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평.론 2008.06.13 00:22

수치를 모르는 촛불좀비의 단상

김구가 상해임정을 이끌며 독립운동을 한 사실을 부정하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일제 암흑기에 만주에서 풍찬노숙을 하며 오로지 독립의 일념으로 싸워오신 숱한 애국자들이 많음에도 유독 김구에 환상을 갖는 분들은 대개 코드가 일정한 주파수를 가지고 있는듯 하다.

김구하면 떠오르는 민족지상주의, 통일에 대한 열망, 중도주의적 스탠스, 반이승만 반우익 코드, 친일청산 등등의 숱한 듣기 좋은 관념어들은 기실 알고보면 그쪽 양반들에 의해 조작된 다분히 의도적이고 작위적 캐릭터에 불과하다. 일례로 김구는 중도주의자가 아니라 철저한 반공주의자였다.

두번째로 그의 민족지상주의와 통일정부 수립론은 정치적인 입지 선점과 헤게모니 장악을 위한 수단에 불과했다. 그는 처음부터 김일성에게 큰 기대를 걸지 않았다. 좌우합작이라든가 통일정부 수립은 이승만의 독주를 견제하기 위해 미군정에서 멍석을 깔아주었고 권력욕에 심취된 우리네 지도자들이 놀아난 것일 뿐이다.

아시는 분은 이미 알고 계시겠지만 김구는 이승만과 같이 좌익인사들을 테러하기 위한 조직을 갖추고 있었고, 실행에 옮긴 바 있다. 비밀해제된 러시아 국방성 문서를 보면 이는 조금 더 명확해진다.


뿐만 아니라 김구는 김규식, 이승만과 함께 좌익분자들을 억압하고, 우익진영을 강화하기 위한 용도로 미군정청으로부터 3억엔 규모의 차관을 공여받기로 협정을 체결한 바 있다. 훗날 이들의 관계가 틀어지면서 이 비자금의 실체는 밝혀지게 되었다.

김구가 김규식 일파와 함께 남북지도자연석회의 참가한 것도 알고보면 소련측의 치밀한 공작의 결과였지 김구나 중도주의 지도자들이 주도했다고 보기 어렵다. 북한은 간첩 성시백을 남파시켜 김구, 조소상, 김규식을 접선하게 하였다. 일부에게는 공작금도 전달하였다. 이같은 사실은 소련 군정 정치사령관과 민정사령관을 겸임했던 레베데프 소장의 비망록에서 밝혀진 것이다.

비망록에 의하면 김일성과 김두봉이 김구와 김규식 등 이른바「4김회담」에서 김구와 김규식에게『헌법은 채택하지만 당분간 내각은 구성하지 않고, 김구·김규식 두 선생에게 직위를 부여하고 헌법을 통과한 후 통일정부를 세울 계획』이라고 제의, 두 정치지도자를 회유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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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티안무 2008.06.13 00:2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역시. 박정희 집권 후 이승만의 흔적을 지우고 자신의 통치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 땅속에 묻힌 김구를 신격화시켰다는 것이 맞군요. 껄껄

    • 眞明行 2008.06.13 00:34  댓글주소  수정/삭제

      그렇다기 보다는 우익 알레르기에 대한 정신적 방어기재로 좌빨들과 노뽕 연합세력들이 김구를 얼굴마담으로 이용해 먹었을 확률에 좀더 높은 가능성을 두고 싶네요.

  2. 명랑이 2008.06.13 00:4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토록 좌익을 미워하는 귀하께서는 왜 그렇게 그 김구를 혐오하시는지요?

  3. 제갈교 2008.06.13 01:0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음...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네요. :)

    • 眞明行 2008.06.13 10:49  댓글주소  수정/삭제

      반갑습니다. 요즘 모 블로거께서 제가 세컨 아이디로 막장질을 하고 다닌다는 괴담이 유포되고 있답니다. 제갈교님께서 적극 해명해주신 점에 대해 깊이 감사드립니다.

  4. BigTrain 2008.06.13 09:0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역시 realpolitik의 세계란... -_-;

    김구도 자세히 한 번 살펴봐야될 만한 인물이군요.

    • 眞明行 2008.06.13 10:48  댓글주소  수정/삭제

      역사를 공부하면서 사실에 대한 고찰보다는 추상성과 상징성을 내세워 입맛에 맞는 연구들이 횡행했던 것 같습니다.

  5. 캐안습 2008.06.13 10:0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황희나 정철에 대한 환상과 비슷하다고 봐야 할까요.

    매관매직으로 아웃된 경력이나 당파싸움의 중심인 경력은 아웃오브안중


    두 님하는 청렴결백, 우국충정 관리입nida!!

    • 眞明行 2008.06.13 10:40  댓글주소  수정/삭제

      송강 정철의 비굴모드와 전횡에 대해서는 익히 들어본 일이 있지만 황희의 매관매직은 제가 모르고 있던 얘기군요. 참고할만한 책이나 논문이 있다면 조언해주실 수 있습니까?

    • 캐안습 2008.06.13 13:25  댓글주소  수정/삭제

      일단 보기 쉽게 정리된 곳입니다.
      http://entertainforus.tistory.com/89

      그리고 조선왕조실록 사이트에서 황희로 검색하시면 각종 비리사건으로
      시끄러운 모습들이 많이 나옵니다.
      (조선왕조실록은 일제의 조작입니다는 환빠의 단골 레파토리~~)

    • 眞明行 2008.06.13 15:52  댓글주소  수정/삭제

      황희가 사사로이 인간관계에 얽매여 비리나 살인사건을 무마하려 했다는 얘기는 그럴 수 있다치고 간통사건이라든가 매관매직 사건은 무고의 가능성도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하여간 털어서 먼지 안나는 사람은 별로 없군요. 황희가 유능한 사람임에는 틀림없지만..

    • 史官論也 2008.06.13 22:37  댓글주소  수정/삭제

      황희 이야기는 너무 유명한거 아니였나요? 환빠척결을 부르짖으며 역사학도를 자처했던 진명행님께서 이런것도 모르셨다니, 희안합니다.

    • 眞明行 2008.06.13 22:44  댓글주소  수정/삭제

      내가 언제 역사학도를 자처했음? 나는 고대사에 문외한이며 그러기에 스스로 그 분야를 포기한 바 있음. 남 걱정 말고 자네나 걱정하지 그래? 자네는 史官이라는 직함에 비해 역사에 아는 건 조또없지 않나. 나는 전공자가 아니지만 중국 25史나 사고전서를 해석하는데 아무 어려움 없네.

      황희의 매관매직은 무고에 의한 상소인지 아닌지는 아무도 모르네. 같잖게 나서긴 왜 나서나?

    • 史官論也 2008.06.14 01:30  댓글주소  수정/삭제

      아이구 그러시군요, 몰라뵈서 죄송합니다.

  6. 瑞菜 2008.06.13 10:3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일찌기 한 선생님께서 이러셨지요.
    "김구는 운동가로는 최고지만, 정치가로는 최악이다."

    그전 미군정에게 조사 받을 때 직업을 묻자 이렇게 대답했다지요.
    "내 직업은 독립운동이오."
    이게 김구의 한계를 나타낸다고 생각합니다.

    • 眞明行 2008.06.13 10:44  댓글주소  수정/삭제

      해방정국에서 김구의 역할은 전혀 무시할 수는 없었다고 보는 입장이지만 당시 국민적 지지도가 형편없이 낮았던 사람이 오늘에 와서 최고액권 표지인물로 추앙받는 인물로 이미지화 되었는지 모르겠습니다. 물론 그의 독립운동 경력과 애국심을 폄하하려는 의도는 없습니다.

  7. 베르디만세 2008.06.13 22:0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조선공산당-남조선로동당 지도부에 의해 작성된 정세보고서가 당시의 정세와 정확히 일치하는 것인지 충분히 검토된 바가 있는지요? 정세보고라는 것이 작성자의 상황 인식에 의해 윤색될 수도 있고 당시 저들이 접급할 수 있었던 정보가 신뢰할만한 것인지도 의문입니다. 로동당 지도부가 입수한 정보가 모두 사실이었고 실제로 김구의 테러행위가 있었는지는 저 보고서만으로는 확인되지 못하는데도 너무 단정적으로 말씀하시는 것 같습니다. 언급하신 3억엔 차관 공여 협정과 그 사용 용도가 미국측이나 한국측 자료에도 나와 있는 사실인지도 궁금하구요.

    저도 김구 선생의 해방후 행적에는 아쉬운 부분이 많다고 생각합니다.

    • sonnet 2008.06.13 22:36  댓글주소  수정/삭제

      지적한 의문점에 저도 공감합니다.
      첩보(information)와 정보(intelligence)의 차이점을 고려하면, 3억엔 차관 설은 미국측 자료에서 교차 확인할 수 있어야 할 것 같습니다. 다만 귀국 후에도 김구의 임정계열 산하에 백의사라는 테러조직이 있고 실제 활동도 하였음은 국내에 잘 알려져 있습니다. (http://sonnet.egloos.com/3331774 참조)

    • 眞明行 2008.06.14 00:10  댓글주소  수정/삭제

      자료의 교차참조 부분에 대해서는 좀더 보강할 필요는 있을 것입니다. 새로운 자료가 발견되면 그때 추가로 포스팅 할 생각입니다. G-2보고서와 미국무부 문서 해제에서 비슷한 내용이 있는지 확인해보고 있습니다.

      방금 미군정청 해제 문서를 일부 확인하였는데 위의 차관은 대부금에 대한 보증이고 협정은 각서였습니다. 김규식에 1백만원, 김구에 1백만원, 이승만에게 1천만원이 각각 건네진 것이며, 미군정청이 지불보증을 선 것이라 사료됩니다. 지불보증에 대한 조건 등에 대해서는 추가 조사가 필요합니다.

  8. 탐슨가젤 2008.06.14 04:0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매번 포스팅마다 관심을 이끄시는 모습이 강렬합니다만, 진명행이나 진명행 글에 반박을 하시는 분들 모두 스스로 몸을 불사르는것 같아 보는이가 무섭습니다. ㄷㄷㄷ

  9. 메발루이 2008.06.14 12:1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http://pwt9887.egloos.com/2442765

    오랜만에 들어옵니다. 역사쪽을 잘 아시는 분이 황희정승이 청백리가 아니었다는 설을 비판해놓은 글입니다. 앞서 황정승이 청백리가 아니었다는 글은 안 읽었고, 그 글을 판별할 능력은 없지만, 아무래도 링크한 글을 쓴 분 역시도 중상모략이었다는 주장을 하고 계십니다.

  10. Claudius 2008.06.15 13:2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김구선생이 반공주의자였다는것은 알았지만.... 역시 신화화란 조심해야할듯.

  11. 나루나루 2008.06.21 15:2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역시 김구에 대한 환상은 환단고기 급인듯...

    10만원권에 들어가긴 좀 그렇다고 생각했는데..orz

  12. G-Crusader 2008.08.14 09:2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전 과연 김구선생이 과연 우익이였나 좌익이였나...마니 헷갈리던데요??

    아님 진짜 우익이긴 했는데, 어리숙하게 김일성에게 이용 당한것인지?

    진명행님의 의견을 듣고싶습니다.

    • 眞明行 2008.08.14 09:39  댓글주소  수정/삭제

      김구는 반공주의자..이승만의 라이벌..민족지상주의와 통일전선은 그의 정치적 헤게모니를 쟁취하기 위한 스탠스였을 뿐. 국가지도자가 되기에는 여러가지로 자질이 미흡한 인물.

    • G-Crusader 2008.08.14 09:49  댓글주소  수정/삭제

      일반적으로 그게 정론일듯 싶습니다.
      선배 이승만에 비해선...세계사의 흐름과 공산당의 의중을 꽤뚫는 능력등이 없었던 것이 사실인듯합니다. "미흡했다" 란 말씀이 와닫습니다.

  13. G-Crusader 2008.08.14 17:0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진명행님// 참고자료입니다!!!

    10만원 고액권 인물 선정 관련해서 제가 예전에 올렸던 기사가 있습니다.

    http://sudcrux.egloos.com/1704085

    참고하십시요~

    역시나! 사실 당시 여론조사 결과...

    우리 국민이 원했던 10만원권의 주인공 인물은 박정희 대통령과 이승만 대통령이었습니다.^^

  14. l이용섭 2008.08.15 01:4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는 김구가 집권했었다면 한반도가 적화통일이 되었으리라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글구 김구에게는 사생아-100% 확인된 사실은 아니나-가 있었다는 말을 약 20년 전에 들었습니다. 백범일지에서 그는 그가 그의 여자 관계는 그다지 깨끗하지 못 했다고 고백합니다.


인.물.평.론 2008.02.10 17:53

안티들 사이에서 유행하고 있는 박정희의 친일행적 10가지란 글을 보면 가장 눈에 띄는 부분이 독립군 110여회 토벌설과 간도특설대 복무설이다. 근거? 물론 근거가 있을리 없다. 이를 테면 정황논리가 주를 이루는 모양인데 만주군에서 복무했으니 독립군과 필시 조우했을게 아닌가 하는 식이었다. (☞ 근거 ①)

그러다가 16대 총선을 앞두고 어용방송 MBC의 『이제는 말할 수 있다』"만주의 친일파"에서 박정희의 간도특설대 복무설을 부각하고 곧이어 "알몸 박정희"라든가 "일송정 푸른 솔에 선구자는 없었다" 와 같은 책들이 우후죽순 쏟아져 나오면서 박정희의 간도특설대 복무설, 독립군 토벌설은 거의 정설(?)처럼 굳어져왔다. (근거 ②)

근거 ①은 독립운동史에 대한 최소한의 기본적 소양이 있는 인간들이라면 동북항일연군이 괴멸된 시기와 화북 조선독립연맹 조선의용군의 활약地 정도는 알고있을테니 이 얼마나 개솔이에 불과함인지 알 것인 즉, 일단 무시하기로 하고 우선 최근 문제가 되고 있는근거 ②부터 살펴보자.

MBC와 오마이뉴스, 경향신문 측에서 박정희 간도특설대 복무설의 근거로 삼은 것은 『중국조선민족발자취총서(4)』 「결전편」에 단 몇 줄 실린 차상훈의 증언이다. 차상훈은 주재덕의 "탄백서(坦白書)"에서 박정희가 간도특설대원으로 기술된 사실을 거론하며 이를 관련자 몇명의 진술과 함께 엮어 총서에 기재하게 된 것이다.

오마이뉴스 기자 정운현은 몸소 이를 보강 연구하기 위해 일본과 연변 일대를 샅샅이 뒤졌으나 물증 확보에 실패한 후 "근거없음"의 결론을 내린다. 이에 연변 사학자 박창욱은 그의 제자들과 같이 박정희의 근무지와 간도특설대 전임자들을 대상으로 집중 조사했으나 역시 실패하고 정운현과 같은 결론을 내린다.

탄백서(坦白書)란 중공과 북한의 친일청산 방법으로 활용하였던 것인데, 친일 전과가 있는 자는 인민재판시 자신의 죄상을 모조리 탄백하여 그 용서를 구하는 형태를 말하는 것이다. 물론 짜여진 각본이었지만, 아무리 극악한 전과가 있는 자라도 이런 식의 면죄방법을 통하여 합법적으로 죄사함을 받았다고 한다. 탄백서는 일종의 반성문이다.

이 주재덕의 탄백서는 박정희라는 실명이 없고 대신 마쯔모도라는 일본 이름이 등장한다. 이 마쯔모도는 함형도의 증언에 의해 "알고보니" 박정희로 알려지게 된다. 소위 간도특설대가 위치하던 명월구의 냉면집에서 기생 끼고 놀던 이가 바로 마쯔모도 박정희라는 식이다. 이들의 증언들은 마쯔모도 박정희가 1939년 대사하 전투에 참여했으며 그때 살아남은 공로로 무공훈장을 수여받은 바 있는 소위 잘나가던 간도특설대원이었음을 얘기하고 있다.

여기서 박창욱은 의심을 하게 된다. 박정희는 『위만주국 정부공보』에 의거 『박정희』라는 이름으로 1939년 10월에 목단강 부근에서 만주군관학교 입학시험을 쳤고 1940년 4월에 동 학교에 입학하였기 때문이다.



박창욱은 시기적으로 도저히 일치할 수 없는 위 탄백서와 관련된 증언에 심각한 문제가 있음을 직감하게 된 것이다. 이에 그는 추적을 계속한 끝에 만주국 공적조서에 위 무공훈장 수여자 마쯔모도가 조선인 이름 현학춘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고 조사를 그만 덮는다. 즉, 박정희=간도특설대원 說은 그를 깍아내리기 위해 집요하게 조사를 한 사람들이 혐의없음으로 이미 결론을 내린 사안이라는 것이다.

국내의 많은 진보성향의 학자들도 박정희의 간도특설대 근무설을 입증하기 위하여 1939년부터 1945년까지 간도특설대에 근무한 조선인 명단을 샅샅이 뒤졌으나 실패한다. 신주백의 경우가 대표적이다. 그는 『연변조선족자치주 공안국』 조사결과인 「特設部隊」의 내용을 근거로 추가조사를 시도하였으나 박정희의 관련성을 입증하지 못했다. 당연한 결과이다.


박정희는 "朴正熙"라는 조선인名으로 1939년 9월까지 문경시에서 훈도로 재직하였음을 다음의 조선총독부 직원명부를 통해서도 알 수가 있다. 박정희 일가가 창씨개명 신고를 한 것은 1940년 2월 17일이다. 고로 만주에서 1939년에 간도특설대원 마쯔모도로 대사하 전투에 참여하여 무공훈장을 수여받았다거나 1940년 명월구 냉면집 근처에 정복차림으로 출몰했다는 헛소리는 낭설에 불과하다.

떠도는 낭설을 근거로 사람을 매장시키기는 쉬울지 모르겠다. 놀리기 쉬운 펜대라고 아무 말이나 개솔이랍시고 끌적거려 무슨 거창한 목적을 달성할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그것이 상대방에게만 도덕적 결벽을 가질 것을 요구하는 시대착오적 주문과 걸핏하면 거대한 역사적 담론으로 끌고가려는 오류는 용납하지 못하겠다.

하고 싶은 말은 많으나 중앙일보 디지털 국회의원 게시판 이상유님의 글을 말미로 삼아 맺고자 한다.

..(전략)
박정희는 무능한 왕조가 나라를 빼앗긴 지 7년이나 지나서 태어나 일제식민상태를 보통의 일상으로 알고 살아간 평범한 조선인일 뿐이다. 그걸 실존이라고 한다. 박정희가 만주군관학교를 택한 것이 무슨 대단한 친일의 목적이겠는가? 좀 잘사는 놈들은 일본유학가고 고등문관시험을 치듯이 가난한 박정희는 대구사범이나 만주군관학교같은 무료교육을 택한 것뿐이다. 그리고 만주군관학교가 일본육사의 예과이기 때문에 성적우수자의 자격으로 일본육사에 간 것 뿐이다. ...(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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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眞明行 2008.02.10 19:3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일본의 녹을 먹고 산 사람들 중에 일본제국주의에 봉사하지 않은 사람이 누가 있었나요? 하다못해 벽돌 나르는 인부가 병영건설에 관련되면 그는 자동 친일파가 되는가요? 별스런 기준 다보겠네요? 님의 기준에 따르면 서푼어치 월급받고 군수공장에서 일한 사람. 황국신민 내선일체를 강요했던 각급 학교 선생들, 군비조달에 강제참여했던 각 면장급 이하 관리들, 징병시 신체검사를 해준 말단 보건소 공무원들까지 전부 친일입니다.

    소년소녀님. 공무원 중에 친일 안한 사람이 누구입니까? 해방직후 과도입법위원회에서 제정한 "민족반역자, 부일협력자, 간상배에 대한특별법"이라든가 제헌의회에서 제정한 "반민특위법"에서는 고등문관시험 합격자를 무조건 자동으로 부일협력자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농부? 일본 침략전쟁에 공출을 담당했으니 그도 친일파겠네요? 식민지 상황에서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경우의 수가 몇가지나 되었습니까? 인텔리들은 뭘해먹고 살아야했지요?

    아~ 그리고 그냥 무시하고 지나가도 되겠습니다만.. 박정희의 군관학교 지원한 시기는본문에 나와 있다시피 1932년이 아니라 1939년입니다. 글도 제대로 안읽어 보셨군요.

  3. 소하 2008.02.10 19:5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친일이냐 아니냐의 관점을 우리가 아닌 당시 독립운동을 하신 분들에게 물어본다면 무어라 답할까요?
    백범 김구 선생에게 해방전 박정희를 어떻게 생각하는냐고 물어본다면? 무어라 답하실까요? 타도의 대상이라 답할가요? 아니면 바람직한 일이라고 할까요?
    진명행님도 역사를 바라볼때는 현재의 가치관으로 보거나 나 자신의 관점으로만 보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 알 겁니다.

  4. ㅇㅇ 2008.02.10 21:5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소하님도 역사를 바라볼때는 현재의 가치관으로 보거나 나 자신의 관점으로만 보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 알 거라고 생각합니다만.

  5. 丹波 2008.02.10 22:1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소하선생. 그대가 선생자까지 붙여가는 정치인 김구는 "국내에 남아있으면 친일파"라고 극언까지 한 양반이니 오죽하겠습니까. 김구도 결국은 정치인에 불과한 사람이지, 이런 문제에 있어 절대적인 기준이 될 수 없는 건 분명합니다.

  6. 2008.02.10 22:1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7. 나기드 2008.02.10 22:3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럼 친일의 기준이 무엇이란 말이요.

    개인적인 사정을 들먹이면서, 사정을 봐주다 보면 이완용이도 애국자가 되는 것이요.

    박정희를 너무 깔 필요도 없지만 그런 식으로만 봐주면, 세상에 비난할 사람도 없고, 전부 착한 사람 밖에 없는 것 아니겠소?

    전대머리가 광주에서 살인한 것도 애국행위가 되는 거구,
    김일성이가 남침한 것도 민족을 위해서라고 말하게 되는 것 아니겠소?

    침소봉대 하지 마시오.

    세상을 그런 논리로만 본다면 선도 없고 악도 없는 카오스 상태가 되는 것이요.

  8. 眞明行 2008.02.10 23:5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김구는 김승학의 주도로 친일파 규정 작업을 하면서 박정희를 친일로 분류하지 않았습니다. 해방직후 우리 민족 지도자들은 친일의 기준에 대해 서로 합의하지 않았지만 두 차례의 법률로서 일반적인 기준과 논거를 제시했습니다. 박정희의 경우 그 어느 곳에도 포함되지 않습니다.

    심지어는 가장 광범위하게 친일파의 범위를 규정한 북조선임시인민위원회의 친일파 규정에도 포함되지 않습니다. 대체 님들의 규정의 이론적 근거는 무엇입니까? 자기가 비난하고 싶은 시각에서 기준을 정해놓고 그 선을 넘어야 악인이 되는 것입니까?

  9. 제갈교 2008.02.11 02:0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1편부터 차근차근 읽다보니 박정희 前대통령이 아무리 60~70년대에 군부독재를 해서 대한민국의 민주화를 저해했다고 해서 그의 뿌리 자체를 나쁘게 보지 말자는 생각이 드네요. 많이 배우고 갑니다. ^^

  10. BigTrain 2008.02.11 02:5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일제에 어느 정도 기여했느냐"는 '객관적'인 판단기준을 도입한다면, 강제로 징용돼 남양에서 비행장 만드신 분들은 최악질의 친일파겠군요. 그 분들이 "죽기 싫어 끌려갔는"지 "가라 그래서 가셨는"지 "대동아전쟁의 승리를 위해서 스스로 나가셨"는 지 어떻게 알 수 있는 방법이 없으니.

    어떤 이유인지는 모르겠지만, 그 당시를 살던 사람들의 고민, 욕망, 현실 등을 전혀 신경쓰지 않는 분들이 생각보다 더 많은 것 같습니다.

    PS. 이완용 평전을 읽어보니, 그를 애국자라고 말할 순 없지만 그의 행적이 이해가 가지 않는 건 아니더군요. '이해'가 '공감', '인정', '합리화'하고는 다르다는 사실은 말 안해도 아실 거라 믿고 싶습니다만...

  11. 眞明行 2008.02.11 09:5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丹波선생/ 귀하인 줄 짐작했더랍니다. 읽고나서 한참을 웃었습니다. ㅎㅎ..이렇게라도 논전에 참여해주시니 소햏은 몸둘 바를 모르겠나이다. 참으로 소햏에게는 洪福이 아닐 수 없습니다.

  12. 眞明行 2008.02.11 09:5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제갈교님/ 소햏의 拙稿에 대해 그리 느껴주신다니 그저 감사할 따름입니다.

  13. 眞明行 2008.02.11 10:0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BigTrain님/ 인물평가에서 선입견의 떼를 벗기는 일은 참으로 위중한 일이외다. 그나저나 이완용 평전이 있었다니 놀라울 따름이오. 누군지 몰라도 참으로 배짱있는 사람일 것이오. 껄껄.

  14. 심재호 2008.02.11 10:3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어찌보면 박정희는 이른바 정치판의 연쇄살인범이 되기 위한 길을 걸었던 셈이 되네요. 표창원교수님이 쓰신 한국의 연쇄살인에서 제 기준으로 보기에는 박정희와 유사한 설정을 통해 살인범으로 역사에 기록되는 사례가 있었던 것으로 기억되는데 누구였지? 유영철이었던가?

  15. 심재호 2008.02.11 12:2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眞明行님//제가 괜히 주제넘게 모든 삶의 전반을 보고서 이런 소리를 한 것인지....... 에어리언 발언이 옳겠네요. 정치적으로 모독을 받으면서 자기 가족들은 그 비참함을 맛보고, 자신의 임무를 다한 이 나라 -대한민국이 존재하는 직접적인 역사는 아니지만.-의 역사에 진정으로 존경받아야 하는 분을 김일성과 더불어서 마구잡이로 괴롭힌 정치인이라고 하는 아니, 그런 티만 내는 정치군인에게 말이지요.

  16. 瑞菜 2008.02.11 12:3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김일성 동생 김영주도 한때는 친일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일본에 가까웠다지만
    김일성은 동생을 중용했지요.
    북한 초대 공군참모총장도 2차대전 때는 알아주는 에이스였다잖아요.

  17. 眞明行 2008.02.11 12:3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심재호님의 댓글의 맥락을 미천한 소햏이 미처 파악못하고 함부로 말했습니다. 이제 행간의 의미가 이해가 가는군요.

  18. 심재호 2008.02.11 12:4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眞明行님//[추가]아닙니다. 저도 예전에는 그런 식의 행동들이 많았으니까요. 앞으로 그걸 더 털어내야 하겠지요. 제 진의를 이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19. 2008.02.12 07:5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20. 眞明行 2008.02.12 10:4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글/ 새로운 둥지를 개설하심을 감축드리옵고 소햏도 한말씀 올렸나이다. 일취월장하시어 바라건대 뜻하는바 성취하시옵소서

  21. 2008.02.12 21:5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