샬라....

    • 백범 2012.01.13 23:47  댓글주소  수정/삭제

      보상금에 눈먼건 여성단체 운동가들입니다.

      일본의 양심적인 시민단체에서 노력해서 위안부 할머니들을 '아시아여성기금'의 기금 지원과 진료와 상담, 생계 지원 등을 약속했는데

      어떤 여성단체 간부란 년이 지원, 보상 다 필요없으니까 돈만 많이 내놓으라고 지껄인 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망할 여성단체 간부년은 아무도 비난하지 않더군요. 일본의 양심적인 시민단체에서 나서서 주선까지 해주었건만...

  4. 학생 2012.07.14 02:5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할머니들의 증언들이 오류에 범하고 있다는 사실이 있다는데 동의합니다 또한 위안부 사건의 중요한 증거로써 정확성이 중요하다는 것도 인정합니다 하지만 시간이 많이 흐른뒤 정확하게 기억하기란 사실상 힘든 일입니다 젊은사람들도 몇년전에 겪은일들은 정확하게 기억하지 못하는 실정이니까요 그리고 분명히 해야할 것은 증언이 어긋나고 삐꺽한다해도 ,그 분들이 조선인들에 의해서 팔려간 것이였다 해도 그 당시 그분들의 고통과 아픔, 죽는 순간 까지 지니고 가는 상처 또한 역사를 객관적으로 분석하고 인정해야 한다는 분들 입장에서 이 또한 반드시 가슴에 새겨야할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정확한 자료와 마찬가지로 위안부 할머니들의 상처도 분명하고 명백한 사실이니까요

    • MAUS.K 2012.07.17 09:52  댓글주소  수정/삭제

      기억이 틀릴 수도 있겠지요? 그런데 자발적으로 간 것을 납치당해 갔다거나, 모집인의 인솔을 형사나 군인이 데려갔다는 식의 기술은 기억의 오류라기 보다는 왜곡입니다. 이것은 위안부 문제의 본질과도 관련된 것이고.. 불분명한 증언은 활용하면 안되는 것이죠. 전체의 신뢰성마저 의심하게 만드니까요.

    • 그래서어쩔 2014.12.29 01:31  댓글주소  수정/삭제

      MAUS.K. 왜곡은 아닌것 같습니다. 년도 나이에서 오류가 있을뿐 있었던 일 자체에 대해서는 진술이 어느정도 일정합니다. 년도문제랑 일본 순사는 청년이다 아니다 말장난만 있을뿐 그것보다 중요한건 당한 사건들이겠죠.... 물론 법에서 시간이나 알리바이는 너무 중요합니다... 하지만 오래되고 역사적 사건에는 법적 문제보다는 도덕적 문제 해결이 더 중요한것 같습니다. 독일이 사건에 대해 언제 그랬냐 몇월 몇년 이런거 따지지 않고 벌어진 일에 대해 진심으로 사과하지 않습니까.... 일본도 사과했음 계속 그런 자세를 보여줬으면 좋겠네요 사과가 진심이 아니여도 최소한 입놀리지 말아야지 아직도 지들이 잘한 짓이다 그러니.....

  5. 니누고 2013.12.17 02:4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렇게마니고생하고 죽을고비마니넘기는곳을 자발적으로갓겟나ㅋㅋㅡㅡ

  6. 헐.. 2014.01.05 18:0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래서 일제의 강제동원, 납치, 인신매매행위가 없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지만원같은 또라이를 박사라니 수준이 참... 위안부할머니 대개는 교육받지 못한 분들이고, 어린시절에 있던 폭력은 인상과 이미지만이 강할뿐, 구체적인 사실관계는 잘 기억하기 어려운 것이 아동인지의 특성입니다. 때문에 증언할때마다 말이 다른건 사실 당연합니다. 협박이나 위협에 의해 왜곡되기도 하고 타인의 기억과 섞이기도 하거든요.

  7. 그래서어쩔 2014.12.29 01:1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일본 순사가 청년일수도 있죠.... 할아버지겠어요 38,39 일년차이네요 군용차로 끌려간게 38년 끌여가 만주로 가서 위안부 된게 39년일수도 있고... 92년도 증언이 최초 증언이라면 식모살이 하다 주인 아들한테 강간당할뻔 한 이야기는 하지 않으려 그냥 놀러갔다 잡혔다고 할수도 있고....42년도는 안맞긴 하네요... 어쨋든 14살에 식모살이하러 갔다가 젊은 남자(일본인이거나 순사거나 뭐던)들에게 끌려가 위안부 된 증언은 일정하네요. 2. 인도네시아 1870년대부터 일본인 매춘이 있었습니다 군을 위한 위안부는 아닐수 있지만...이부분 저도 잘 모르겠네요. 암튼 창씨개명 본격적으로 치면 그렇지만 그 전부터 일본이름 쓰고 일본어 쓰라는 압박 있었습니다. 그래오다 본격적으로 창시개명 시작한게 뒤에 일어난거지만 일본이름으로 바꾸라는 압박을 그냥 창시개명으로 말한것이겠죠. 아니면 만 나이라서 년도가 2년정도씩 밀렸거나...그리고 마지막 이장이 거짓으로 말했을수 있죠. 그 있지도 않는 공장 가서 일하는 거라고 꼬시지 그럼 저 이국에 뭔 공장이 있는지도 잘 모르는데 그거 다 알아보고 꼬시겠습니까..... 주로 숫자 나이 공식적으로 공표한 정보를 가지고 트집을 잡는데.... 공표한데로 세상이 그렇게 딱딱 진행되는 세상입니까. 나이 년도 등은 트라우마로 기억이 안나거나 헷갈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당했던 일 자체 기억은 어느정도 진술이 일정합니다. 어쨋든 위안부 할머니들은 모르고 끌려갔고 첨에 강제로 당한건 맞지요. 알고 갈 사람 몇이나 있겠습니까.... 물론 위안부 증언 하나하나 다 일관되고 일정하게 모아놓은것이 법적 싸움에서 중요하겠죠. 하지만 위안부 문제는 법적문제를 넘어서 인륜적 문제 아닐까요... 사과했다고 하지만 위안부는 강제적이지 않았고 합리화하는게 사과로 보이지 않네요.

    • 그래서어쩔 2014.12.29 01:22  댓글주소  수정/삭제

      그리고 증언 모순의 글을 남기는 의도가 위안부는 할머니들의 자작이거나 없었다는 걸 말하려는게 아니라 일제 만행에 대한 증언을 더 정확히 모으고 돈 타낼려는 여성단체를 고발하는 의도라면 그걸좀 기제해주셔야 할듯하네요.

  8. 2014.12.29 16:2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글쎄요 자발과 강제의 차이가 너무 큰데요 최초 증언에는 반자발적인거를 나중에 강제로 번복했다면 그거야 문제인거죠. 정대협 얘기는 위안부 얘기에서 핵심이 되는 이야기도 아니고, 이 글은 위안부 피해자의 증언을 분석해서 모순점을 찾아내는건데, 그렇다면 증언한 사람에게도 일정 부분 책임이 가야 맞겠죠. 역사적 사건 그 어느것도 성역화할 수 없습니다. 위에사람같은 사람들이 광주를 성역화했고, 일제강점기를 성역화했어요. 다른 해석도 얼마든지 가능한데 단지 약자, 피해자라는 이름하나로 성역화하여 역사의 진실을 보는 걸 막은겁니다.

  9. 2014.12.29 16:2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미 정대협에서 역사관련 연구자들 다 떨어져나가고 정치적 헤게모니만 주장하는 여성운동가며 좌파적 인사로 채워진 지 10여년이 넘었습니다. 최초증언에서 나온걸 번복한것도 흔하죠. 그래서 요즘 나오는 증언집에는 최초 증언과 맞지 않은 점이 있는데도 요즘 나오는 증언집이 사실인양 둔갑하죠. 이미 위안부에 대해서 더이상 피해자 약자로만 볼 수 없다는 팩트는 많이 발굴됬습니다. 어떻게 보면 이것에 대한 무지가 가장 큰 문제죠.

  10. 2014.12.29 16:2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위안부는 결과적으로 같은 민족이 같은 민족을 착취한 비참한 역사입니다. 같은 민족이 아니라 다른 민족이라고 거짓말을 하는거구요. 위안부 문제에 대해서 일본에 반성을 요구할게 아니라, 팩트를 왜곡하고 다른 민족이 했다며 우겨대고 그러면서 아시아여성기금 받겠다는 할머니들 욕쓰면서 협박해서 또 한번 착취한 우리 사회의 폭력에 대해서 반성해야할 일입니다.

  11. 전찬윤 2016.02.25 23:0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다케시마의 날을 기념하는 일본을 규탄하는 행사에 참여하였습니다. 우경화의 일본을 우리 모두 경계하고 유비무환의 자세로 준비를 게을리해서는 안됩니다. 행사에 참여하고 귀가하다가 반디앤 루니스 인터넷 서점에서 우연히 검색하다가 책을 구입해서 읽었는데 유익했습니다. 참고로 알려드립니다. 도서명: 예금통장을 불타는 아궁이에 던져 버려라. (저자 문석호 MJ 미디어 출판사 393쪽)
    일본 동경 일대에 2029 - 2031년 경에 진도 10.9의 초 강력한 지진 발생
    지금까지 역사에 없었던 초 강력한 지진으로 수백만명이 사망하고 일본은 엄청난 재앙에 직면할 것이다 . 일본은 아수라장이 됭 것이다. 지진피해를 당하거나 부상당한 일본인들은 지옥이 따로 없다고 하늘을 원망하고 가슴을 치며 통탄할 것이다. 지진으로 화상을 입은 일본 사람들은 고통이 너무 심하고 참기 어려워서 "하늘아 차라리 내 가슴에 무너져 내려다오" 하고 통곡하며 울부짖을 것이다. 일본의 경제는 마비되고 사회는 공포와 지진 트라우마로 생지옥으로 변할 것이다. 일본 사회 전체의 패배주의와 고독감, 그리고 무력감은 말할 수 없이 팽배할 것이다. 중상자만도 수백만명에 달할 것이기 때문이다.

    주요내용: 미국, 캐나다, 호주 등지로 유학을 간 우리나라 초, 중고생들이 현지에 잘 적응하지 못하고 쉽게 좌절하는 이유와 대책, 그 밖에 청년 실업 해소 방안, 청년들에게 희망을 주는 희망의 메시지, 우리나라가 미래에 무엇으로 먹고 살 것인가? 우리나라의 새로운 성장동력 산업에 관한 내용들, 우리나라 젊은 과학자들이 서울에서 뉴욕에 2시간반만에 도착하는 초우량 여객기를 생산하도록 지원해 주어야한다, 황혼 이혼을 방지하는 방안 등, 우리나라 동포(교포) 3세가 2052년에 미국의 대통령이 될 것이라고 논리 정연하게 제시하고 있고, 일본 동경 일대에 2029 - 2031년 경에 진도 10.9의 초 강력한 지진이 발생할 것이다. 지금까지 역사에 없었던 초 강력한 지진으로 수백만명이 사망하고 일본은 엄청난 재앙에 직면할 것이다 . 일본은 아수라장이 됭 것이다. 지진피해를 당하거나 부상당한 일본인들은 지옥이 따로 없다고 하늘을 원망하고 가슴을 치며 통탄할 것이다. 지진으로 화상을 입은 일본 사람들은 고통이 너무 심하고 참기 어려워서 "하늘아 차라리 내 가슴에 무너져 내려다오" 하고 통곡하며 울부짖을 것이다. 일본의 경제는 마비되고 사회는 공포와 지진 트라우마로 생지옥으로 변할 것이라고 합니다. 저자와 메일로 문의하니까 중상자만도 수백만명에 달할 것이라고 추정하였습니다. 그밖에 결혼을 잘 준비하는 방법, 이혼을 방지하는 방법, 자살 방지 방안 등 흥미가 있었습니다.

  12. 2016.02.29 09:3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탈북자들도 거짓으로 증언하고 부풀려서 책을 쓰는데 위안부들이라고 거짓이 없겠어요
    그들도 탈북자들만큼 위선을 떠는 이들많습니

    증거가 있나 증언해 줄 사람이있나
    탈북자나 위안부나 어떻게든 돈이나 더 좀 만제보자는 사람들 많을겁니다 탈북자나 위안부나 깉은 처지의 사람들로 봐야ㆍㆍ그렇다고 그들을
    다 거짓말쟁이로 몰아갈 수도 없는 것이 현실
    ㆍㆍㆍ자유없는 나라에서 일어나는 서글픈 일
    들에 관해 자유를 만끽하고 사는 사람들은 각
    성하고 겸허해야ㆍㆍ

  13. 2016.02.29 09:3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탈북자들도 거짓으로 증언하고 부풀려서 책을 쓰는데 위안부들이라고 거짓이 없겠어요
    그들도 탈북자들만큼 위선을 떠는 이들많습니

    증거가 있나 증언해 줄 사람이있나
    탈북자나 위안부나 어떻게든 돈이나 더 좀 만제보자는 사람들 많을겁니다 탈북자나 위안부나 깉은 처지의 사람들로 봐야ㆍㆍ그렇다고 그들을
    다 거짓말쟁이로 몰아갈 수도 없는 것이 현실
    ㆍㆍㆍ자유없는 나라에서 일어나는 서글픈 일
    들에 관해 자유를 만끽하고 사는 사람들은 각
    성하고 겸허해야ㆍㆍ

  14. 빛나리 2016.03.27 18:5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네이버 무비의 영화 "귀향" 리뷰글 순위권에 주인장님 블로그 링크가 걸려 있습니다.

    그것 때문에 아무래도 최근 기입된 댓글이 많이 늘어난 것 같습니다.

    그나저나 문옥주 할머니에 대한 이야기는 http://fightforjustice.info/?page_id=3252&lang=ko 이 사이트에서 반박하고 있는데 어느쪽이 진실인지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