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현.대.사 2010.09.01 00:24
무명씨는 거짓말이 지겹지도 않나?

이 글에 대해 딱히 논평할 거는 없고, 거론하고 지나가야 할 부분이 있어 얘기해 보기로 한다. 이 양반이 쓴 글을 엑셀로 돌려보니, 총 2414글자였는데, 그 중 212글자(즉, 전체의 8.7%)에 해당하는 딱 문장만이 유의미했고, 나머지는 쓰레기였다. 물론 좋다고 빨아대는 붕어들의 합창을 풀이하면 전체가 금과옥조같은 글이었으리라..

시간이 없는 관계로 각설하고 문제의 그 단락을 인용하자면 다음과 같다.

"("1910년 일본이 소유 벼농사 토지가 6만9000에서 1930년에 이르면 45만 2000정보로 7배 늘어났고 더불어 일본인 소유의 벼농사 토지가 대부분 곡창지대 비옥한 지역에 밀집하여 쌀 생산량을 담당하는 일본인 소유 논의 비중이 1931년 경에 44% (조선은행 추계) 1941년 54% (경성상공회의소 추계)에 이른다는 것은 무명씨같은 인간이 알턱도 없거니와.."

이 부분은 알만한 분들은 아시겠지만 허수열의 주장을 그대로 카피해 온 것이다.
그러나 이 주장은 허수열이 통계단위를 착각한 데서 비롯한 엉터리 주장이었음이 김낙년에 의해 확인되었다. 즉, 허수열은 일본인의 생산량 추계에서는 "벼"의 단위로 계산을 하고, 조선인의 생산량 추계는 "현미"의 단위로 계산하였던 것이다.

도정하지 않은 "벼"의 생산량은 도정한 "현미"의 생산량과 등가일 수가 없으며, 비교대상이 될 수 없다. 굳이 비교하자면, 2: 1의 비율일 것이다. 김낙년은 이 점에 착안하여 허수열의 추계치를 수정한 결과, 허수열의 주장에 심각한 오류가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즉, 김낙년에 의하면, 허수열의 가정을 그대로 받아들여 조선 땅의 모든 우량농지를 일본인이 모두 독차지 한다고 해도 생산력의 차이는 28.5%밖에 안난다는 것이며, 수리조합 구역내에서는 오히려 조선인과 일본인의 생산성이 모두 증가한다는 것이다. 이는 허수열의 논거가 거꾸로 자신을 공격하는 논거가 되어버리는 셈이다.

식민지 근대화론을 공부하면서, 허수열이나 신용하를 공부안했을 거라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붕어들은 그것을 알아야 한다. 키배의 제1전략은 상대의 논리 근거를 상대보다 더 공부한다는 것을 말이다. 나머지 수꼴이니, 또라이니, 개드립이니 하는 인신공격성 비난에는 대꾸할 가치가 없으므로 패스하겠다. 2일동안 이오공감에 이를 용인하신 "공정"하신 운영진의 깊은 뜻이 있으리라 사료된다.

덧, 다음 타자는 아빠늑대임을 고지합니다. 먹고 살기에 바쁜 직장인은 이만 침소에.. ^^
Posted by 眞明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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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무엇이애국인가 2010.09.01 00:3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탈탈탈탈 양곡 털리는 소리가 들리네요.

  2. 아슈레이 2010.09.01 00:4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블로그에서도 컨트롤C 컨트롤 V 가 유행

  3. 제3의사나이 2010.09.01 01:0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님 말구' 라는 전가의 보도가 나올 차례...

  4. 海凡申九™ 2010.09.01 01:1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수탈이 있었다는 견해를 가진 나로서는 조금 당황되네...;;;

  5. 2010.09.01 01:2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6. 2010.09.01 01:4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7. swami 2010.09.01 01:4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허수열이 김낙년주익종에게 탈탈 털렸다는 이야기를 이제 알겠습니다.

    • 無名氏 2010.09.01 08:38  댓글주소  수정/삭제

      학계는 물론 디씨계에서도 오래전에 떠돌던 얘기라.. ^^
      한겨레나 오마이는 열심히 빨아주고 있겠죠.

  8. 2010.09.01 05:4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9. 鷄르베로스 2010.09.01 09:0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답답한 마음에 블로그 만들었다는 핫바지 방귀대장 뿡뿡이의 이기 말이기 방귀가 트랙백 봤스빈다.

    그냥 혼자 답답해하지 왜 남까지 깝깝하게 하는지 그걸 모르겠더라능

    지나가며 하나둘 마음맞는 애들끼리 덕담 한마디씩 건내는 낙이려나?

  10. 無名氏 2010.09.01 09:2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ALL/ 저 양반이 다시 트랙백을 했군요?
    잘못된 자료를 인용해놓고 사과한마디 없이 무슨 염치지요? ㅋㅋㅋ
    주마간산 격으로 읽어보니, 전편보다 내용이 더 형편없네요?
    머리 속에 뭐라도 집어넣고 와서 일기토를 뜨던가..

    그 양반 글에 이런게 있네요. 두가지만 지적해보겠어요?

    1. 엑셀로 상대방이 쓴 글자 하나하나 세가며..
    => 엑셀 함수를 사용하면 1초 안에 확인가능하구여, 한글자씩 세지 않습니다. ^^
    초보적인 엑셀을 모르는 거 보니까 취업전선에서 좋은 성적은 기대난망이네요?

    2. 2일동안 인터넷 검색질로 알아낸게 겨우 저거..
    => 님 같은 피래미 상대하는데 2일이나 시간 걸리지 않습니다.
    24시간 PC 앞에 붙어 사는 잉여드라쿤이 아니라서 말이죠.

    3. 식민지 무역론의 허실을 지적한 부분에 대해 일언반구도 없다..
    => 어차피 이 부분은 아빠늑대님의 글에 반론을 올리면서 거론할 부분이기에
    말귀도 못알아듣는 피래미들을 상대로 중언부언할 필요가 없어 생략한 것임을 알아주세요.

    ※ 당부의 말씀

    낙성대 학파의 경제사 이론을 비판하는 좋은 논문과 저서들 많이 나왔습니다.
    그 중 하나라도 정독하고 와서 트랙백을 날리세요.

  11. 無名氏 2010.09.01 09:2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ALL/ 이오공감에 올랐네요.

    추천해주신 분들께는 죄송한 말씀이지만, 자진 강판의 길을 택했습니다.

    최근 운영진의 노골적인 편파개입이 심해지면서 납득할 수 없는 이유로 강판당하는 일이 잦아지고, 또 그 여파로 추천해 주신 분들까지 줄줄이 피해를 입는 비극이 발생하고 있습니다. 이런 불상사를 미연에 방지하고자, 이오공감에서 자진 강판합니다.

    모쪼록 이런 사정을 혜량하여주시길 바랍니다.

    • Urthona 2010.09.01 11:02  댓글주소  수정/삭제

      솔직히 말해서 추천한 글이 내려오면, 추천자들 다른 사람의 글도 추천하지 못하게 만드는 시스템은 대체 왜 만든건지 애해하기가 힘들죠.

  12. 2010.09.01 11:3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 無名氏 2010.09.01 11:47  댓글주소  수정/삭제

      뭐 이런 걸 비밀글로 남기시고 ^^ 제가 탁 까줄께요.

      Commented by monitoring at 2010/09/01 11:38

      안녕하세요, 이글루스 운영자입니다.
      본 포스트는 밸리 운영정책(http://help.egloos.com/5746) 3번에 해당되어 밸리 발행이 취소되었습니다. 모두가 함께 나누는 밸리를 위한 제재이니 너그러이 양해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 밸리운영정책 3번

      - 심한 인격모독 및 욕설, 비속어가 난무하는 게시물

    • 시울음 2010.09.01 11:50  댓글주소  수정/삭제

      운영진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차라리 디씨알바들처럼 걍 내버려둬라 괜히 욕 먹지 말고.

    • 아슈레이 2010.09.01 13:04  댓글주소  수정/삭제

      요즘은 이런것도 매크로로 돌리나? 저글 어디에 인격모독 욕설 비속어가 난무하는 게시물이라는 건지??

    • 海凡申九™ 2010.09.01 16:20  댓글주소  수정/삭제

      내 블로그에서 ㅋㅋㅋ만 적은 것도 욕으로 강판하신 위엄을 여기서도 볼 줄이얔ㅋㅋㅋㅋㅋㅋㅋ

    • 캐안습 2010.09.02 16:50  댓글주소  수정/삭제

      저도 "원래그런놈"이라는 글자 밖에는 비속어라고 할 수 없는 단어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욕설의 사유로 강판된 적도 있다는....

      설마 원래그런놈이란 아이디가 욕설인 건가?????
      그렇다면 비속어로 아이디를 만든 락카산열사부터 제재가 들어갔어야 정상인데???

  13. 2010.09.01 14:4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근.현.대.사 2010.08.30 11:50

[식민지 수탈론] - 그래서 일본이 잘했냐!, 라는 질문에 대해서

♪우리는 수탈 당했어. ♪착취 당했어. ♪압제와 혹독한 탄압에 숨도 제대로 못쉰채 노예처럼 살아갔어. ♪그래서 일본은 나빠. ♬ 이렇게하여 오늘도 붕어들의 랩 배틀은 시작되고.. 근데 이제 좀 지겹지도 않냐? 반론을 제시하면 근거없는 소리라 매도하고..그래서 근거를 제시하면 통계가 전부는 아니라고 하고.. 인지부조화도 이 정도면 수준급이라고 할 수 있지. 언제까지 그리 살텐가? ㅋㅋㅋㅋ

일제시대에 대한 피해 망상은 해방 직후부터 뒤틀린 우리 사학계의 어두운 면이기도 해. 왜냐하면 그걸 학교에서 가르치도록 한 사람들의 면면을 보면, 일제시대때 학예관이나 조선사편수회에 몸담았던 구린 인간들이 많았어. 이들은 자신들의 치부때문인지 안호상 같은 극단적 민족주의자들에게 끌려다니며 그들의 입맛에 맞는 역사 교과서 집필에 앞장을 섰지.

그때는 좌우대립이 첨예했고 혼란스러운 시기라 국민의 대동단결이라는 시대적 요청에 부응하기 위해 어쩔 수 없었다 쳐도 이제는 이런 걸 극복할 때도 되지 않았냐?  수탈, 수탈 하는데 대체 뭘 그리 수탈당했다고 호들갑을 떠나그래?

수탈이라는 건 말그대로 총칼을 앞세워 강제로 빼앗아 갔다는 얘긴데, 니들이 상상하는 그런 수탈은 일제시기에 없었어. 공출이라는 것도 일제 말기에 전시경제를 운영하면서 식량을 법정가격으로 강제매수한 것을 제외하면 한번도 강제로 식량을 가져간 적이 없었다. 혹자는 헐값으로 사갔으니 수탈이라고 한다. 조선의 쌀 수출가격은 동경의 미곡가와 큰 차이도 없었고 1930년 중반부터는 오히려 역전되는 현상이 일어났는데, 헐값으로 팔려갔을까?

농산물의 무역수지를 보면 일제 45년 내내 우리는 일본과의 거래에서 흑자였다는 것을 과연 몇이나 알고 있을까. 수탈이 아니라 수출이었다고 말하면 졸지에 친일파 매국노 취급받는 광기어린 애국심(?) 탓에 위안부와 정신대도 구분못하는 붕어들이 식민지근대화론을 까고 다니는 건 개그쇼가 아닐지?

생각컨대 일제가 조선의 농민을 수탈했다는 발상자체가 난센스일 수 밖에.. 지주가 소작료로 제 비용포함 55% 정도를 가져가고 남은 것을 다시 미곡상이나 정미소에서 또 쪼개서 가져가면 실제로 농민들이 손에 쥐는 식량은 수확량의 25% 미만에 불과했지. 이 정도로는 1년 내내 자가 소비량에도 턱없이 모자라는 건데, 이것을 일본에게 수출했다는 게 얼마나 황당한 논리인가?

일제시대가 그렇게 좋으면 일제로 돌아가는게 어떠냐는 한 유식한 붕어의 지적을 다시 한번 되새겨 볼 필요 있다. 그러나 이는 어폐가 있는 지적이다. 기왕에 돌아가는 시점을 비교하자면, 황구첨정이나 백골징포가 난무했던 그래서 민중들은 아무 희망도 의지도 없이 화전민으로 전락했던 패망전 조선 후기로 돌아가는게 어떨까?

한 시대를 고찰하면서 긍정적이냐 부정적이냐로 획일하여 구분하는 단순한 사고발상이 놀랍다. 일제시대가 우리에게 안겨준 근대성의 산물은, 비록 그들의 목적과는 무관하게 우리 민족이 해방후 자립할 수 있는 근거가 된 것만은 사실이다. 그걸 이제와서 존나게 부정해 봐야 조선말기에 보여준 민족적 무능함이 느닷없이 알흠다워 지지는 않을 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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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ARX08 2010.08.30 13:3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음....개그군...

  3. 호모싸이코스 2010.08.30 13:4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수구꼴통, 친일친미, 극우반공, 냉전팟쇼, 마쵸이즘을 지향하는 곳이므로 혈압이 높으신 분들께서는 발길을 삼갈지라.
    --
    와..! 솔직해서 좋으네요!!! (진심으로)

  4. Wishsong 2010.08.30 14:0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솔직히 한국인이라면 아무도 과거로 돌아가고 싶어하지 않을 걸요(조선 말기~군사 정권 포함)

  5. 카인백작 2010.08.30 14:3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쌀판 수익이 농민에게 갔다는 자료가 있나요?

    일제의 산미증산 계획에 의해서 처음엔 증산된 만큼 가져가기로 했다가, 나중엔 증산이 안되자(증산 된 것도 통계적 눈가림이라고 생각함) 수탈량은 유지해버려서, 국내에 쌀값이 폭등한것은 어떻게 설명하실건가요.
    그래서 북만주에서 생산된 조,피,수수가 대량으로 국내에 유입되어서 조상들이 그것으로 연명했었습니다.

    일본사람들도 이제는 주장안하는 '식민지 근대화론'이 아직도 우리나라엔 살아있군요.

    • 카인백작 2010.08.30 00:00  댓글주소  수정/삭제

      무명씨/ 마름 하기 나름인걸로 알고 있는데. 제가 틀렸습니까?

    • 카인백작 2010.08.30 00:00  댓글주소  수정/삭제

      흠 댓글이 지워졌네요.돈 많은 지주야 돈을 벌었겠죠. 기부라는 형식으로 총독부에 바치기도 했고요. 시장경제에 의해서 작동했다면, 산미증산 이라는게 에초에 약속이 증산된 양만 가져 가기로 했다는 약속도 잘 못된 것이죠.제국주의 시대는 자본주의 시장경제가 자리잡기 전입니다.

    • Joker™ 2010.08.30 14:59  댓글주소  수정/삭제

      [일본사람들도 이제는 주장안하는]

      ->ㅋㅋㅋㅋㅋ 이거 소련식 농담이죠?? ^^

    • 토르끼 2010.08.30 15:02  댓글주소  수정/삭제

      그렇다면 조, 피, 수수는 어떻게 사먹은 걸까요? 만주인들이 봉사정신이 투철해서 수탈 당한 한국인에게 무료로 준 것일까여?

    • 無名氏 2010.08.30 15:05  댓글주소  수정/삭제

      글을 다시 읽으세요.

      이 글 어디에 농민이 쌀을 팔았다는 부분이 있나요.
      자기들 먹을 것도 부족해 내다 팔 쌀이 없었다는게 제 주장입니다.
      일본으로 이출된 쌀의 대부분은 농민이 아닌 지주들의 몫에서 나간겁니다.

      쌀값의 앙등은 토지 지대의 상승에 기인한 것이고
      농민들의 생활이 지속적으로 어려웠던 것은
      소작제와 연관된 쌀의 분배와 왜곡의 문제였지
      쌀의 수출과는 그다지 큰 관련이 없습니다.

      식민지 근대화론에 대해서 잘 모르시면 아예 언급을 안하시는게 좋을듯 합니다.

    • 위서가 2010.08.30 15:26  댓글주소  수정/삭제

      자본주의 체제의 문제와 일제 수탈은 구별해야하는데
      국사교육의 문제는 자본주의적인 모순조차 일제 탓으로 돌려버렸다는 것
      (* 오히려 이 점이 한국국사교육의 왜곡된 보수성을 공격할 수 있는 점인데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당대 한국소설도 그렇고 - 특히 김유정의 작품 -
      하층 농민들에게는 지주와 마름이 더 문제였습니다.

      그렇다면 쌀판 수익이 농민에게 갔다는 질문 자체가 넌센스죠.

      지주-마름-소작인으로 대표되는 착취체제와
      군부가 장악한 이후 일제에 의한 강제공출을 따로 비교하셔야 할 것입니다.

    • 카인백작 2010.08.30 15:28  댓글주소  수정/삭제

      쌀이 지주 몫에서 나갔다? 그랬겠죠.
      지주는 소작농들 한테서 더 쥐어짜고, 소작농들은 쌀이 없어서, 조,피,수수 사서 먹고.
      그게 현실인 것임니다.

      에시당초, 초기 산미증산계획에 의한 쌀 수탈이 자행되지 않았다면, 그리고 무리한 쌀 수탈이 자행되지 않았다면, 농민들이 배 굶을 일이 없었다는게 제 주장입니다.

    • 카인백작 2010.08.30 15:31  댓글주소  수정/삭제

      수탈한 쌀량이 증산된 쌀량을 압도하는 상황을 만들어 놓고, 쌀값 폭등으로 지주-소작농의 밥그릇 싸움이 그들의 욕망에 기인한 것으로 몰아 가는 것은 정말 이해가 안됩니다.
      경제적 상황의 대부분의 원인은 경제정책에 따른 것이죠. 윤리로 해석해서는 안됩니다.

    • 위서가 2010.08.30 15:37  댓글주소  수정/삭제

      카인백작 / 윤리 언급은 아무도 안 했습니다만.

      산미증산계획이 큰 영향이 없었다는 것은
      농민들이 지주와 탐관오리들에게 착취당한 조선후기상황과 비교해보아도 충분합니다.
      그 때도 충분히(?) 굶겨서 아주 힘차게 민란이 일어났죠.

      님 논리야말로 '산미증산계획이 없었으면 지주는 소작농들을 안 굶겼을 것이다'라는 말씀인데 -_-;;
      그럴 리야 있겠습니까 -_-;

    • 카인백작 2010.08.30 15:44  댓글주소  수정/삭제

      위서가 //

      예전엔 쌀은 먹고 살았었죠.

      일제 시대의 조,피,수수의 대량 수입, 쌀값 폭등은 분명히 일제시대에 일어난 것이고,

      그것이 농민들의 생활의 질이 더욱 나빠 졌다는 것을 뒷받침 합니다.

      그 시발점이 일제의 수탈 정책인데, 책임이 없다는 주장이 설득력이 약하다는 이야기 입니다

      "수탈 정책-지주의 수탈-농민 생활 궁핍"에서 앞의 라인을 끊을 수 없습니다.

    • 無名氏 2010.08.30 15:46  댓글주소  수정/삭제

      카인백작 / 근거없는 소리는 하지 마세요.
      자료를 보면 일제 말기까지 소작률 변동은 거의 미미했습니다.

    • 위서가 2010.08.30 15:50  댓글주소  수정/삭제

      일제의 수탈정책이란 스테레오 타입을 제거하고 생각해보시면 좋겠네요.

      오히려 북쪽에서 조, 피, 수수까지 대량수입이라도 해서
      농민들을 먹이려는 정책까지 폈다고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도 있습니다.
      농민들 굶어뒈지든 말든 제 배만 채우던 조선후기와 비교하면 말이죠.

      차라리 일제를 까려면 그런 '일방적인' 수탈론보다는
      영국과 달리 어째서 식민국가에 선진문명의 혜택을 적극적으로 가져다주지 않았나
      (예컨대 의회민주주의를 왜 일본 본토에서만 향유하고 조선에는 이식하지 않았냐는 것)
      는 쪽으로 까는 게 더 나아보입니다.

      최소한 영국이나 프랑스 등은 참 가증스런 식민통치에도 불구하고
      나름 식민지였던 국가와 우호관계도 유지하면서 식민통치의 긍정적인 점이 부각되는데 반해
      일본의 식민통치가 욕먹는 이유는 '짜내기'만 했지
      선진적인 것을 이식하려는 시도가 보이지 않아서입니다.

    • 無名氏 2010.08.30 15:55  댓글주소  수정/삭제

      카인백작 / 것 보세요..
      님은 지금 아무 근거도 없이 추정만으로 그 시대를 평가하고 있지 않습니까?

      머리에 뭔가 좀 집어넣고 와서 얘기를 하시든지 하시지요.
      하다못해 허수열씨 논문이라도 좀 읽고 오세요. ^^

    • 카인백작 2010.08.30 15:55  댓글주소  수정/삭제

      지주들이 일제에 쌀 뺏앗기고도 '허허' 하면서 웃고 넘어 갔을까요?

      물론 몇몇 훌륭하신 분들은 그렇게 했다고 알고 있습니다만,

      대부분은 빼앗긴 것을 소작농에게서 되 찾으려 했을거라는게 경제적 관점에서 봐도 이치에 맞습니다.

      소작농의 지대 문제는 '지역'과 '지주'에 따라서 천양지차인 것으로 알고 있는데.

      어느 기록에 근거한지 알고 싶습니다.

    • 카인백작 2010.08.30 15:57  댓글주소  수정/삭제

      근거 없는 추정이 아니라, 국사시간에 배운 내용을 이야기 하는 것입니다.

      고정관념이 아니라 사회적통념 입니다.

    • 無名氏 2010.08.30 15:58  댓글주소  수정/삭제

      카인백작 / 이 양반은 도대체 뭘 믿고 지주들이 일제에 쌀을 빼앗겼다고 이럴까요?
      국사시간 때 뭘 배웠는지 모르겠지만, 지식을 내재화 하는 노력은 님이 하는 겁니다.

      사회적 통념이 이러니 내 말이 진실이다? ㅋㅋㅋㅋ

      더 이상 대화가 불가함

    • mynameisjoe 2010.08.30 18:56  댓글주소  수정/삭제

      끼어들어서 죄송한데요..

      소작농에게서 소작료로 거둔 쌀을 일본에 수출하고, 그렇게해서 번 돈으로 지주가 자기 자식을 일본에 유학보내거나, 일본 물건을 사다가 다시 팔거나, 자기한테 필요한 걸 사거나 그런 거죠. ;;; 조선시대에 청나라에서 사치품 수입하던 걸, 일제 시대에는 일본에서 수입했다고 보면 될 거 같네요.

      일제가 지주 몫을 강제로 빼앗아서 그걸 분배한다거나 그런 차원의 문제가 아닙니다. 그냥 시장에 맡긴 거죠. 지주들도 단순히 국내에 쌀을 파는 것보다 일본에 수출하는 게 돈이 더 되니까 그렇게 한 거고요.

      물론 일본이 착했다면 소작농이 죽어라 농사 지은 거 반 떼어가는 악습을 없앴겠지만, 걔들은 그런 거 없앨 생각이 없었죠. 하지만, 그 악습이 일제 시대에 생겨난 것도 아니고 그 전에 있던 건데, 그걸 일제 탓이라고 할 수는 없잖아요? 악습을 고치려하지 않고 방관했다고 비판하는 건 몰라도 말이죠. 그렇다고 대한제국이 그걸 고치려고 했느냐면 그것도 아니고요.

    • 위서가 2010.08.30 20:29  댓글주소  수정/삭제

      카인백작 /

      "제국주의 시대는 자본주의 시장경제가 자리잡기 전입니다." -> ;;;;;

      열강국가 내부의 자본주의 시스템이 팽창하여 더 넓은 시장을 찾기 위한
      해외진출 - 약소국 침략 - 식민체제 확립이 제국주의입니다 ;
      즉 자본주의 시장경제가 그 제국주의 시대 이전입니다만 ;;;;;

      강제공출이 무자비하게 행해지던 때는 그 뒤입니다.
      군인들과 강경보수주의자들이 권력을 잡고 본격적인 전쟁체제로 가면서
      일본 본국에서조차 강제공출이 진행된 걸로 압니다.

      아직까지 잘 이해못하신 모양인데
      즉 당시 지주들이 농민들에 소작료로 거둔 쌀을 일본에 팔아먹었다는 게 요지죠.
      님 말대로 대가 없이 그냥 가져갔으면 '지주'들까지 독립운동을 벌였을 겁니다.
      하지만 실상은 그러지 않았죠.

    • 카인백작 2010.08.30 21:19  댓글주소  수정/삭제

      자본주의가 아니라, 자유시장 경제를 이야기 하려던 거였습니다.

      산미증산계획의 애초 주장은
      "조선의 쌀 생산량을 증대 시키고, 증가 된 부분만 일본으로 가져가겠다" 였습니다
      하지만, 쌀 생산이 줄어도, 많은 양의 쌀이 일본으로 반출 되었죠.

      이게 지주들이 돈 벌 욕심에 그랬다는 주장이시죠?

      그게 자유시장 경제에 의해서 (일제의 개입 없이) 쌀이 단순히 팔려 나간 것이라면, 반출량은 시장 상황에 따라서 반출량이 달라 져야 정상이죠.

      조선에서의 쌀값 폭등이 있는 상화에서도 쌀 반출량에 변화가 없다는 것은 어떻게 설명하실건가요? 지주라면, 일본에 파나 조선에서 파나 똑 같으니 고민을 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실상은 매년 쌀은 나가고, 부족한 쌀량은 조,피,수수로 채운 것입니다.

      이것은 조선의 쌀이 팔린게 아니라, 일본 본토의 쌀 부족량 만큼 빨려 나간 상황입니다.

      그리고, 그런 식민지 경제정책을 사용한 것 자체가 일제가 비난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이게 제가 주장하는 2번째 주장입니다. 그런 정책이 없었다면, 쌀이 그렇게 반출될 상황이 없었다는 것죠.

    • 위서가 2010.08.30 22:10  댓글주소  수정/삭제

      카인백작 /

      "일본에 파나 조선에서 파나 똑 같으니 고민을 했을 것입니다."

      -> 일본에 파나 조선에 파나 똑같지 않으니 고민할 필요도 없었죠(...)
      조선에서도 쌀을 원하는 사람은 많죠. 하지만 '구매력'이 없는데 말입니다(...)
      착취당하는 소작농들이 그런 쌀을 비싸게 사줄 것 같습니까 ;
      구매력이 부족하고 돈도 없으니그래서 싸구려 조, 피, 수수로 연명하는 것이죠.

      님 논리대로 일제가 시장경제를 부정했으면 친일파는 애당초 존재하지도 않았을 겁니다.
      지주들이 제값에 팔지도 못 하고 다 뺏긴다면 뭐하러 친일합니까. 소작농 규합해서 저항했죠.

    • 카인백작 2010.08.30 23:03  댓글주소  수정/삭제

      애초에 그후에 상황은 산미증산계획 이라는 식민지 정책의 산물이라 것입니다. 그게 평화롭고 정의로운 정책은 아니었습니다. 일본 본토 국민들을 먹여살리기 위한 정책이죠.

    • 위서가 2010.08.30 23:16  댓글주소  수정/삭제

      음, 전세계적으로 공통되는 지주-소작농 착취제도가
      일본의 산미증산계획의 일환이었다는 이야기군요. 잘 알겠습니다.

      일본이 그렇게 무서운 존재였군요.

    • 無碍子 2010.08.30 23:25  댓글주소  수정/삭제

      카인백작님/

      백작각하께서는 『북만주에서 생산된 조,피,수수가 대량으로 국내에 유입』되었다고 하시었습니다.

      다른건 말고요. 북만주에서 「피」가 얼마나 수입되었는지 연도별 수치를 제시해 주십시오. 마데인 북만주산 「피」 말입니다. 다른 지역에서 생산된 건 필요 없습니다.

    • 無碍子 2010.08.31 00:00  댓글주소  수정/삭제

      백작각하/연도별 마데인 북만주산 「피」의 수입량을 제시해 달라는 부탁은 무리였습니다.(사죄를 드립니다.) 어느 한시기의 수입량이라도 보여주시면 고맙겠습니다. 다른것 즉 「조」와 「수수」는 필요 없습니다. 북만주산 「피」가 아니면 소용 없습니다. 오직 북만주산 「피」의 수입량이 알고싶을 뿐입니다.

    • Joker™ 2010.08.31 02:29  댓글주소  수정/삭제

      카인백작 //

      너, ♬♬♩♬님아.

      레닌이 주창한 '가장 성숙한 자본주의의 진화과정'으로서 제국주의론이 뭔지 좀 찾아보세요. (.........)

    • 海凡申九™ 2010.08.31 03:2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대기업이 돈을 많이 벌면 무조건 그건 노동자 것이란 논리네 ㄷㄷㄷ

      덧.
      얘는 아직도 정신을 못 차렸네
      얘가 그 유명한 "천안함 장갑 찢어져서 지진파 발생"이란 이론을 주장한 주체과학자임.
      http://pds17.egloos.com/pds/201004/30/04/f0082604_4bdae28eaf101.png
      상대 안 하는게 답.

    • 카인백작 2010.08.31 12:44  댓글주소  수정/삭제

      조커 // 입에 걸래를 무셨습니까? 왜 욕을 하고 그럽니까?

      해범신구 // 님은 저한테 그런말 할 자격이 없습니다. 주체과학은 뭐임? 먹는거임?

      무애자 // 저는 이쪽 전공자가 아니라서, 솔직히 자료 구하기가 막막합니다. 조,피,수수 3가지 곡물이 산미증상계획 이후 국내 쌀 부족을 매꾸기 위해서 들어 왔다는 것을 배웠는데, 피의 수입량을 시기적으로 제시는 못하겠습니다.

    • 카인백작 2010.08.31 15:09  댓글주소  수정/삭제

      무애자 // 한참을 찾은 끝에

      "조·수수 등 잡곡은 만주지역으로부터의 수입으로 충당했으며 이때 수입량은 연평균 100만~ 300만섬정도에 달했다" by [무역학 개론] 우리나라의 통상정책, http://www.fameter.com/1241789

      라는 문구를 찾았는데, '조, 수수 등' 라고만 언급되어 있네요.

      더 이상은 저에게 무리입니다. ㅠㅠ. 피의 수입량은 적었나요?

    • 無碍子 2010.08.31 18:09  댓글주소  수정/삭제

      카인백작님/

      백작께서 『북만주에서 생산된 조,피,수수가 대량으로 국내에 유입되어서 조상들이 그것으로 연명했었습니다. 』라고하시기에........


      「피」를 수출할 만큼 상업적으로 재배했는지 또 다른 곳도 아니고 무려 북만주에서 「피」를 수입했나는 말씀에 궁금해서 질문드렸습니다.

      하여간 백작께서 『북만주에서 생산된 조,피,수수가 대량으로 국내에 유입되어서 조상들이 그것으로 연명했었습니다. 』라고 리플을 하실 때 정확한 근거 없이 리플하셨다고 생각해도 되시겠습니까?

      하옵고 백작님의 의문 『쌀판 수익이 농민에게 갔다는 자료가 있나요?』에 소햏의 답글 (http://soakaeofh.egloos.com/4826791)을 읽어 주시고 의견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6. 처음처럼 2010.08.30 15:2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랜만의 글 잘 읽어보았습니다.

    요사이 바쁘신지 글이 잘 올라오지 않아 걱정이 조금 되었는데, 무탈하신듯하여 다행입니다.

    항상 느끼는 생각이지만, 진명행님의 글은 한번쯤 생각을 다시 돌아보게 하는 그 무엇인가가

    있는듯하여 매번 감사히 잘 읽고 있습니다.

    더운 날씨에 건강에 유의하시길 진심으로 기원하겠습니다.

  7. tanato 2010.08.30 16:5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수탈도 했고, 지들이 건너와서 살려다 보니 근대화도 시켰고. 좀 삥좀 뜯을라고 이것저것 신식으로 바꿨고,

    여튼간에 좋은점 나쁜점 다 있음! 이러고 하면 되는거 아닌가요 -_-;

  8. 아싸가오리 2010.08.30 17:1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좋네, 일부러 추천 찍어줘서 메인 띄우고 희롱당하는 걸 반복하고 있으니
    이런 걸 진짜 변태라고 하지

  9. 피쉬 2010.08.30 18:5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냥 새로 교과서 하나 쓰시는 건 어떨까요

  10. 피쉬 2010.08.30 19:2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런데 제가알기로 태평양전쟁 이후로 각종 물자와 인력공출은 일본 국내에서도 있던걸로 아는데
    그건 수탈이 아니군요

  11. BigTrain 2010.08.30 20:0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영훈 교수의 식민지 수탈론이 "일제시대에 경제성장률이 높았으니 일제시대가 왜정지치(倭政之治)의 시대다."라는 이야기가 아닌데..

    논문은 아니지만, 이영훈 교수가 EBS 강의를 요약해 출판했고 뉴데일리에 전재된 '대한민국 이야기'를 보면 '식민지'근대화에 포인트를 두고 있는데, 사람들은 식민지'근대화'에 초점을 두고 비판을 하더군요. 이영훈 교수라고 일제시대의 성장이 당시 조선 민중을 위한 것이었다고, 살기 좋았다고 주장하는 건 아니지요.

    다만, 병합 전 대한제국 시기보다는 나아졌고 식민지시대 당시 이뤄진 각종 제도 - 사유재산, 계급제도 철폐 등 - 개혁이 해방 후 남한의 경제개발에 기반으로 작용한 점은 분명히 있다는 거죠. (이 주장을 하면 곧바로 "일제시대가 좋았다는 거냐."라고 조건반사적으로 흥분하시는 분들이 계셔서 문제긴 하지만.)

    후반부의 이승만 국부론에는 전적인 찬성을 보내기가 힘들지만, 그의 주장은 한 번 읽어볼 만한 가치가 있는 것 같은데 말이죠.

    신문에 전제된 걸 갈무리해서 PDF로 빼놓은 게 있는데, 여기 들어오시는 분들이 한 번 읽어보셨으면 합니다. ( http://pds18.egloos.com/pds/201008/30/39/Daehanminguk_Iyagi_LeeYoungHoon.pdf )

  12. 鷄르베로스 2010.08.30 20:1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추천평으로 짖고있는 애들보니 마치 유생들 모여서 아니되옵니다 하는 것 같군요 ㅋ

    • KittyHawk 2010.08.30 22:08  댓글주소  수정/삭제

      유생 얘기 나오니 역사 속 유생들이 정말 역겹게 느껴지는 게 사고의 틀이 탈레반 같다는

      생각이 들게 만들어서죠. 백성들 먹고 사는 문제 보다 장례기간을 얼마로 해야 하네 마네

      같은 걸로 갑론을박거리는 무리들이 장장 500년 넘게 나라를 지배했으니 그때의 나쁜 점

      들이 지금도 이 나라를 괴롭히는 게 아니냐는 생각이 듭니다. 더욱 웃긴 게 좌익 진영에서

      극단적으로 신념화된 사람들이 자기들의 지론을 설파하는 모습에서 비슷한 분위기를 느

      낄 때가 있습니다.

    • 위서가 2010.08.30 23:17  댓글주소  수정/삭제

      유생들은 최소한 일본 애니나 만화에 하악하악대지는 않으면서 지조는 지켰지 말입니다.

  13. 武究天尊 2010.08.30 20:5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일제가 '폭력적으로' 근대를 이식시켰다고 -다시말해 식민지적으로- 지적하고 있으며, '수탈 형식'의 유무를 이야기 하는것이지 식민지배를 전혀 미화하지 않음에도 매번 같은 반응이 나오는것은 사실 이것이 신념의 문제가 되기도 하기 때문에 그런것 같습니다. 이건 좌우 상관없더군요.

  14. 주코프 2010.08.30 21:0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무명님의 일정기에 대한 역사적 인식에 많은부분 공감합니다..추천하려 했는데, "추천하신 글은 부적절한 글로 신고되어 추천이 금지된 글입니다"라는 어이없는 글이 떠서 못한 점이 무척 아쉽네요..

    • 몽몽이 2010.08.30 21:20  댓글주소  수정/삭제

      헐. 그런 황당한 일이. 이것이 레알 병글루스 퀄리티인게로군요.
      운영자 새퀴덜은 그딴 ♪♫♪할 시간에 서버관리나 잘 할 것이지.

  15. KittyHawk 2010.08.30 22:0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탈북자 분들 증언 중엔 연로하신 분들이 북의 상황이 나빠질 대로 나빠져 갈 때 한 얘기 중 하나가 "차라리 왜정 때가 나았다"는 게 있다는군요.

    • mynameisjoe 2010.08.30 22:37  댓글주소  수정/삭제

      그러고보니
      최소한 일제 시대에는 조, 피와 같은 잡곡류를 '수입'할 수라도 있었군요..
      오늘날의 북한은 식량을 '원조'받아야 하는 처지. 게다가 그렇게 받아온 게 주민들에게 돌아가지도 않으니... OTL.

  16. Urthona 2010.08.30 23:2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사실 이게 조금 웃긴부분인데 이전에 무명님이 다루신 글뿐만 아니라, 다른 커뮤니티나 이글루스에서 다른 분들이 이야기를 하는 일제 시대 문제나 민주화 문제등에 있어서 문제가 되는 배경과 사건 자체가 상관없다며 미화하는 분은 없죠. 예를 들어 일제시대에 행해진 이야기를 하거나, 5공과 그 이전의 문제등에서 감정적으로만 접근하게 만드는 요소들에서(이스는 못말려서 세력을 다지기 위해서 실행한 작업등이 단적인 예가 되겠죠.) 멀어질 필요가 있다는거니까요. 역사적 사건들에 대한 접근 방식에 대해서 이야기를 말해도 무작정 ♩♩♬♬, 소새끼, 말새끼식으로 몰아가는게 문제의 원인이 아닐까 싶네요. 시간이 더 지나야 할까를 생각해봐도, 크게 변할 것 같지도 않고….

  17. Urthona 2010.08.30 23:3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근데 이건 지나가는 농담이긴 한데 ... 이번 이글루스 일제시대 관련 논란들을 주욱 살펴보니 지금도 친일파를 청산하지 못했고, 수많은 악덕들이 이어져 오고 있으니 하루빨리 처리해야 한다는 분들이 계시더군요.

    전범들을 해결하는것은 당연하지만 그 자손들도 연좌로 죄다 쓸어버려야 하는 부분은 조금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엄청나게 화를 내시는 이글루스 모님들을 보니까, 정말 친일파 청산이 시급한 문제라면 저 북쪽의 현재도 전성기로 남아있는 극렬 친일파 잔재들과 민주당(한나라, 민노당 소속의 친일파 후예들도 포함, 민주당 의원들에 비하면 소수지만) 소속의 친일파 후손들도 처리하기 위해서 북침을 강행하고, 민주당 의원들 교수형이라도 처해야 할 기세더군요.

    자주 화내시는 분들이던데 조금 진정을 하고 생각해보는게 어떨까 싶더군요.

    • BigTrain 2010.08.31 00:19  댓글주소  수정/삭제

      진지하게 받아들일 필요도 없는 주장들이지만, 연좌제로 쓸어버리려면 쓸려나갈 정치인들이 야당쪽에도 꽤 많습니다. ㅎㅎ

    • 백범 2010.08.31 11:45  댓글주소  수정/삭제

      할테면 하라고 하죠 뭐... 누가 더 많이 깨질지, 어디 갈때까지 가보라고 해보죠 뭐...

    • 위서가 2010.08.31 12:07  댓글주소  수정/삭제

      그 친일논리라는 게 결국 박정희를 공격하고
      친북시비를 덮기 위한 창과 방패였던지라.

      도요타 다이쥬 의혹부터 시작해
      민주당 몇몇 의원 조상의 친일의혹이 불거지자
      친일논쟁은 자연히 가라앉아버렸죠.

      연좌처벌이나 숙청은 이미 100% 불가능한 마당에
      저걸 제기하는 건 '이미지 다운'을 노리는 선동질이죠.

      뭐 사실 더 이상 그 의혹제기도 못할 겁니다.
      그걸로 이득 본장본인께서 이미 가버리셨으니까요.

  18. Mediocris 2010.08.31 16:3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근대화라는 용어 자체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을 수는 있겠지만, 일제시대를 총체적으로 평가한다면 "수탈도 있었지만 동시에 근대화도 진행되었다."고 하면 무난합니다. 근대화라는 용어에 식민지를 추가한 '식민지근대화'라는 신조어에 민감하게 반응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아무리 지독하다고 해도 목민심서에 나오는 가렴주구나 3450%의 이자를 받아쳐먹는 놈은 없었습니다.

    • swami 2010.08.31 17:54  댓글주소  수정/삭제

      그건 너무 무난한 평가라서 오히려 의미하는 바가 별로 없을거 같구요, 제 생각에는 좀 더 공격적으로 나가도 충분하다고 봅니다. 토지조사사업해서 토지 40%를 강탈해가고, 몇십만명인가의 여성을 강제로 질질 위안부로 끌어가고, 쌀 총생산량 절반가량을 뺏아간 식의 수탈 따위는 없었다. 그리고 식민지 근대화는 일제가 조선을 영구병합하고자 기본 인프라를 이식하는 과정에서 발생하였던 것이고, 일본의 의도와는 달리 그것이 한국 근대화의 기반이 된것은 부정할수 없는 사실이다 정도로 말이지요.

    • Mediocris 2010.08.31 21:01  댓글주소  수정/삭제

      "토지조사사업으로 토지 40% 강탈은 없었고, 몇십만명의 여성을 강제로 위안부 동원하지 않았고, 쌀 총생산량 절반 가량을 빼앗는 수탈 따위는 없었다. 식민지 근대화는 일제가 조선을 영구 병합하고자 기본 인프라를 이식하는 과정에서 발생하였던 것이고, 일본의 의도와는 달리 그것이 한국 근대화의 기반이 된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는 정확히 수많은 유사 독립투사들이 친일매국노로 매도하고 싶은 이영훈 교수를 비롯한 낙성대연구소 그룹의 식민지근대화론입니다.

      그들 유사 독립투사 또는 세습희생자들은 근대화라는 개념이 과연 식민시기에 존재할 수 있었는지를 학문적으로 접근하지 않고, ‘식민지근대화’라는 개념어를 개발독재와 직결시켜 특정 인물을 친일로 연좌하기 위한 정치적 수단으로 이용할 뿐입니다. 세도정치와 삼정문란과 가렴주구가 온존한 18~19세기 말에서 자본주의 맹아와 내재적 발전요소를 쥐어짜는 자들에게서 역사적 균형감각을 발견하기는 힘들 것입니다. 차라리 국망 후에도 덕수궁 생일잔치에 수십억을 탕진하는 고종을 개혁군주로 미화하려는 이태진 교수의 눈물겨운 노력이 훨씬 순수해 보일 지경입니다.

      황현의 ‘매천야록’에 따르면 1887년 중국 천자의 탄생기념일인 만수절에 외척들이 고종에게 지방 감사의 진상품을 바쳤는데 고종은 비단 등 옷감만 적은 목록은 용상 아래로 던져버리고, 백동 등이 함께 적힌 목록을 보고서야 “감사들이 이렇게 예를 차려야 마땅하지 않은가. 전라감사가 나를 사랑하는구나”라며 기뻐했다고 합니다. 금강산 1만2천봉 봉우리마다 굿거리 재를 올린 민비는 어떻게 할까요? 아무리 수탈을 논하더라도 조선왕조 말기를 두고 일제와 비교하는 것은 부끄러움을 모르는 짓입니다. 사채이자 3450%에 수탈당하고 자살하는 기층 민중이 존재하는 대한민국도 ‘근대화’하고 있음은 분명합니다.

    • swami 2010.08.31 22:19  댓글주소  수정/삭제

      유사 독립투사 또는 세습희생자라는 표현이 아주 재미있습니다ㅋㅋ 개인적으로 사쿠라 진보라는 타이틀도 같이 달아주고 싶네요

    • Mediocris 2010.08.31 23:45  댓글주소  수정/삭제

      유사 독립투사는 제가 지어낸 말이지만 '세습의 희생자' ‘희생의 세습의식(儀式)’ 등은 제가 좋아하는 한양대 임지현 교수가 즐겨 사용하는 용어입니다. 근대화라는 애매모호한 개념을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이해하고 있나 궁금해서 인터넷을 뒤지다가 프레시안에서 발견한 ‘조선의 힘’이라는 역사서를 쓴 오항녕씨의 재미있는 글을 소개합니다. 매천야록의 고종 이야기도 조선은 나름대로의 질서와 힘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하는 오씨가 비판한 김기협씨의 책에 등장합니다. 김씨는 조선은 17세기 이후에 망국의 역사를 향해 치달았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면 조선의 경우는 어떤 죽음에 해당될까? 나는 둘 다 해당된다고 생각한다. 자연사(自然死)할 만큼 나이가 먹은 상태에서 교통사고를 당한 격이랄까? 새로운 문명의 전환이 필요할 시점에서 일본 제국주의의 침탈을 당한 것이다. 이 점을 이해하는 것은 망국의 실제를 이해하는 것 이상으로 중요하다. 조선의 망국을 이해하는 우리의 관념을 형성하기 때문이다. 먼저 밖으로. 일본의 침략, 나아가 제국주의 침략에 대한 비판이다. 하긴 이 선명한 비판조차도 근대화라는 망상에 빠져 호도하는 모양이다. 제국주의 침략의 부당성을 오히려 부정하고 근대화 논리에 휘둘려서 오히려 식민지의 긍정성을 부각하는 주장이 있다. 물론 통계(統計)와 실증(實證)이라는 이름으로. 그 끝은? 돈이면 자식도 팔 것이다. 이 얘기는 그만하자.”

      ‘망할 때가 되어 망한 나라’가 ‘문명의 전환’을 맞으면 근대화가 아닌가요? 그런데 ‘근대화 논리에 휘둘려서 식민지의 긍정성을 부각한’다고 말하는 것은 도대체 무슨 어법일까요? 아니 ‘무슨 뜻으로 그런 주장을 하는가’라는 물음이 오씨의 의도를 제대로 이해하는 길이겠지요. 그야말로 식민지근대화라는 복잡한 개념 중에 한 요소인 식민지산업화를 논하면 바로 식민지근대화론을 인정하는 친일파로 단정하는 비분강개가 튀어나올 기세가 아닙니까?

      ‘문명의 전환’을 가져올 ‘천사의 제국’이 일본이 아닌 미국이었으면 어땠을까요? 그랬어도 ‘식민지근대화론’을 제대로 이해하려고 논란하고 고민하는 장삼이사의 노력이 ‘근대화 논리에 휘둘려서 식민지의 긍정성을 부각하’게 되는 걸까요? 통계와 실증을 끌어다가 사유의 지평을 넓히고자 애쓰는 수많은 사람들은 오늘도 혹시 ‘내가 돈이면 자식을 파는 인간’은 아닐까 걱정해야 하는 참으로 ‘생각’조차 힘든 어려운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19. beros 2010.09.18 21:1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우연히 메인에 떠있길래 들어와봤는데.
    참 대단하네요!! 굿!!
    이렇게 일본우익 저리가라할정도로 나라의 뿌리를 캐낼려고 하는데,
    구석구석 쓸데없는 대통령 뒷담화나 캐낼게 아니고
    국가를 위해 이런 사람이나 잡아들여야 할텐데^^

    일제시대때 친일하는 사람이 제법 많았던 이유를 여기서 보고갑니다.

    • 혁신한국 2011.08.06 03:12  댓글주소  수정/삭제

      나라는 발전했고 최소한 고등학교 정도까지는 큰 비용 부담없이 능히 다닐 수 있는 환경이 구축이 된 나라에서, 고작 내세울 수 있는 논리가 그것 외에는 없다는, 그리고 그렇게 밖에는 쓸 말도 없는 beros님의 수준을 보면, 일제시대때는 말을 할 필요조차도 없는 것 아닐까요?

      일본우익이 절대악을 지향하며, 입에 거짓말을 달고 다니는 사람들이 아니니, 당연히 그 사람들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을 거짓말이라고 단언할 이유가 없고, 한국사람들이 절대선을 지향하며 입에서 내뱉는 모든 말이 진실을 담고 있다라고 확신할 수 없다면 당연히 논쟁은 나오는 것이 정상입니다.

      문제는 배울 의지가 있다면, 그리고 논리를 분쇄시킬 의지와 열정이 있다면 충분히 자료나 주변의 전공자들에게 청해서 이 주장에 대한 반론을 제기할 수 있을 것인데, 그런 의지도, 열정도, 소양도 없는 분들의 많이 보이니, 100년전의 이 나라 조선의 모습은 반추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입니다.

      오늘의 무식을 보고 있으면 100년전의 무뇌를 알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조상 욕 보인다고 고생하셨습니다. 조상님 제삿상에 감 하나 더 올릴 수 있도록 배려해드리고 싶을 지경입니다. 못 배운 분이 먹기라도 잘 먹어야죠.

    • 20's 지질 2011.08.09 12:23  댓글주소  수정/삭제

      저런게 20대라니.

      대한민국에 희망이 없구나.

  20. 2012.06.29 01:0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하여간에 ㅡ,ㅡ 식민지 근대화론이란 이름이 잘못됬음 애시당초 식민지반봉건사회론 주장하면서, 맑스 빠돌이들이 자본론에 식민지 한국사회 끼워 맞춰놓고 수탈론 전제하다가, 해방 이후 한국사회 프리즘, 특히 80년대 사구체논쟁에 있어 주류이론으로 식민지반봉건사회론을 등장시키면서, 그 유명한 6가지인가 결론을 내고, 병맛의 절정을 달리다가 80년대 이후 갑자기 사그라지면서(갑자기도 아니지, 자기들이 열망한 민주기지의 현실을 보았으니) 아예 처음부터 식민지한국사회를 규명할 논의가 생겼고, 마침 세계화 드립 나오면서 한국사와 세계사와 경향이 다르다거나, 애커트류의 한국자본주의 기원을 식민지 경험에서 찾는다거나 그런 류의 논의가 모여서 낙성대 주도로 식근론이 만들어진건데, 정작 식근론 주도하는 이들 어느 누구도 식민지 근대화를 주장하지 않는 다는 아이러니 ㅡ,ㅡ 그러면서 반대파들은 식근론 딱지 붙이고 주홍글씨 쓰기만 바쁘지

  21. 2012.06.29 01:0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기존 이론에 현실을 대입하던 멍청이들과 달리, 현실을 정확하게 계량해서 이론을 만들어내는 참신한 발상이 연구사적 발달을 가져왔고, 아마 80년대 이전엔 신경제사니 계량경제학이니 ♫♫♩고 맑스만세였을걸? 식근론은 development를 말하는 것도 아니고, 사실 progress라고 해도 굉장히 제한적인 것이며, 그나마 인정하는 건 growth인데, 식민지 지역에서의 소득상승은 사실 보편적인 현상이고, 물론 한국이나 대만처럼 피식민지 거주민 지역의 소득조차 같이 성장한 사례는 드물지만, 영국의 경우 이주민 지역의 소득 상승이 확인되는 케이스가 있고. growth의 과실이 농민에게 돌아갔냐는 문제는 어디까지나 자본주의 체제의 분배 문제로 접근해야지, 농민이 못컸으니 성장 없다고 주장하는 건 눈가리고 아웅하는거고, 전세계적으로 선진 농업체제였던 소농체제를 부정하는 소리고. 또한 브리티시 푸드 퍼즐이라 하여, 곡물소비량은 감소하지만 비곡물소비량이 훨씬 늘어나는 현상도 관측이 된 이상 꼭 소수 지주만 성장의 혜택을 봤다? 물론 아니지


근.현.대.사 2010.08.16 02:10

일제시대 강제징용에 대해 선학들의 연구업적을 돌이켜보건대, 실망 그 자체이다. 일제가 관련 자료를 폐기한 탓에 연구의 한계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연구자들의 결과론에 집착하는 접근방법에 문제가 있었다. 1939년 국가총동원령이 발효된 이후로 한반도에서 일본으로 이주한 노동자들의 성격을 규정함에 있어 비록 강제성이 수반되었다고는 하나, 필요이상으로 과장되고 억지를 부린 흔적이 역력하다.

지금까지 많은 연구자들이 강제징용을 다루었지만, 도대체 어디서부터 강제징용으로 보아야 할지, 피징용자 수는 어느 정도인지, 일본 내지인에 비해 얼마나 가혹했고 어떤 방식으로 그들의 노동력을 수탈했는지 구체적인 비교 데이터나 근거가 전혀없고 합의된 바도 없다.

박경식이란 사람은 강제징용이 아닌, 강제연행으로 이를 표현하며, 130만에서 150만명의 조선인이 대상이라고 하는데, 이런 정신나간 소리를 하고 다니는 양반들을 제외하면, 대체로 학자들은 "강제동원"의 개념을 사용하여 피징용자 수를 40만에서 60만으로 잡고 있는듯하다.

그러나 일본으로 건너갔다고 다 강제징용은 아니다. 시기별로 모집-관알선-징용의 단계를 거쳤지만, 그 강제성에 대해서는 함부로 속단할 일이 아니다. 특히, 모집과 관알선 방법을 주로 사용했던 1943년까지의 일본 공문서를 보면, 계약기간 중 일시 귀국자들을 허용하고 있었고, 모집 대상에 일정 자격을 두고 있는 점과 자유도항이 금지되었던 점, 신분이나 이름을 사칭하여 허위로 도항을 시도한 자들이 증가하자 이를 단속하려했던 점 등으로 미루어보아, 강제성과는 상당히 이격되지 않았나 생각된다.

또한 1944년 국민징용령에 의거, 강제 징용을 시도했지만, 일제는 본토에서만큼 큰 재미를 못보았다. 강제징용 대상자들이 순순히 징용되어 끌려가는 경우가 거의 없었다는 점에서 이를 뒷받침한다.  1944년 10월 16일~25일간 노무동원 위반자 일제단속 결과 공문을 보면, 국민징용령 위반자가 6,726명이고, 징용출두 불응자가 16,440명에 달하는 등 무려 23,166명이 일제의 정책에 따르지 않았다. (이때 잠적하여 수배된자는 7,874명이었다)

그렇다면, 징용되어 일본 내지로 송출된 노동자들은 순순히 끌려갔을까하면.. 그런 것도 아니다. 홋가이도(北海道) 소재의 광산에서 보고한 이입조선노무자 수를 보면, 배를 타기도 전에 20%가 도주했고, 배에서 내리자 마자 20%가 도주하여, 실제로 광산까지 도착한 인원은 총할당수의 60%만 도착했다고 한다. 이 60%의 56%는 1년내에 도주를 했다고 한다. 그러면 몇이나 남아서 개고생을 하다가 해방을 맞았겠는가?

요컨대 진정한 의미의 강제징용자 수는 상당히 부풀려졌거나 왜곡되어졌다고 보인다.

두번째로 지적하고 싶은 것은 과연 얼마나 수탈당하고 노예처럼 살았겠냐 하는 점이다. 일단, 시기적으로 자유도항이 허용되었던 1938년 이전과 1939년 이후로 나눠서 생각해보자. 1938년 이전의 자유도항은 조선에서의 취로와 생계가 곤란해지자, 자발적으로 일본에 건너가 생활을 영위했던 경우인데, 소화 9년도의 일본 자료를 보면, 이들의 평균 월수입은 15엔 이하 25%, 30엔 이하 44%, 50엔 이하 23%, 50엔 이상 0.07%였다.

소화 9년도에 전체 조선인 노동자 수는 20,304명이었는데, 이중 1,738명(8.5%)이 실업자였고, 반실업상태자까지 합하면 15,000명 수준이었다. 생활이 어렵다보니, 범죄율도 높았는데, 전체 노동자의 15%인 3,080명이 범죄를 저질렀고 이 중 54%가 절도죄, 30%가 도박죄였다.

그렇다면, 소화16년(1941년) 형사월보에 나온 조선인 노무자들의 임금은 어떠한가. 최초 이입후 6개월의 연수기간 동안은 일급 2엔에서 2엔 50전정도의 급여를 받고, 사업장에 배치된 이후에는 탄광의 경우 일급 3엔정도를 평균적으로 받았다. 이들의 월수입에서 평균 40엔정도는 본적지로 송금을 하고, 평균 15엔 정도는 저금을 하는 것으로 나와있다. 여기에 본인의 생활비 정도를 추가적으로 감안했을 때 이들의 월수입은 70엔~80엔 내외로 보여진다.

자발적으로 도항했던 소화 9년도 조선인 노동자들 중 월 50엔 이상의 수입을 올리는 자는 전체 조선인의 0.07% 밖에 안되었던 점을 감안하면, 강제연행(?)을 당했기 때문에 특별히 노예같은 삶을 살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여기에 대한 우리의 대답은 무엇이라 해야 맞을까? 시대별 비교가 아닌, 일본인 노동자들과의 임금수준을 비교해도 문제다.

당시 조선인 근로자는 일본인 임금의 2/3 정도에 불과했다고 한다. 그러면서 학자들은 민족차별의 증거라고 단언한다. 생각해보자. 조선에서 근로자를 모집하여(또는 관알선이든 간에) 일본의 사업장으로 이송한 후, 연수까지 다 시키고 현업에 배치하기까지 그 기업이 들어간 돈이 얼마일까?

당시 석탄통제회의 계산에 따르면, 징용에 대한 제 비용을 관납(官納)하는데 100엔, 부산이나 여수 등지에서 탄광소재지까지 여비 30엔, 숙박료 및 식비 10엔, 입산(入山) 당시 준비비 70엔, 기초훈련기간 중의 임금 50엔, 후생시설비 20엔, 기타 20엔 합계 300엔이 들어간다. 여기에 도주자가 발생하면 추가로 270엔의 비용이 또 소요된다고 한다.

거기다, 언어가 통하지 않아 작업능률이나 생산성이 일본인의 60%밖에 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조선인 근로자가 지급받는 임금이 일본인에 비해 차별일까? 나는 결코 아니라고 본다.

조선인 근로자는 우리가 학교에서 배우고 책에서 읽은 정도의 혹독한 노예같은 삶을 살지도 않았다. 그들은 당당히 태업과 스트라이크 등으로 일본인 사용자와 정부에 맞섰고, 협화회에 자신들의 요구사항을 건의할 정도의 정치적 능력이 있었다. 일본 당국은 사업장 내에서 임의의 사형(私刑)이나 체벌을 단속토록 했고, 민족적 감정으로 조선인들과 마찰이 생기지 않도록 일본인 근로자들의 언행을 유념시켰다.

또한 사업장 별로 임금과 근로조건이 천차만별인 점을 감안 공정임금제를 준수토록하고, 휴일수당 등을 지급하도록 사업주에게 권려토록 했다는 공문서도 보인다. 이것이 실제적으로 지켜졌느냐 아니냐는 별개의 문제이며, 아무 근거도 없이 일본이 특별히 조선인 근로자만을 착취하고 노동력을 수탈한 것처럼 넘겨짚어서는 곤란하다고 본다.

일제시대를 공부하면서 수탈과 압제가 전부인 것처럼, 또 그게 정의이고 민족적 감정에 부응하는 것처럼 역사를 공부하는 것이 옳은 일일까 고민해 봐야한다. 비록 타자에 의해 근대성이 이식되었다 하더라도 이를 수치스럽게 느낄 필요는 없다. 포스트 식민주의와 주변부 이론이 세계적으로 관심을 받아가고 있을 때 아직도 우리는 근대가 없는 역사적 단절을 당연시 하며 살아가고 있다.

Posted by 眞明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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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ArchDuke 2010.08.16 15:5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의문이 있는데, 왜 1년내에 거의 90%나 되는 인원이 도주했는가에 대한 원인이 제시되어 있지 않고 넘어간 것 같습니다. 그리고 중간에 도주했다더라도 국가가 강제적으로 그만큼 인원을 끌고간 것 자체가 문제의 여지가 되지 않을지에 대한 의문도 있습니다.
    그리고 위에서 말씀 하신 분이 있다 시피, 위에서 삥땅치거나 실제로는 지급이 안된 사례가 있으며 그 경우에 현재 진행된 소송이 있다고 합니다.(http://news.hankooki.com/lpage/society/201006/h2010061722233621950.htm)
    그렇다면 대부분이 고임금을 받았다고 단정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가 문제가 됩니다.

    여튼 가장 큰 의문이. 그렇게 대우가 좋았다면 도착한 인원마저도 왜 대부분이 도주했을까요. 그것에 대한 답변 부탁드리겠습니다.

    • 백범 2010.08.16 15:59  댓글주소  수정/삭제

      그럼 자기가 좋아서 가거나, 먹고 살려고 자원해서 간 사람들도 '끌려간' 사람들이고 일방적 피해자들이란 말인지??? 현하의 역사교육은 그렇게 다 뭉뜽그리려고 하고, 또 그렇게 해야 된다 라고 세뇌 내지는 강요를 하는군요.

  3. 少雪緣 2010.08.16 16:4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개인적으로는 어떤 형태로 징용되어갔든 노동의 강도가 높아져 갔고 대우는 열악해 질 수 밖에 없었을것이라 생각합니다. 일제의 패망이 다가옴에 따라 고용주들이 원활한 고용 사이클을 유지 할 수 있었으리라 생각하기는 어렵습니다. 조선인 노동자들이 징집되어간 기간 및 그에 따른 인식의 변화는 연속적으로 면밀히 파악할 필요가 있으며 도입부나 결과물, 단편만을 가지고 전체를 파악하려는 시도는 위험하다고 봅니다.

  4. 에드워디안 2010.08.16 17:0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민족주의적 사관에서 벗어나 일제시대에 대한 객관적 평가도 시도해야 할텐데, 이것을 '친일파' 운운하며 트집 잡는 인간들을 보면 한심할 따름입니다...

    • 백범 2010.08.16 17:19  댓글주소  수정/삭제

      이건 원 객관적 평가조차 친일파로 싸잡아 욕해버리니, 그리고 그런 교육이 강요되어 오다 보니 누구도 쉽게 재조명할 엄두 조차 못내고 있는 현실이지요.

  5. 맥아더 2010.08.16 17:1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http://lamit85.egloos.com/5333948#5333948_1

    위에 타고 가서 보세요.

    제3의사나이는 증언집을 사악하게 편집해서 왜곡시킨 겁니다. (무명씨 글 따지는건 아니고, 댓글에서 언급되어서)

    강제 징용이 맞고 열악한 대우를 받은건 사실입니다.

    • 제3의사나이 2010.08.16 17:56  댓글주소  수정/삭제

      어이가 없네요 ㅎㅎㅎ
      트집을 이런식으로 잡나요? 제가 쓴 글 제대로 읽어봤나요?
      제가 그 증언들 제시하기 전에 뭐라고 했는데요?



      "다음은 증언집에 나온 여러사람의 증언중
      내가 '의외라고 생각한 부분' 혹은 '놀란 부분'을 모아놓은 것이다."



      '의외라고 생각한 부분' 과 '놀란부분'을 모아놓은 거라고 분명히 밝혔는데
      지금와서 '자기 편한 부분만 편집했다??'

      힘들고 고생하고 배고프고 그런건 우리가 흔히 상상하는 모습아닌가요?
      저도 그렇게 배웠고...그렇게 생각했구요...
      하지만 그런 모습들이 아닌 의외의 모습들이 있어서
      그런 부분을 모아놓았다고 '분명히' 밝혔는데

      "왜 그런 부분만 모아놓았느냐!" 라니요??

      왜 제가 미리 밝힌 부분은 교묘히 빼면서 비난을 합니까? ㅎㅎㅎ

    • 마법시대 2010.08.16 21:20  댓글주소  수정/삭제

      웃긴건 그 포스팅이 징용은 강제가 아니었다는 어떤 사람의 증언에 대해 포스팅 하고 난후, 다른 증언들도 보니 별반 다르지 않더라... 라는 식의 보충 포스팅이었는데, 정작 그 증언들에는 강제징용에 대한 이야기들이 포함되어 있었다는거죠.
      그런데 그런 부분은 쏙 빼놓고 올린다음 다음 그걸 놀란부분이라고 한겁니다. ㅎㅎ

      강제 징용 아니었네 식으로 말해놓고는 정작 강제징용 당한 할아버지가 증언한 내용에서 강제징용 부분은 쏙 빼놓은 다음 노름한 얘기만 올려놓고 마치 노름한 사람들이 큰 죄라도 지은냥 주석을 달아놓은걸 보니 기도 안차더라구요.
      그런데 강제징용 당한 할아버지의 증언 중 어느부분이 <강제징용 아니었다는 증언과 별다를바 없네> 가 되는걸까요?

    • 마법시대 2010.08.16 21:25  댓글주소  수정/삭제

      "그런데 나는 내가 썼던 포스팅의 '증언'(강제징용이 아니었다는 내용)과 그리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느꼈다."

      라면서 올린 내용중 하나가 이건데
      http://pds20.egloos.com/pds/201008/14/20/c0045420_4c66833cd6975.jpg


      정작 그 할아버지는...
      http://pds20.egloos.com/pds/201008/14/20/c0045420_4c6683478f31f.png

    • 제3의사나이 2010.08.16 21:27  댓글주소  수정/삭제

      쯧쯧...
      '삼성 라이온즈 주요득점 장면' 이라는 타이틀로 방송한거 보고
      "왜 실점 장면은 쏙 빼놨느냐!" 라고 할 분일세...

    • 마법시대 2010.08.16 21:37  댓글주소  수정/삭제

      잉여팀 2점 : 잘난팀 10점으로 끝난 경기에서 잉여팀 2점 득점장면만 보여주고
      "이것이 우리가 꼴찌라고 놀리던 팀의 모습이라고 상상할 수 있는가?" 라고 하는 꼴. ㅋㅋ

    • 제3의사나이 2010.08.16 22:46  댓글주소  수정/삭제

      말이 되는 예를 좀 들던지 ㅎㅎㅎ

    • 마법시대 2010.08.16 23:09  댓글주소  수정/삭제

      내가 할말을 대신해주네.
      '삼성 라이온즈 주요득점 장면'은 말이 되고? ㅋㅋㅋ

    • 통탄 2011.03.14 08:11  댓글주소  수정/삭제

      북해도 강제징용 증언자료집이라...

      출처확인도 없는 자료를 어떻게 사실근거한 자료라 인정할 수 있나? 또한 편집자의 입장/관점에 유리한 부분만 부분인용해서 전체의 요점과 관점을 완전 와해조작할 수 있는 점을 이용한 친일파 혹은 일본인 후예의 소행으로 밖에 안보인다.

      만약 일제가 한국인의 인권과 노동력의 가치를 보호/인정해줬다면, 스스로를 옹호/변론할 수 있는 이익이 될 수 있는 관련자료를 파기할 하등의 이유가 없다. If so, 일본정부는 머리가 비었다 라고밖엔 해명안될듯.

      원글또한 원글님의 주장을 뒷받침할 만한 문서를 제시해야 설득력이 있을듯. 요즘 사람들 바보 아닙니다. 아무리 역사왜곡, 일제강점시기 미화하려 노력해도, 일제시대를 겪은 사람들의 증언은 역사를 통해 살아있다는 것을 기억하셔야죠. 일본에 불리한 모든 자료들이 파기/비밀보관되고, 생존한 증언자들의 증언 파급효과가 시간이 갈수록 흐지부지하게 된다 한들 What happened just doesn't go away. Even the memories of our ancestors from their experiences remain in our vein and DNA.

      익명성, 접근성, 파급성을 이용한 인터넷 propaganda에 속지 않으려면 우리 스스로를 바로 잡힌 인생관, 세계관, 지식으로 항상 재정비하고 거듭나야 한다. 50년 전의 일제강점시기의 모든 끔찍한 비인간적 만행들에 대해 여전히 해명/사죄/보상이 이루어지지 않은 연고로, 이렇게 죄없는 (?) 후손들이 서로 싸우고 있는 현실이 통탄스럽다. 선조의 허물과 잘못을 솔직히 시인하고 용감히 바로잡을 수 있는 일본의 양심을 주님께 기도드린다. 우리가 바로잡힌 역사의식/사회의식/문제의식을 위해 노력할 때 우리는 죄없는 후손으로서의 사명을 다하는 것이다.

      그리고, 현재 일본 동북지방의 쓰나미로 인해 겪고 있을 민간인들의 쓰디쓴 고통에 마음이 아프고, 진심으로 유감을 표하며, 그들의 빠른 정신적/영적/육적 회복을 위해 하나님께 기도드린다.

  6. sulzip 2010.08.16 18:1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1941년이면 총독부가 조선어사용을 금지한지가 31년이 지난 시점인데 강제징용 노동자의 나이를 몇으로 잡고 계시기에 말이 통하지 않아 작업능률이 낮았다 하시는지 궁금합니다

    • 킹오파 2010.08.16 19:37  댓글주소  수정/삭제

      조선어 사용 금지는 1930년대 후반인걸로 아는데요? 바로 조선어 사용 금지를 한것은 아님..

    • Montcalm 2010.08.16 19:38  댓글주소  수정/삭제

      기본적인 펙트부터 안드로메다인데 .. 무슨 주장을 ..;31년이라니 ? ...

    • 에드워디안 2010.08.16 20:11  댓글주소  수정/삭제

      한일합방 시부터 조선어 사용을 금지했다? 무슨 책을 읽으셨는지...?

    • 海凡申九™ 2010.08.16 20:12  댓글주소  수정/삭제

      조선병합 -1910
      조선어의 연구 및 조선어 사용을 금지 -1938

    • 나츠메 2010.08.16 21:42  댓글주소  수정/삭제

      무뇌충 조센징 납시오~~

    • 백범 2010.08.16 23:55  댓글주소  수정/삭제

      빨리 잡아도 1936년인데 무슨 31년이시오?

      일제도 초반에는 문화통치라고 해서, 1930년대 중반까지는 조선인민들을 그렇게 혹독하게 다루지는 않았습니다.

    • 통탄 2011.03.14 07:16  댓글주소  수정/삭제

      조선어 사용금지는 언제인지 확실히는 모르지만, 모든 한국어 사용을 (말, 교과서, 책) 전면 금지한것은 30년대 후반이 맞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1910년 한일합병 이전부터 학교 시스템을 단축 폐지한데다(1908), 한일합병 이후로 일본어 수업 의무화 주당 10시간 -> 주당 64시간 (1922), 학교, 공공장소에서의 한국말 사용 엄금 (외할머니 증언-순사들이 거리 곳곳에서 감시했다고 함.)과 같은 reality만 보더라도, 일본어습득 불가상황이 전혀 아니었음. 그렇기에, 일본어능력 저하로 작업능률/생산력이 떨어졌단건 어불성설.

      또한 높은 지적능력을 요하는 job들이 아니고 단순노동들이었을텐데 언어가 얼마나 큰 장애요인이라는 건지 원. 그럼 현대에도 있는 각국의 이주 노동자들은 어떻게 일들 하신다는 건지 원. 암튼, 근거도 없는 오류 투성이 원글땜에 어린 양들이 시간낭비 에너지 낭비 골고루입니다.

      다만 이런 류의 글들은, 우리로 하여금 다시한번 역사인식을 되짚어보고 고찰하게 하며, 진실을 탐구하려는 노력과 현실을 직시할 수 있는 안목을 길러준다는 데에 의의가 있다, 아이러니 하게도. 고마우이.

  7. asianote 2010.08.16 18:4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무명씨 님께 개인적으로 질문하고 싶은게 있는데 관동대지진때 조선인 학살사건에 대해 어찌 생각하는지 묻고 싶습니다. 그리고 진정으로 일본인이 되고 싶었는데 되지 못하고 천황폐하께 테러를 한 이봉창 의사에 대해서 어찌 생각하시는지 궁금하군요.

    • 海凡申九™ 2010.08.16 20:14  댓글주소  수정/삭제

      일본국왕에게 천황폐하라고 하는 저의가 뭡니까?
      일본인이십니까?

    • asianote 2010.08.16 20:41  댓글주소  수정/삭제

      해범신구 // 님의 말씀이 많네요. 텐노헤이카면 텐노헤이카고 일본국왕이면 일본국왕으로 칭해야지, 어찌 천황폐하라는 되먹지 못한 표현을 썼네요. 너그럽게 용서하시길.

    • 海凡申九™ 2010.08.16 20:55  댓글주소  수정/삭제

      텐노헤이카도 뭐하니깐 그냥 일본국왕한테 투척했다고 하세요

    • 공손연 2010.08.16 20:55  댓글주소  수정/삭제

      asianote님께 개인적으로 질문하고 싶은게 있는데 만보산사건때 조선내 중국인 학살사건에 대해 어찌 생각하는지 묻고 싶습니다.

      왜 관동대지진 조선인 학살사건같은 건수를 가지고 위안부사건마냥 한국에서 물고 늘어지지 않는 이유를 이제 아시겠습니까?

    • asianote 2010.08.16 21:43  댓글주소  수정/삭제

      해범신구 // 님 말씀대로 일본국왕에게 투척했습니다.

      공손연 // 제가 말씀드릴 수 있는 점은 식민지의 피해자라고 할 수 있는 조선 사람들이라고 해서 착한 일만 한 것은 아니었다는 것 정도입니다. 뭐 님 말씀대로 만보산 사건 때 조선 사람들이 무고한 중국인은 해친 것도 분명한 사실이고요. 이 이상은 제가 말씀드릴 수 없네요. 제 능력 밖이라서요. 어쨌든 공손연 님 덕분에 여러 사건에 대해 생각할 수 있었네요. 그 부분에 대해서는 감사드립니다.

    • 공손연 2010.08.16 22:02  댓글주소  수정/삭제

      문제는 asianote님처럼 생각하지 않고 자신들이 그다지 착하지 않다는 것을 모르거나 아예 그런것은 생각안하고 자기한테 유리한것 불리한것만 생각하고 대응하는 사람들이 남을 비방하고 업신여기는데 윤리,도덕적인 관점을 이용한다는데에 있습니다. 저도 asianote님의 친절하고 솔직한 응대에 감사드립니다.

    • 백범 2010.08.16 23:56  댓글주소  수정/삭제

      왜왕에게 따끔한 눈깔사탕 선물한거 하나 갖고 되게 심각하게 떠드네... 거참...

    • 통탄 2011.03.14 07:38  댓글주소  수정/삭제

      짜고치는 고스톱

  8. 공손연 2010.08.16 21:0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리고 그 시절의 국제적으로나 국내적으로나 사회수준을 보고서도 어떻게 식민지의 2등국민밖에 안되는 조선인들이 일본인하고 전부다 똑같이 대우를 받아야 정상이라고 생각하는지 모르겠습니다.

    그게 좋다고 긍정할수는 없더라도 민족차별운운하며 들이댈문제인지 순수학문적인 사고로 접근할 사고력조차 없는건지......

    도의적인 것하고 현실적인 것하고 구분도 못하는 작자들이 학자랍시고 교편을 잡고 대학생을 가르치니 대학생들이 가슴만이 아니라 머리까지 뜨거워지는 것도 무리가 아닙니다

    • 無碍子 2010.08.16 21:56  댓글주소  수정/삭제

      조선인 로동자와 일본인 로동자의 대우에서 차별은 합당하지 않다고 봅니다.

      현하 우리나라에 와 있는 외국인 로동자들 대부분이 대한민국 최저임금 보다 더 많은 임금을 받고있습니다.
      민족차별보다는 생산성의 차이라는 관점으로 볼 수는 없겠는지요?

    • 공손연 2010.08.16 22:06  댓글주소  수정/삭제

      합당하냐 아니냐의 문제가 아니라 보편적인 차원에서의 현실성입니다. 미국,영국,프랑스,독일,네덜란드 등등 세계 어느나라를 가도 본국인과 식민지인들의 차별이 만연한데 일본한테 그 책임을 물을게 무엇입니까? 합당치 않더라도 일본을 지칭하고 지적할 이유나 가치는 전혀 없습니다.

      그리고 외국인노동자가 한국인과 같은 직종의 같은수준의 노동을 하면서 똑같이 받나요? 그것도 아니라면 지적하신바가 무슨 의미인지 알수가 없네요.

    • 無碍子 2010.08.16 22:58  댓글주소  수정/삭제

      직접 급여 명세서를 보지는 않았지만 신뢰할 수 있는 사람으로부터 안산공단이나 시화공단에는 한국인보다 더 많은 급여를 받는 외국인 노동자가 많다고 들었습니다.

    • 海凡申九™ 2010.08.16 23:10  댓글주소  수정/삭제

      음... 개인적인 의견에 불과하지만 몇 마디 뻘소리를 해보자면
      2등국민 얘기는 좀 그런 것 같고 단순히 생산성으로도 조금 뭐한 듯...

      뭐, 심정적인 의견에 불과한 뻘소리라고 봐도 좋음

    • 백범 2010.08.16 23:56  댓글주소  수정/삭제

    • 킹오파 2010.08.17 00:16  댓글주소  수정/삭제

      한국인보다 외국인 노동자를 더 준다?

      두가지로 볼수 있음.

      1. 한국인이 안 들어오려 해서 한국인이 거의 없고 남아있는 한국인도 생산성이 없을때

      2. 외국인 노동자가 한국인보다 일 잘하거나...

      어느 기업가가 정줄 나가서 언어 이해 능력 떨어지는 외국인 노동자를 한국인보다 더 주고 싶겠습니까?

      한국인 이상으로 주는 건 이유가 있어서 주는 거지효.

  9. 백범 2010.08.17 14:3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댓글보니 참 이해안되는 화상바가지들 참 많다. 나혼자 잘먹고 잘살려고 외국으로 떠난 사람들도 강제징용의 피해자들인지???

    있는 그대로 말하는 것... 분명 나혼자 잘먹고 잘살려고 외국으로 떠난 그런 사람들도 존재했다 라는 '사실'을 말하는게 그렇게도 죽일 죄인지???

  10. 2010.08.17 17:5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11. 주코프 2010.08.17 18:3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경상도 촌구석의 9형제의 맏이로 태어난 '신격호'란 인물을 떠올릴 필요가 있지 않을까 합니다..

    빈곤한 소작농 집안에서 '농사나 지어서 형제들 책임져라'는 부모의 말에 반발, 단신 도일해서 일본인 경영 두부공장에서 열심히 배달해 일명 '신격호 두부'라는 신조어까지 만들며, 일본인에게 신뢰를 받습니다..

    이후 두부공장의 경영권을 인수하고, 그 자본으로 태평양 전쟁시기에는 '군납유류품'제조업회사'의 사장에 올라 자본을 키웠다가 미군폭격으로 손해를 보지요..

    전후에는 귀국하지 않고, 일본에 잔류 한국전쟁시기 미군에 "과자, 껌"등을 납품하다 신뢰를 얻고, 그 연줄로 현재의 코리아타운으로 알려진 도쿄의 '신오오쿠보'에 굴지의 '껌공장'(현재도 신오오쿠보 경제의 40프로를 담당하고 있습니다)을 세워 승승장구한 인물...

    바로 현 롯데그룹의 회장 '신격호'(윤봉길 의사의 폭탄테러로 다리를 잃고, 미주리호 함상에서 항복문서에 조인했던 외무장관 시게미츠의 손녀딸과 결혼, '시게미츠'로 창씨개명)의 일정시기의 간략한 행적입니다..

    기존의 '국수주의 반일사관'에 따르면, 위의 '신격호'도 "강제징용자"의 분류에 들어가게 됩니다..

    하지만, 실증적으로 해방전의 그의 행적을 보면 사실 'B,C급 전범'에 가깝습니다..

    이런 경우가 재일교포 1세대 사회에서 비일비재했고, 그러한 1차사료들은 전혀 무시된 채 오로지 일정기의 일본인-가해자, 조선인-무조건 피해자의 사관으로 당시의 시대를 일도양단한는 것은 무리가 있지 않나 싶습니다..

    • 진빠 2013.12.08 18:03  댓글주소  수정/삭제

      정말 타당한 말씀입니다.
      역사인식을 어거지로 하는 인간들은 지적역량을 떠나서 일단 세상물정에 어두워 보입니다.

  12. 주코프 2010.08.17 18:5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요컨대, 조선인들은 왜 일본에 갔는가가 이 글의 주제라고 할 수 있겠지요..

    솔직한 말로, 상당히 많은 부분은(거의 대부분) "경제적 이유"로 이주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가족을 놔두고 전쟁시 동원되서 가는 경우에는 "자발적으로 돌아오"는 경우도 많았고, 유학생의 경우 징병을 피하기 위해 '병가'를 내고 고향으로 와서 잠적해도 거의 제재를 받지 않았습니다..(대표적인 경우가 와세다 대학 출신이자 전후 이병도의 맥을 잇는 민족주의 사학자 '이기백'씨입니다..)

    물론 아주 일부의 경우는 당시 깡패소탕 차원에서 만들어진 '보국대(단장이 바로 '김두한'이었습니다)'의 선전에 속아 가족을 조선에 놔두고 징용되는 경우도 있습니다만, 상당수가 전쟁전에 이미 "경제적 목적"으로 가서 전쟁후 귀환하거나, 귀환이 여의치 않을 경우에는- 그 나쁜 일본놈들이 못가게 한게 아니라- 조선에 돌아가도 뚜렷한 경제적 비전이 없어서 남은 경우가 많습니다..(이것은 제가 직접 일본에 거주하며 재일교포 1세대들을 만나서 증언을 들을 때마다 나왔던 이야기입니다..)

    또다른 경우는 한국전쟁시기 및 그 이전의 4.3이나 기타 여러가지 이유로 인해서 해방후, 남한 정권과의 문제가 발생해서 밀항 비슷하게 간 분들도 있습니다-그 중 대부분이 조총련에 투신합니다. 그리고 제주도 출신들중에 이런 케이스가 특히 많습니다- 고쿠라 형무소에 불법밀항자로 투옥되었다가 풀려나 재일교포가 된 케이스이지요..(주로 3세대들은 귀화해서 의사등 전문직종에 종사하고 있으나, 출신학교는 이른바 북조운영의 민족학교가 대부분입니다..)

    아니면 이승만 정권때 정치적 탄압을 피해 자기말로는 "풍운의 뜻을 안고 (당시 비수교국)일본으로 (국가의 허가 없이) "유학"을 가신분들이나 그 가족분들도 있습니다.(대표적인 경우가 보도연맹의 창시자이자 반공검사 '선우종원'씨)

    그런데 그렇게 된다면 절대 좋게 안보니까 대부분의 대중매체에서는 "강제로 일본놈들에게 끌려가서" "일본놈이 못가게 해서 못온" 타입으로 왜곡한 부분 또한 많고, 이러한 것들이 지금까지 징용-징병 문제에 대한 '실증적 접근'에 장애요소로 작용하고 있다고 여겨집니다..

    • 통탄 2011.03.14 08:02  댓글주소  수정/삭제

      일반화의 오류를 지적하시는군요. 허나, 스스로도 일반화의 오류에 적용당하시는 셈이라는 거 기억하시길.

      (자발적 도일이 있었는데 왜 다 싸잡아서 강제징용이라 하냐 vs 강제징용이 역사적 명명백백한 사실인데 왜 "상당히 많은 부분 (거의 대부분)"을 거론하며 싸잡아 자발적 도일로 처리하냐)

      별 칭찬 못듣는 동아일보에서 조차도 이런 류의 기사가 나왔었네요. http://news.donga.com/Series/List_70070000000886/3/70070000000886/20100731/30230224/1

      *아래는 위 링크의 일부내용

      일제강점기 당시 조선인 노동자들이 강제징용된 게 아니라 일자리를 찾아 자발적으로 일본에 건너왔다는 이른바 ‘자발적 도일(渡日)설’에 대해선 격한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그는 “일제 당시 조선총독부는 토지조사 명목으로 토지를 모두 수탈해 농민들이 일자리를 구하기 위해 일본으로 올 수밖에 없었다”며 “사실상 일제가 강제징용으로 내몬 것을 자발적인 구직활동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당시 상황을 모르고 하는 무책임한 말”이라며 분개했다.

      인터뷰를 하는 동안 커피숍 주변에 앉은 일본 사람들이 힐끗힐끗 쳐다봤지만 그는 거침이 없었다. 일제의 만행을 이야기를 할 때는 목소리가 더 커졌다. 재일교포에 대한 무시가 만연한 일본 사회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그가 나름대로 체득한 삶의 방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씨와 아버지 이정호 씨(사망)는 ‘일본이 지우고 싶어 하는 부끄러운 역사를 일본 땅 안에 영원히 남겨야 한다’는 생각에 1989년 교토에서 동북쪽으로 50km 떨어진 게이호쿠(京北) 지역에 단바망간기념관을 설립했다. 이곳은 망간 텅스텐 등 각종 광물이 묻혀있는 광산지역으로, 일제강점기 당시 강제로 끌려온 조선 노동자 2000여 명이 저임금과 고된 노동에 시달린 곳이다. 이 씨의 아버지 역시 이곳에서 일가를 이루고 평생을 보냈다. 이 관장은 지난해 5월 재정난을 이기지 못해 폐관했다가 한일 시민단체들과 함께 ‘재건추진위원회’를 만들고 모금활동을 벌이면서 내년 4월 재개관을 추진하고 있다.
      ===
      당시 조선 전체인구 대비 몇퍼센트에도 못미쳤을 "강제가 아니라 자발이었다"란 주장은 근거박약입니다요. 지금껏 일본 정부에 의해 깔끔히 인정되거나 해명되지 못한 일제 강점기의 인권 탄압/유린 그 자체를 문제삼는겁니다요 우리는 지금.

  13. 주코프 2010.08.17 19:1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덧붙여, 36년을 사실상 자신을 일본인으로 알고 살아왔던(리영희나 임종국의 말을 빌리자면) 이른바 '해방공간'의 '민중'이란 존재들이 얼마나 현재와 같은 친일-반일구도로 현실을 인식했는지 솔직히 회의적입니다..

    59년도 북송사업때 일본인 첩의 자식들을 반납치 비슷하게 데리고 떠나버린 아버지를 모델로 한 재일 작가 '양석일'의 '피와뼈'에 이런 구절이 나옵니다..

    "...'미군은 조선에서 나가라!!, 매국노 이승만 일파에게 죽음을!!, 백두산 호랑이 김일성 장군 만세!!'

    ..일본어와 어눌한 조선어가 뒤섞인 이 선전구호가 거리를 울리자, 거리에서 구경하던 자들 중에 심심풀이 비슷하게 데모에 참가하는 이도 있었다. 김준평은 자전거를 멈추고 처음 보는 데모대를 신기한듯 구경하고 있었다..

    조선이 남북으로 분단되어 전쟁이 발발한 것은 알고 있었다. 그러나 무엇이 원인으로 분단, 전쟁이 일어났는지는 몰랐다. 김준평에게 있어서 애당초 국가나 조국이란 개념 따위는 없었다. 고향인 제주도에 대한 추억은 있지만, 고향과 국가-조국이란 것은 완전히 다른 개념이었다.

    조선이라하면, 옛날 부산을 비롯해 서울, 대전, 대구 각지를 떠돌며 멸시받고 차별당하며, 직업도 구하기 불가능해 고생했던 기억만 있었다. 제주방언을 말하면 비웃음받고 어떤 자는 "똥돼지 울음소리"를 내보라고 했다....

    물론 그때마다 김준평은 물러서지 않고 치고받는 싸움을 반복했다..

    그런 의미에서 김준평의 완력을 강인하게 단련시켜준 것은 바로 그 '조국'의 '그놈들'이었는지도 모른다.."

    ----> 과연 이 소설 속의 주인공 김준평이 예외적인 케이스일까요? 상당수의 재일1세, 2세, 그리고 우리나라의 시골에 거주하시는 어르신들의 8.15회고를 직접 들은 경험으로는 대개 별반 다르지 않은 것이 당신 일반 민중의 한계이자 현실아니었는가 여겨집니다..

  14. 2010.08.17 19:3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15. 미루엘 2010.08.19 01:2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자발적으로 일본에 간 사람들을 '징용'에 포함하지 말자는 논의 자체의 유의미성은 인정합니다만,

    조선인 노동자의 처우 및 권리에 대한 주장은 '실증적 접근'을 위한 '실증적 근거'가 부족해 보이며 동의하기가 힘드네요. "일본 당국은 사업장 내에서 임의의 사형(私刑)이나 체벌을 단속"..는 반대로, 실제로 그런 사실이 발생했고, 당국이 나서야할 정도로 만연 했다.는 근거가 될 수도 있습니다.

    더구나, 읽기에 따라서는 "자발적으로 일본으로 간 사람들은 모두 정당한 처우와 대접을 받았다"는 본 논의의 비판대상인 '비실증적 접근'을 유도합니다.

    • 無名氏 2010.08.19 09:59  댓글주소  수정/삭제

      1. 임금이나 대우면에서 일본인 노동자들과 큰 차이가 없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을 뿐입니다.

      2. "일본 당국은 사업장 내에서 임의의 사형(私刑)이나 체벌을 단속" 문건은 조선인 노동자들의 스트라이크와 태업에 따른 일본 정부의 조치입니다. 부당한 대우에 정치적 행동이 가능했다는 것은 두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하나는 일본정부가 공식적으로 이를 용인하지 않았다는 것이며, 두번째로는 우리가 마냥 노예같은 굴종적인 근로환경에서 일하지도 않았다는 뜻입니다.

      3. 일본 본토에 소재하고 있던 탄광들은 지역별로 근로환경과 임금수준, 복지가 천차만별입니다. 부당한 대우가 없을 수는 없겠지만, 이를 전체적인 민족문제로 단정짓는 것이야 말로 근거가 없는 논리의 비약입니다.

      4. 근거가 부족하네 마네 하는 것은 애초에 선입견을 가지고 문제를 접근했기 때문이라고 보여집니다. 이런 지적은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예컨대, 이 글의 주장에 대해 근거가 부족하다고 생각되시면, 그에 대한 반론자료를 제시하시면 될 일입니다. 본인이 동의하고 말고는 다른 차원이며, 지엽적인 시빗거리에 불과하다고 보입니다.(실증성의 차원에서 반박하려면 당연한 것이죠)

      노예같이 혹독한 착취를 받았다고 주장하는 쪽의 주장이야말로 비실증적이고 근거부족이라는 취지에서 이 포스팅이 쓰여진 것이니까요.

    • 미루엘 2010.08.19 10:15  댓글주소  수정/삭제

      선입견 없습니다. 노예같이 혹독한 착취를 받았다고 주장하고자 함이 아닙니다. 임금이나 대우면에서 큰차이가 없었다는 점에 대한 지적도 아닙니다. 그리고, 마냥 노예같은 굴종적인 근로환경에서 일했다는 것을 말하고자 함도 아닙니다.

      하지만, 그런 상황이 전혀 없었다고도 말할 수 없습니다.

      실제로, 예로드신 것은 정치적 행동이 가능했다는 것 만을 증거하지,
      "사형(私刑)이나 체벌을 단속"이 전혀 없었다를 증거하지는 않습니다.
      반대로 "사형(私刑)이나 체벌을 단속"이 있었다 하더라도 모든 조선인들이 노예같은 굴종적인 근로환경이었다고 말할수도 없습니다.

      하지만, "모든 조선인 노동자가 정치적 행동을 할 수 있고 정당한 대우를 받고 있는 상황이었다"고 단정하듯 말씀하고 계시고, 천차만별이지만 전체적으로 양호했다, 민족 전체가 왜곡하고 있다고 주장하시고 있습니다. 그 점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 無名氏 2010.08.19 10:35  댓글주소  수정/삭제

      저는 "전혀" 없었다고 주장한 적 없는데요?

      그리고 "모든"이라고 한 적도 없고 "전체"라고 한 적도 없습니다.

      "일부"가 있었다고 "모두" 그런 대우를 받았다고 주장하는 것이 타당하냐는게 제 취지입니다.

      본문에도 그렇게 써져있지 않습니까?

    • 미루엘 2010.08.19 10:40  댓글주소  수정/삭제

      '"일부"가 있었다고 "전체"가 그런 대우를 받았다는게 타당하냐'는 취지가,

      '"일부" 있었지만, "전혀" 그런대우를 받은 적이 없다'로 보인다는게 문제죠.

      그래서, "읽기에 따라서는 '비실증적 접근'을 유도한다"고 했던 것이고, '실증적 근거'를 보강해달라는 요청이 첫 리플이었습니다만...

    • 無名氏 2010.08.19 10:45  댓글주소  수정/삭제

      그거야 반론의 입장에서는 당연한 것이죠.
      제가 상대방의 논리까지 입증할 필요는 없지 않나요?

      상대방의 비실증적, 감정적, 정서적 문제접근에 대한 반론일 뿐이죠.
      지금과 같은 국사교과서의 기술방식으로는 왜곡된 지식을 배울 수 밖에 없는 구조라는 겁니다.

      물론, 이곳은 논문을 작성하는 곳이 아니니 논거가 성에 차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만..
      자신은 아무 증거도 못내놓으면서 못믿겠다는 식으로 말씀하시는 것은 곤란하다고 보입니다.

      본 편은 서론적인 접근일 뿐이고.. 틈나는대로 자료는 계속 보강하는 포스팅을 올릴 예정입니다만..
      역시 수꼴새끼들은 친일파 라는 선입견 때문에 아무 의미가 없을 것이라 보여집니다.
      무슨 자료를 보여줘도 못믿는 분들이 태반일테니까요.

    • 無名氏 2010.08.19 10:50  댓글주소  수정/삭제

      게다가 님의 포스팅을 지금 읽어봤는데,

      제 글의 논지를 전혀 이해못하고 계십니다.

      이 글은 강제징용이 있었다. 없었다.를 논하는 글도 아니고
      일본 당국의 죄가 있냐. 없냐의 문제를 논하는 글도 아닙니다.

      마치 기존의 5.18 서술에 대한 의문을 제기했더니
      전두환의 죄가 있냐 없냐로 몰던 분들과 똑같군요.

    • 미루엘 2010.08.19 10:52  댓글주소  수정/삭제

      해당 포스팅의 서두에 이야기 했지만, 논의 자체에 대한 반박이 아닙니다. 본 논의가 미칠 영향에 대한 생각일 뿐입니다. 그럼 이만.

  16. 미루엘 2010.08.19 10:5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물론 논문을 작성하는 곳도 아닌 것 맞습니다. 그렇다고, 상대방의 비실증적, 감정적, 정서적 문제접근에 대한 반론이 역시 비실증적이어서는 설득력이 없겠죠. 차차 자료를 보강하신다니 기다려보겠습니다.

    애초에도 이야기 했듯, 논의 자체의 참신성과 의의는 인정합니다. 하지만, 걱정이 되는 부분도 있어, 따로 벨리에 포스팅했습니다. 무명씨님과의 댓글이 재밌긴 하지만, 여기서의 댓글은 이만하도록 하겠습니다.

  17. 2010.08.31 02:4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18. 어이 2011.02.28 01:3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거기다, 언어가 통하지 않아 작업능률이나 생산성이 일본인의 60%밖에 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조선인 근로자가 지급받는 임금이 일본인에 비해 차별일까? 나는 결코 아니라고 본다.

    -> 그럼 왜 대려다 써서 문제 생기게 만들었나..
    누가 대려다 쓰래?ㅋㅋ 억지임 ㅋㅋ
    자기네가 대려다 써 놓고 능률이 떨어진다? 그래서 임금을 적게 준게 차별이 아니다??
    그럼 안쓰면 되지/

  19. april 2015.08.31 09:2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사실의 일부만을 부각시켜 전체를 호도하는 오류는 범하지 말아야하지 않나요? 중국에서 일본에서 맞아죽고 굶어죽고 병들어 죽어간 넋들이 님의 이야기를 듣는다면 뭐라말할까요 탁상공론이 아닌 진실을 추구하고 그들의 삶을 진지하게 들여다보며 그 고통을 알려하지않고 숫자놀음이나 하고 책에 기록된 내용만가지고 떠드는것이 올바로 역사를 보는 것인지 의문이군요. 숫자가 알려진 것보다 적을 수도 있겠지요 반면 더 많을 수도 있다는 생각은 안하나요 자신이 원하는 자료만 보고 그 자료에 근거해 자신의 생각을 떠드는것 진정을 역사를 공부하고 고민하는 사람의 태도는 아닌것 같군요.

  20. april 2015.08.31 09:3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기록된 것이 지켜졌느냐 아니냐는 중요하지않다면 오직 기록만이 중요하다는 뜻인가보죠 기록이 그렇게 되어있으니 옳다라면 일본이 을사조약 한일병합을 맺은 모든 조약이 강압적인것도 아니 자발적으로 이루어졌다고 보아야 겠군요 기록도 중요하지만 그것이 과연 그랬는지 의심해 보아야하는게 역사를 공부하는 사람의 가장 우선적인 태도라는걸 배운적이 없나보군요

  21. 이라 2016.04.17 21:4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한국군대 강제 징용입니다!! 안가면 감옥가고 탄압받고 월급도 최저생계비에 택도 안됩니다 감옥이 따로 없습니다 거기다 tv에선 미성년자가 학도병이란 그럴듯한 이름으로 싸우다 개죽음 당하는 영화를 보여주고 참 싫습니다 하긴 옛날 6.25때는 월급은 개뿔 싸우다 뒤지지않으면 다행이었고 전후에는 상습 구타 사망 사건도 비일비재했다더군요 군대 강제 징용 배상해야합니다!!!! 일인당 월80만원씩 전부 배상해줘야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