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병옥 박사의 자서전을 읽다가 눈길을 끄는 얘기들이 있어 써볼까 한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조병옥 박사는 독립운동가로 선진당 국회의원 조순형의 부친이다. 대구폭동 사태가 있고 얼마 후, 몇몇 당시 유력 정치가들이 이승만 계열의 핵심인물이었던 조병옥을 찍어내기 위해, 미군정에 이런저런 투서를 했다. 요지는 조병옥이 친일파들을 경찰간부로 등용했기 때문에 민심이반의 결과로 대구폭동이 발생했다는 것이다.

미군정은 이에 직접 조병옥을 불러 청문회 비슷하게 심문을 하였는데 그 자리에는 여운형, 김규식, 안재홍 등이 참석하였다. 하는 일 없이 정치싸움에나 골몰한 이 정객들의 마타질에 격분한 조병옥은 작심하고 여운형, 김규식, 안재홍의 치부를 까발린다.

여운형, 안재홍 이생키들은 일제의 싱가폴 함락때 고이소 총독을 찾아가 충성을 맹세하고 후장을 빨았다지? 김규식 당신 아들은 일제 때 8년동안 스파이였다며? 예상과 달리 조병옥의 맹폭이 이어지자, 망신을 당할대로 당한 이 양반들 중 일부는 슬그머니 일어나 도망가고, 일부는 침묵을 지키는 바람에... 청문회는 유야무야 끝나고 말았다는 일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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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생적으로 기회주의자였던 여운형, 안재홍의 행각이야 그런갑다 하겠지만, 우리가 독립운동가로 알고 있던 김규식의 아들이 상해에서 8년동안 일본 해군의 스파이로 활약했다는 사실은 좀 의외다. 김규식은 세 아들이 있었는데, 전처 조은수와 낳은 첫 아들은 바로 사망하고, 그 둘째인 김진동이 있었고, 후처 김순애와 낳은 김진세가 있었다.

그렇다면 조병옥이 지명한 문제의 인물은 김진동이거나, 김진세일 것이다. 김진세는 김규식이 재혼한 1919년 이후 출생자이므로 1937~1938년도 사이에 스파이로 입문하기에는 연대가 다소 맞지 않다. 결국 김진동으로 초점이 좁혀지는데, 해방전 약력에는 1941년부터 독립운동을 해 온 것으로 나와 있다. 1941년 광복군 제3지대 지하요원, 1944년 임시정부 부주석 김규식의 비서관을 역임하였다고 한다.

솔직히 광복군 지하요원이란 약력에 심히 의심이 간다. 예전에 김희선이란 여자가 저런식으로 자기 아버지를 광복군 지하요원이라고 했다가 나중에 만주에서 독립군을 때려잡던 특무라는 것이 밝혀져 개망신을 당했던 일을 생각해보면, 입증불가한 그 지하요원의 실체는 일단 의심을 하는 것이 맞다.

만약 조병옥의 발언이 사실이라는 가정하에 논의를 진행해보자면, 부모가 모두 독립운동가인데, 정작 그 아들은 민족반역자로 지내다가 일제의 패망무렵에 부친의 임정에 합류하여 경력세탁을 하였다는 추론이 가능하다. 어떻게 이런 가족史가 나올 수 있을까?

여운형은 독립운동가로 추앙받는 반면, 그의 동생 여운홍은 세상이 다 아는 친일파였다는 그런 구조가 김규식이나 윤치영, 장택상이라고 있지 말란 법이 없었을 것이다. 해방 후 친일파 청산이 어려웠던 이유가, 정치적 난맥과 정파갈등에서도 비롯되었지만, 이처럼 가족이나 혈연간의 관계도 복잡하게 얽혀있어, 누구 하나 당당한 사람이 없었다는 것을 방증하는 게 아닐까하고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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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眞明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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