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현.대.사 2012.01.09 00:36
5. 문○○ 할머니의 증언

문○○ 할머니는 1992년 시모노세키 우체국을 상대로「전시 우체국 저금 환불 소송」을 제기해 한동안 화제가 되었던 분이다. 자신이 위안부로 근무했던 부대명, 도중에 머물렀던 여관의 상호이나 지명, 친척집 가게의 주소까지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을만큼 영리하신 분이라 증언 내용도 구체적이고 상당히 드라마틱한 면이 있다.

하지만 실망스럽게도 이 분 역시 증언 내용이 자료마다 가감되거나 상이한 면이 있어 확인이 필요하다. 문할머니는 최초 정신대 피해 신고 당시에는 위안부가 된 경위에 대해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19살때 안면이 있는 남자가 『가기만 하면 일자리도 좋고 돈도 잘 번다』는 말에 속아 42년 7월부터 해방후인 46년4월까지 약 3년6개월여 동안「후미하라 요시코(文原吉子)」라는 이름으로 일본군을 따라 버마·태국 아유타야 등으로 끌려다니며 위안부 생활에 시달렸다는 것이다. (서울신문, 1991-12-07자 참조)"
문할머니가 언급한 "안면이 있는 남자"는 다른 자료를 보면 마쯔모도라 창씨개명을 한 조선인 宋씨로 되어 있다. 그런데 최초의 신고가 있고 나서 1년 뒤 정대협에서 발간한 증언집『강제로 끌려간 조선인 군위안부들』에서는 느닷없이 1940년에 일본헌병에게 강제연행되어 중국 동북부 도안성에서 위안부 생활을 한 얘기가 추가되고 있다. 즉, 이 증언대로라면 문할머니는 1940년, 1942년모두 2차례에 걸쳐 위안부를 경험한 셈이다.

문할머니는 이에 대해 정대협 증언집 말미에 이렇게 해명하고 있다.  1991년 최초 신고 당시에 중국에서 있었던 일은 빼먹었는데, 그때는 부끄러운 일을 모두 다 이야기해야 할지 망설여져서 남방(=버마)에 갔던 일만 이야기 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비숫한 시기에 채록된『<証言>從軍慰安婦-女子勤勞挺身隊 / 伊藤孝司 著 / 1992』에는 중국 도안성에서 위안부 경험이야기는 빠져있다. 인터뷰 시점이 언제인지는 모르겠으나 조금 뒤에 나온『위안부 : 일본 군대의 성노예로 끌려간 여성들 / George Hicks / 1995』에서도 마찬가지다.

1992년 일본 법원에 제소된『태평양전쟁 희생자 보상소송 법정증언』이나『전시 우체국 저금 환불 소송』에서도 중국 도안성에서의 위안부 얘기는 없었다. 오직 정대협을 거치면서 일본헌병에 의한 강제연행 얘기가 추가되고 있을 뿐이다. 그렇다면 일본헌병의 등장이 전체의 증언 시놉시스를 얼마나 변화시키고 있을까?

정대협著 『강제로 끌려간 조선인 군위안부들』에 실린 문할머니의 강제연행 당시의 증언을 본다.
"1940년에 나는 만 열여섯 살이 되었다. 그 해 늦가을쯤의 어느 날 나는 하루코네 집에 가서 놀고 있었다. 해가 뉘엿뉘엿 저물어가자 나는 하루코네 집을 나서 우리집으로 향했다. 얼마 걷지 않아서였다. 일본군복을 입고 기다란 칼을 차고 왼쪽 어깨에 빨간 완장을 한 남자가 내게 다가왔다. 그는 갑자기 내 팔을 끌며 일본말로 무어라고 하였다. 당시는 순사라는 말만 들어도 무서워하던 때라 나는 아무 말도 못하고 그가 끄는 대로 끌려갔다. 그 사람은 한참 팔을 잡고 가다가는 나를 앞세우고 걸어갔다. 간 곳은 헌병대로 생각된다. 거기에는 내 또래의 다른 여자애 한 명이 먼저 와 있었다. ...

다음날 아침이 되자 일본군복을 입은 남자는 우리를 밖으로 데리고 나갔다. 그는 우리를 력전으로 데리고 가서는 평복을 입은 일본인 남자와 조선인 남자에게 넘겨주었다. 우리는 이들과 함께 기차를 탔다. 기차이름은 아카쯔키라고 하였다. 우리는 이것을 타고 이틀 정도를 계속 북쪽으로 갔다. 중간중간에 사람들이 내리면서 안동이나 봉천이라고 했던 것도 기억난다. .... 중국에 와서는 처음에 우리랑 같이 오던 남자는 어디론가 가고 그 후에는 중국말을 하는 남자가 우리와 내내 같이 갔다. .....저녁녘이 되어 우리는 당시 중국 동북부 도안성이라는 곳에 내렸다."
고찰1) 일본헌병은 빨간 완장을 차지 않는다. 흰색 완장이다. 완장의 글씨가 빨간색일 뿐이다.
고찰2) 아카쯔키는 경성(서울)이 종착지다. 그리고 조선에서 도안성까지 가는 열차편은 없다.
고찰3)『버마전선 일본군 위안부 문○○』에서는 일본인 헌병외에 조선인 헌병과 형사 3명에게 연행되고 있음. 갑자기 가해자 숫자가 불어나고 있다. 또한 역전에서 자신을 인수한 사람이 증언에서는 평복을 입은 일본인 남자와 조선인 남자로 되어 있는데, 『버마전선..』에서는 이들이 일본인 헌병과 조선인 형사로 둔갑해 있다.

할머니의 증언 내용이 자료마다 어떻게 달라지고 있는지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註) 출전 서지사항
① 정신대 증언집 :『강제로 끌려간 조선인 군위안부들』,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한울, 1993년
② 버마전선 위안부 :『버마전선 일본군 '위안부' 문○○』, 모리카와 마치코, 아름다운 사람들, 2005년
③ 일본군대의 성노예 :『위안부 : 일본 군대의 성노예로 끌려간 여성들』, George Hicks, 창작과 비평, 1995년
④ <証言>從軍慰安婦 :『종군위안부 : 남북 종군위안부 27인의 증언』, 이토 다카시, 눈빛, 1997년


자료1) 1940년 문할머니가 일본헌병에게 납치되어 헌병대로 이송된 것으로 추정되는 동선  


사용자 삽입 이미지
친구 하루코네 집이 화장터였으므로 납치가 자행된 이곳은 현재 대구광역시 남산4동의 남산초등학교 부근임. 당시는 시내에서 상당히 벗어난 외곽지대였는데 헌병대가 있었던 곳은 지금의 대구지방 병무청 자리이므로 1934년도 大邱府全圖를 참조하면 대략 저런 납치경로를 추정해볼 수 있는바, 동선은 약 3.4km이고 이동시간은 성인기준 도보 40분~50분 정도의 거리임.

문제는 해질녘 오후 6시쯤 헌병이 대체 무슨 용무로 헌병대에서 도보 4~50분이나 떨어진 시외곽지역을 배회하다 우연히 발견된 소녀를 무슨 죄목으로 헌병대로 끌고 갔냐하는 것이며, 헌병대 안에는 이미 납치(?)된 또다른 소녀를 구금하고 있었다는데, 시골의 헌병분견소도 아니고 헌병대본부에서 어떻게 이런 인신매매를 태연히 자행할 수 있다는 것인지 이해가 불능하다.


자료2) 아카쯔키 급행열차 운행 구간  

사용자 삽입 이미지


자료3) 부산발 급행열차 시간표 (1941년 조선열차시각표 참조하여 엑셀편집)  

사용자 삽입 이미지
정대협 증언집에서는 아카쯔키 급행을 타고 대구에서 곧바로 중국 도안성으로 간 것으로 되어 있으나 위 열차시각표에서 보듯 있을 수 없는 일이며, 『버마전선 일본군 '위안부' 문○○』에서는 신의주에서 환승하여 중국 동안성으로 간 것으로 되어 있으나 신의주는 환승역이 아니고 아카쯔키는 신의주까지 가지 않음


자료4) 문할머니의 전시우편 저금원부에 불입된 입금 내역 (이자를 제외한 원금불입)

사용자 삽입 이미지

마츠모토는 우리들이 준 표를 받기만 하고 돈을 한 푼도 주지 않았다. 먹을 것이나 입을 것, 그리고 화장품 같은 것을 조금 사고 싶어도 살 수가 없었다. 생각 끝에 우리들은 일치단결해서 스트라이크를 일으키기로 했다. 그럴 때면 언제나 내가 리더가 되어 돈을 주지 않으면 일하지 않겠다고 마츠모토와 교섭을 했다. 그렇게 실력행사를 할 때만 마츠모토는 돈을 아주 조금, 1원이나 2원쯤 주곤 했다. 그래도 나는 조금씩 받은 팁을 모아 큰 돈을 가지고 있었다. 친구들과 비교해서 나만 그렇게 큰 돈을 가지고 있다가는 안좋은 일이 일어날 수도 있을 것 같아 사무를 보는 군인에게 나도 저금을 할 수 있는지 물어보니 가능하다고 했다. :『버마전선 일본군 '위안부' 문○○』, 모리카와 마치코, 91p~92p
상기 증언을 살피건대 문할머니는 위안부 노동의 댓가로 받은 돈이 아니라 팁을 모아 저금을 했다고 한다. 입금일자를 보면 최초 입금일인 1943년 3월 6일 500원을 입금한 뒤로 불과 4개월만에 700원을 또 입금했다. 군인들 봉급이 전지증봉을 감안해도 월 30엔이 되지 않고 장교의 경우 150엔 미만인데 팁을 대체 얼마나 받아야 월 175엔 이상의 팁을 모을 수가 있는지 미스테리한 일이다.

일본 법원에 제소된「전시 우체국 저금 환불 소송」판결문을 보면 "매일 저녁 수입한 군표를 문옥주 등은 마츠모토에 건네고 한달에 1번 그 반액을 현금으로 받았다"고 되어 있는데, 위의 책에서 언급한 내용과 상반된다. 어느쪽이 맞을지는 돌아가신 그 분만이 아실 일이다. 그 분이 살아계실 때 이런 초보적인 검증을 살피지 않은 정대협과 정부의 책임이 크다고 할 수 밖에...
Posted by 眞明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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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Minowski 2012.01.09 10:1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점점 더 아스트랄해지네요....

  2. 강희대제 2012.01.10 16:3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나저나 참 치밀하시군요..;; 3~4일만에 내놓는 포스트신데 어디서 저런자료를 다 구비하신건지..;;

  3. 무애자 2012.01.10 19:3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문 모 할머니의 경우 "군표를 받아 당시 돈 1만여원을 저금했지만 버마에서 통장을 분실했다"

    " 술취해 들어온 일본 군인이 칼을 빼들고 행패를 부리자 그 칼로 일군을 죽였다가 군종재판에 회부되기도 했고 그 직후 일주일만에 다시 위안부생활을 되풀이해야하는등 온갖 고초를 겪었다. "고 하더군요.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01&aid=0003521245

    • MAUS.K 2012.01.11 12:17  댓글주소  수정/삭제

      『버마전선..』저서를 보면 통장은 버마에서 분실한게 아니라 핸드백에 넣어서 가지고 왔다가 일본의 패전으로 인한 예금청구권의 실효로 오인하여 정당히 요구할 수 있는 기간을 놓쳤다고 되어있습니다. 말이 또 달라지는군요.

      군종재판 회부건은 그 팩트 여부를 좀더 확인해봐야겠죠. 『버마전선..』에 당시 상황이 기술되고 있는데, 일본의 전시 사법제를 고찰해보면 할머니의 증언에 여러가지로 의문점이 생기고 있습니다.

      이런 것까지 다 다루려면 제가 책을 써야 하려나요?

  4. 지나가다 2012.01.15 09:0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거 심각하군요. 이렇게 엉성한 자료를 가지고 일본에 소위 클레임을 제기하려고 했단 말이죠? 제가 일본이라고 해도 도망다니겠습니다. 한국 학계는 뭐하고 있는지 모르겠네요. 이런 상태에서는 일본이 위안부 책임 없다고 발뺌해도 할 말도 별로 없고, 또 우리 입장에서도 위안부 문제의 진상 파악이 안되고 공상소설만 쌓여갈 수 밖에 없는데 말이죠. 이명박 이번에 일본 가서 제안 괜찮게 던지고도 별 성과 없이 돌아온 게 다 이유가 있겠군요.

    이 상태라면 매주 할머니들 데모장에 데리고 오는 단체들 제정신이 아니군요.

    • 나츠메 2012.01.21 01:46  댓글주소  수정/삭제

      1. "한국 학계는 뭐하고 있는지 모르겠네요."

      귀하께서 이미 답을 알고 계십니다. 한국 사학계는 역사학을 가장한 "공상소설"을 쓰고 있습니다.


      2. "매주 할머니들 데모장에 데리고 오는 단체들 제정신이 아니군요."

      제정신이 아니죠.

      위안부 피해자들을 거리로 동원하는, Nationalism에 입각한 일제의 전시동원과 전혀 다를 바 없는 행위를 시전하는 것이 바로 <정대협>이란 시민단체입니다.

      그들은 "민족"이란 이름의 <동원령>을 통해 피해자들의 상처와 트라우마를 재현하도록 강요하고, 이를 통해 다시 민족적 내러티브를 강화하여 국민들에게 선전하고 있지요.

      이미 식민지 시대 종결 후 60여년이 지났건만 여전히 피해자들에게 식민지 시대의 위안부이길 강요하고, 그 끔찍한 치부를 끊임없이 노출시켜 다른 시민들에게 각인하는 정대협이야말로 민족의 '포주'이고, 피해자들은 '21세기판 위안부'라 할 수 있음.

      이처럼 20세기에 '성적 도구'로 이용된 위안부들을, 21세기에 새롭게 '민족 이데올로기의 도구'로 재구성하는 것이, 바로 저 쓰레기 같은 <정대협>입니다.

    • 과객 2012.01.25 19:36  댓글주소  수정/삭제

      그냥 감성, 정서에 호소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위안부 할머니들 동원하면 기자들은 감성을 자극하는 자극적인 기사 쓰고. 그럼 문제의 본질 같은것은 안보고 그냥 일본 나빠요 만 하게 되는 거죠.

      그리고 할머니들 춥거나 아파서 못간다고 하는 것도 강제로 동원하는 인간들도 있다 합니다. 듣기론 거의 반 협박조라 하더군요.

      위안부할머니들을 팔아넘긴 조선인 포주나 직업소개소도 나쁜인간들이지만 지금와서 할머니들을 또 이용해먹는 정치꾼들은 더나쁜 인간들입니다.

      노인분들 아픔을 두번 세번 기억해서 더 아프게 만들고 그걸로 표얻을 생각이나 하는 양아치들이죠.

  5. 정말 2012.01.24 10:5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문제는 일당주고 데모시키는 놈들이 문제입니다
    위안부를 팔아서 정치적 이익을 취할려는 양아치 정치인들이 없어져야
    실체적인 진실과 사실을 직시할수가 있다고 봅니다

  6. 2012.01.25 19:3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7. 2012.02.08 10:2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8. 맑은강물 2012.02.09 13:0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종군위안부 문제의 이면에 이런 것들이 있었다니 충격이군요.

    이런 식으로 가다간 종군위안부 문제는 영영 해결하지 못하고 역사 속으로 사라지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 과객 2012.02.19 17:00  댓글주소  수정/삭제

      65년 이후로도 한국은 일본 정부로부터 이런 저런 이유로 배상하지 않는 명목으로 자금을 받아갔습니다. 98년부터는 북한에 인도적 지원이라는 명분으로 쌀과 곡식, 가전제품 같은 물자를 받아갔고요.

      분명 65년의 조약으로 계약이 끝난 것인데도 한국에서 징징대기에 어쩔수 없이 일본이나 일본 정부가 인도적으로 지원은 해주었습니다만, 계속 한국 정부나 한국인들이 비양심적으로 행동한다면 일본이라고 가만히 앉아서 당하고 앉아 있을까요?

      더구나 일본내 양심적인 시민단체들이 일본극우, 국수주의자들로부터 욕까지 먹어가면서 아시아여성기금에 위안부 할머니들의 치료, 진료, 생계지원 약속을 받아냈지만 그것을 거절한 것은 한국의 여성단체였습니다.

    • 검둥개 2012.12.09 00:39  댓글주소  수정/삭제

      과객/

      표현이 왜 그러십니까? 징징대다뇨?
      자국을 그렇게 표현하는 것이 맞는 것입니까?

      말씀하시는 논리는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흡사 일본인이 일본 입장에서 써 놓은 말 같네요.

      혹시 일본분이시라면 지레 한국분이라 생각한
      제 실수입니다. 죄송합니다.

      어느 국적이든 위안부 문제는 민감한 사안입니다.
      스스로 지식인이라 생각한다면 말을 함에 있어
      한번 더 생각 하시시는 것이 스스로 얼굴에 침을
      덜 뱉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9. 행인1 2012.07.05 19:4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혹시 정대협이 불쌍한 위안부 피해자들을 동원해서 얻으려는 이익이 뭔지 알 수 있을까요?

  10. 미카엘 2012.12.26 01:5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 대구 사람인데요 지금의 대구 남산초등학교에서 병무청까지 3.4km차로 가면 얼마되지 않는 거리에요
    배회하다 납치 한것이 아니라 헌병대 차량으로 납치했을 가능성이 있지 않은가요?

    물론 대부분의 종군위안부는 납치보다는 취업사기를 통한 것으로 봅니다

  11. 미카엘 2012.12.27 23:2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걸어서도 충분합니다
    남산초등학교는 남산4동이 아니라 남산2동이며
    3.4km가 아니라 병무청까지 1.64km 입니다

    보통 천천히 걸으면20분이상 걸리며
    빨리걸으면 15분도 가능합니다

    택시를 타더라도 2400원기본요금만 받습니다
    제가 남산초등학교에서 매일신문사 부근 계산성당은 직접 걸어가본적있는데
    매일신문사에서 조금떨어진곳이 병무청입니다
    지금현재 교통신호등을 포함하여 이렇지만 일제당시에는 도보기준으로 더빨리 갈수도 있다고 보입니다

    네이버에서 거리를 검색해보았습니다
    총거리 1.64km예상시간 25분 나옵니다

    • 眞明行 2012.12.28 00:1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본문을 잘 읽으시라고 누차 말씀드립니다. 현대지도가 아니라 고지도를 꺼내놓고 설명한 이유가 다 있습니다. 당시는 저 길이 요즘처럼 잘 닦여진 신작로가 아니라 꾸불꾸불한 산길이었습니다. 저 지도는 캐드를 이용하여 거리를 측정한 결과 3.4km 정도로 계산이 되었다는 뜻입니다.

      또한 남산4동이라 함은 남산초등학교를 얘기한 것이 아니라 남산초등학교 건너편의 화장터가 남산4동이란 뜻입니다. 해질녘에 시외곽이나 다름없는 한적한 곳에서 여자 아이 하나 잡자고 헌병대에서 출동했다는 얘기를 믿으라는 얘깁니까? 지금?

      화장터 인근인 대명동 화엄사에서 중구 포정동 병무청입구까지 현대지도하에 최단 거리 검색하면 2.64km고, 큰길로 가면 3.11km 나오는거 다 확인했습니다. 자꾸 이런 지엽적인 걸로 시비가 붙는 일은 없었으면 합니다.

  12. segi 2016.01.26 20:1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난독증 환자들이 너무 많군요....ㅋㄷ
    이런글에 답글을 달기위해서는
    비동기적인 문답 같은 답글 퀘스트를 두어야 할 듯....

  13. segi 2016.01.26 20:1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난독증 환자들이 너무 많군요....ㅋㄷ
    이런글에 답글을 달기위해서는
    비동기적인 문답 같은 답글 퀘스트를 두어야 할 듯....

  14. 레닝 2016.02.01 14:2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안녕하세요.
    혹시"일본 법원에 제소된「전시 우체국 저금 환불 소송」판결문" 출처를 알 수 있을까요?
    여기저기서 님이 언급하신 내용과 동일한 문구로 인용은 많이 돼있는데 일본 사이트를 다 뒤져도
    관련된 출처를 알수가 없네요.

    구글링하다보니 일본인들끼리도 출처에대해 설왕설래하던데.. 혹시 확인되는 자료가 있으면 답글부탁드리겠습니다.

    • 眞明行 2016.02.01 23:0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판결문이 아니고 소송장의 내용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저도 인용문의 출처를 따로 기록해놓지 않아 기억이 잘 나지 않는군요. 지금와서 생각해보니 실제로 저런 재판이 있었는지도 의문입니다. (우체국에 환불을 청구했다는 얘기있고, 반환소송을 추진하겠다는 얘기도 있습니다만.. 실제로 소송까지 갔는지는 확인되지 않고 있습니다. 문옥주가 실제로 소송에 참여한 것은 김학순이 1991년 12월에 동경지법에 제기한 아시아태평양전쟁한국인희생자보상청구사건의 일원으로 포함된것만 확인되었습니다. 아마도 저 소송장 내용이 맞다면 김학순이 동경지법에 낸 소송에서 증언자로 참여한 내용일 것입니다.) 언제일지는 모르겠으나 추서를 할 기회가 온다면, 다시 자료를 보강할 생각이고, 일부분의 오류나 수정할 내용이 있으면 수정하도록 하겠습니다.


근.현.대.사 2012.01.06 11:07
3. 정○○ 할머니의 증언

"어느날 내가 일해주던 주인집 아들이 나를 강간하려 해서 나는 죽을 힘을 다해 반항하여 겨우 빠져나왔다. 정신없이 빠져나와 혼자 몸으로 부산 바닷가에 와서 눈물을 흘리면서『연락선은 떠나가네』라는 노래를 부르며 내 신세를 한탄하고 있었다. 갑자기 뒤에서 몇명의 일본군인들이 나타났다. 나는 반항하지 못하고 입과 눈을 틀어막힌 채로 군용트럭에 실렸다. 그 때 나는 열네살(1938년)이었다."

정대협에서 채록한 정할머니의 증언을 보면 14살의 어린 나이에 일본군인에 의해 납치를 당한 후 강제로 위안부 생활을 했던 것으로 보인다. 정할머니의 증언은 일제의 위안부 모집에 있어 공권력에 의한 폭력과 강제가 수반된 사례로 학계에서 널리 인용되어왔다.

그런데 1996년 3월 6일 연합뉴스「北韓국적 정신대 할머니 영주귀국」제하의 기사를 보면
"외무부에 따르면 정할머니는 지난 39년 14살때 부산 어느 부잣집에서 식모살이하다 청년들에 의해 하얼빈으로 강제로 끌려가 군대 위안부가 됐다."
고 되어 있다. 납치를 당한 나이는 같으나 연도가 1939년으로 다르고, 일본군인이 아닌 신원불상의 괴청년들에 의해 납치를 당했다고 한다. 일본군인에 의해 납치를 당한 것과 일반 청년들에 의해 납치를 당한 것은 여러모로 의미가 다를 수 밖에 없다.

그런가하면 이보다 앞선 1992년 7월 31일  동아일보「종군위안부 정부보고서로 본 전모」제하의 기사에는
 "1942년 3월 당시 내 나이가 14세에 불과할 때였다. 부산에서 식모살이를 하던중 잠깐 놀러나갔다가 일본 순사에게 잡혀 임시구금소에 10일 가량 구금된 뒤 기차로 만주의 위안소에 넘겨져 하루 15~20명의 군인을 상대했다"
라고 기술되어 있는 바, 역시 나이는 같지만 납치당한 년도가 1942년으로 다르고 납치된 경위도 놀러갔다가 일본 순사에게 잡혔다고 되어 있다. 그리고 군용트럭에 의해 곧바로 압송된 것이 아니라 임시구금소에 10일 가량 구금된 뒤에 만주로 이동하였다고 되어 있어 납치과정도 상이하다.


4. 정△△ 할머니의 증언

살아 생전 위안부 피해보상 및 사죄촉구 활동에 남다른 열정을 보였던 정△△ 할머니의 증언은 안타깝지만 그대로 가져다 쓰기에는 오류가 너무 심각해 보인다. 정대협에서 채록한 그의 증언을 보면 구체적인 연대기가 나와있지 않은데 다행히 서문에 간단한 약력이 나와있다.

◈ 1924년         경상남도 하동에서 출생
◈ 1937년(14세) 집에서 취업사기로 연행
◈ 1938년(15세) 부산→시모노세키→대만→중국 광동→태국→싱가포르→사이공→인도네시아 등으로 이동
1938년(15세) 인도네시아 수마라이에서 위안부 생활
◈ 1945년(22세) 해방 후 싱가포르 수용소 생활
◈ 1946년(23세) 부산으로 귀국

위의 약력 중 취업사기에 속아 위안부가 된 시점이 가장 중요한다. 할머니의 구술을 보면 "열 네살에 잡혀가서 동짓달에 갔어."라고 언급하고 있어 위의 약력상 연대기는 할머니의 구술 내용과 일치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문제는 여기서 시작된다. 할머니가 14세였던 1937년에 부친은 창씨개명 거부하다 일제의 미움을 샀고, 그 후 놋그릇 공출까지 거부하다 일제에 잡혀갔다고 되어 있다. 주지하다시피 창씨개명은 1939년의 일이고, 마을 단위 놋그릇 공출은 1941년「유기 제작 및 판매 금지령」이 공포된 이후의 일이다.

할머니가 연대를 착각하고 있거나 아니면 의도적으로 피해 연령대를 낮추고 있을 수도 있다. 시간을 달리는 할머니의 증언은 계속된다. 15세였던 1938년에 취업사기에 속아 부산에서 일본 시모노세키를 거쳐 인도네시아로 이동했다는데 인도네시아는 1942년에 일본이 점령했으므로 할머니의 증언은 심각한 오류에 부딪히게 된다. 또한 위안부 이송은 할머니의 설명처럼 수천명씩 태운 대규모 함선이 저렇게 중국과 동남아 각지를 셔틀하며 사람을 내려주는 일은 없었다. 병력을 태운 군수송선이기 때문이다.

할머니는 또 취업사기의 순간을 증언에서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메칠 후에 이장이 와 '아가씨, 일본에 센님바리 맨드는 공장에 가서 한 일년 아니 이년 내지 이년 반만 고생하시고 나오시면 됩니다.' 그래. 그러면 내가 가는 날 아버지가 풀리 나온다 이기라."
그런데 센님바리 만드는 공장이란 없다. 센님바리는 천인침(千人針), 말그대로 가가호호 천명의 여자가 아래의 사진과 같이 돌아가며 군인의 복대를 1인당 한땀씩 바느질을 하는 것으로 이걸 차고 다니면 전쟁터에서 총알도 피해다닐 수 있다는 일종의 부적 같은 것이다. 이게 이상했던지, 다른 증언자료에서는 센님바리 공장이라 하지 않고 "방직공장"이라 정정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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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igTrain 2012.01.06 22:2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구술사 연구가 나름대로 의미가 있고 중요성도 없진 않지만 왜 제한적으로, 검증을 거쳐 받아들여져야 하는지 알 수 있을 것 같네요..

  2. 악의곰푸우 2012.01.07 09:1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정할머니의 의도보다는 일제 만행을 무조건 부각시키려는 주변의 멍청이들과 할머니의 흐릿해진 기억의 합작품일 가능성이 높겠습니다.

    • 백범 2012.01.13 23:50  댓글주소  수정/삭제

      여성단체에서 위안부 할머니들을 이용해서 정부지원금도 갈취하고, 일본의 양심적 시민단체가 '아세아여성기금' 지원을 받게 해주려던 것도 모두 실패했습니다.

      그걸 안 심미자 할머니 같은 분들은 진작에 그 여성단체 년들하고 결별했지요. 다른 분들은 그냥 그 여성단체년들 피해서 숨어버렸지만

      심미자 할머니 같은 분들은 지만원 박사한테 그 사실을 알렸습니다.

      그리고 광복회 원로들 귀에도 그 얘기가 들어가는 바람에 광복회 근처에 위안부기념관 짓는다 하니까 지금 고인이 되신 광복회 원로분들이 열받아서 반대했던 거고요.

      그게 진짜 위안부할머니들을 도와주는 인간들이 그 이상한 기념관 설립 그런 일을 했더라면 광복회 아저씨들이 90이 다됐던 양반들이 그렇게 열받아서 펄펄 날뛰지는 않았을 겁니다.

  3. 인민해방군 2012.01.11 09:2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보상금에 눈먼 할매들의 소설이 아니기를....... 인샬라....

    • 백범 2012.01.13 23:47  댓글주소  수정/삭제

      보상금에 눈먼건 여성단체 운동가들입니다.

      일본의 양심적인 시민단체에서 노력해서 위안부 할머니들을 '아시아여성기금'의 기금 지원과 진료와 상담, 생계 지원 등을 약속했는데

      어떤 여성단체 간부란 년이 지원, 보상 다 필요없으니까 돈만 많이 내놓으라고 지껄인 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망할 여성단체 간부년은 아무도 비난하지 않더군요. 일본의 양심적인 시민단체에서 나서서 주선까지 해주었건만...

  4. 학생 2012.07.14 02:5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할머니들의 증언들이 오류에 범하고 있다는 사실이 있다는데 동의합니다 또한 위안부 사건의 중요한 증거로써 정확성이 중요하다는 것도 인정합니다 하지만 시간이 많이 흐른뒤 정확하게 기억하기란 사실상 힘든 일입니다 젊은사람들도 몇년전에 겪은일들은 정확하게 기억하지 못하는 실정이니까요 그리고 분명히 해야할 것은 증언이 어긋나고 삐꺽한다해도 ,그 분들이 조선인들에 의해서 팔려간 것이였다 해도 그 당시 그분들의 고통과 아픔, 죽는 순간 까지 지니고 가는 상처 또한 역사를 객관적으로 분석하고 인정해야 한다는 분들 입장에서 이 또한 반드시 가슴에 새겨야할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정확한 자료와 마찬가지로 위안부 할머니들의 상처도 분명하고 명백한 사실이니까요

    • MAUS.K 2012.07.17 09:52  댓글주소  수정/삭제

      기억이 틀릴 수도 있겠지요? 그런데 자발적으로 간 것을 납치당해 갔다거나, 모집인의 인솔을 형사나 군인이 데려갔다는 식의 기술은 기억의 오류라기 보다는 왜곡입니다. 이것은 위안부 문제의 본질과도 관련된 것이고.. 불분명한 증언은 활용하면 안되는 것이죠. 전체의 신뢰성마저 의심하게 만드니까요.

    • 그래서어쩔 2014.12.29 01:31  댓글주소  수정/삭제

      MAUS.K. 왜곡은 아닌것 같습니다. 년도 나이에서 오류가 있을뿐 있었던 일 자체에 대해서는 진술이 어느정도 일정합니다. 년도문제랑 일본 순사는 청년이다 아니다 말장난만 있을뿐 그것보다 중요한건 당한 사건들이겠죠.... 물론 법에서 시간이나 알리바이는 너무 중요합니다... 하지만 오래되고 역사적 사건에는 법적 문제보다는 도덕적 문제 해결이 더 중요한것 같습니다. 독일이 사건에 대해 언제 그랬냐 몇월 몇년 이런거 따지지 않고 벌어진 일에 대해 진심으로 사과하지 않습니까.... 일본도 사과했음 계속 그런 자세를 보여줬으면 좋겠네요 사과가 진심이 아니여도 최소한 입놀리지 말아야지 아직도 지들이 잘한 짓이다 그러니.....

  5. 니누고 2013.12.17 02:4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렇게마니고생하고 죽을고비마니넘기는곳을 자발적으로갓겟나ㅋㅋㅡㅡ

  6. 헐.. 2014.01.05 18:0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래서 일제의 강제동원, 납치, 인신매매행위가 없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지만원같은 또라이를 박사라니 수준이 참... 위안부할머니 대개는 교육받지 못한 분들이고, 어린시절에 있던 폭력은 인상과 이미지만이 강할뿐, 구체적인 사실관계는 잘 기억하기 어려운 것이 아동인지의 특성입니다. 때문에 증언할때마다 말이 다른건 사실 당연합니다. 협박이나 위협에 의해 왜곡되기도 하고 타인의 기억과 섞이기도 하거든요.

  7. 그래서어쩔 2014.12.29 01:1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일본 순사가 청년일수도 있죠.... 할아버지겠어요 38,39 일년차이네요 군용차로 끌려간게 38년 끌여가 만주로 가서 위안부 된게 39년일수도 있고... 92년도 증언이 최초 증언이라면 식모살이 하다 주인 아들한테 강간당할뻔 한 이야기는 하지 않으려 그냥 놀러갔다 잡혔다고 할수도 있고....42년도는 안맞긴 하네요... 어쨋든 14살에 식모살이하러 갔다가 젊은 남자(일본인이거나 순사거나 뭐던)들에게 끌려가 위안부 된 증언은 일정하네요. 2. 인도네시아 1870년대부터 일본인 매춘이 있었습니다 군을 위한 위안부는 아닐수 있지만...이부분 저도 잘 모르겠네요. 암튼 창씨개명 본격적으로 치면 그렇지만 그 전부터 일본이름 쓰고 일본어 쓰라는 압박 있었습니다. 그래오다 본격적으로 창시개명 시작한게 뒤에 일어난거지만 일본이름으로 바꾸라는 압박을 그냥 창시개명으로 말한것이겠죠. 아니면 만 나이라서 년도가 2년정도씩 밀렸거나...그리고 마지막 이장이 거짓으로 말했을수 있죠. 그 있지도 않는 공장 가서 일하는 거라고 꼬시지 그럼 저 이국에 뭔 공장이 있는지도 잘 모르는데 그거 다 알아보고 꼬시겠습니까..... 주로 숫자 나이 공식적으로 공표한 정보를 가지고 트집을 잡는데.... 공표한데로 세상이 그렇게 딱딱 진행되는 세상입니까. 나이 년도 등은 트라우마로 기억이 안나거나 헷갈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당했던 일 자체 기억은 어느정도 진술이 일정합니다. 어쨋든 위안부 할머니들은 모르고 끌려갔고 첨에 강제로 당한건 맞지요. 알고 갈 사람 몇이나 있겠습니까.... 물론 위안부 증언 하나하나 다 일관되고 일정하게 모아놓은것이 법적 싸움에서 중요하겠죠. 하지만 위안부 문제는 법적문제를 넘어서 인륜적 문제 아닐까요... 사과했다고 하지만 위안부는 강제적이지 않았고 합리화하는게 사과로 보이지 않네요.

    • 그래서어쩔 2014.12.29 01:22  댓글주소  수정/삭제

      그리고 증언 모순의 글을 남기는 의도가 위안부는 할머니들의 자작이거나 없었다는 걸 말하려는게 아니라 일제 만행에 대한 증언을 더 정확히 모으고 돈 타낼려는 여성단체를 고발하는 의도라면 그걸좀 기제해주셔야 할듯하네요.

  8. 2014.12.29 16:2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글쎄요 자발과 강제의 차이가 너무 큰데요 최초 증언에는 반자발적인거를 나중에 강제로 번복했다면 그거야 문제인거죠. 정대협 얘기는 위안부 얘기에서 핵심이 되는 이야기도 아니고, 이 글은 위안부 피해자의 증언을 분석해서 모순점을 찾아내는건데, 그렇다면 증언한 사람에게도 일정 부분 책임이 가야 맞겠죠. 역사적 사건 그 어느것도 성역화할 수 없습니다. 위에사람같은 사람들이 광주를 성역화했고, 일제강점기를 성역화했어요. 다른 해석도 얼마든지 가능한데 단지 약자, 피해자라는 이름하나로 성역화하여 역사의 진실을 보는 걸 막은겁니다.

  9. 2014.12.29 16:2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미 정대협에서 역사관련 연구자들 다 떨어져나가고 정치적 헤게모니만 주장하는 여성운동가며 좌파적 인사로 채워진 지 10여년이 넘었습니다. 최초증언에서 나온걸 번복한것도 흔하죠. 그래서 요즘 나오는 증언집에는 최초 증언과 맞지 않은 점이 있는데도 요즘 나오는 증언집이 사실인양 둔갑하죠. 이미 위안부에 대해서 더이상 피해자 약자로만 볼 수 없다는 팩트는 많이 발굴됬습니다. 어떻게 보면 이것에 대한 무지가 가장 큰 문제죠.

  10. 2014.12.29 16:2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위안부는 결과적으로 같은 민족이 같은 민족을 착취한 비참한 역사입니다. 같은 민족이 아니라 다른 민족이라고 거짓말을 하는거구요. 위안부 문제에 대해서 일본에 반성을 요구할게 아니라, 팩트를 왜곡하고 다른 민족이 했다며 우겨대고 그러면서 아시아여성기금 받겠다는 할머니들 욕쓰면서 협박해서 또 한번 착취한 우리 사회의 폭력에 대해서 반성해야할 일입니다.

  11. 전찬윤 2016.02.25 23:0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다케시마의 날을 기념하는 일본을 규탄하는 행사에 참여하였습니다. 우경화의 일본을 우리 모두 경계하고 유비무환의 자세로 준비를 게을리해서는 안됩니다. 행사에 참여하고 귀가하다가 반디앤 루니스 인터넷 서점에서 우연히 검색하다가 책을 구입해서 읽었는데 유익했습니다. 참고로 알려드립니다. 도서명: 예금통장을 불타는 아궁이에 던져 버려라. (저자 문석호 MJ 미디어 출판사 393쪽)
    일본 동경 일대에 2029 - 2031년 경에 진도 10.9의 초 강력한 지진 발생
    지금까지 역사에 없었던 초 강력한 지진으로 수백만명이 사망하고 일본은 엄청난 재앙에 직면할 것이다 . 일본은 아수라장이 됭 것이다. 지진피해를 당하거나 부상당한 일본인들은 지옥이 따로 없다고 하늘을 원망하고 가슴을 치며 통탄할 것이다. 지진으로 화상을 입은 일본 사람들은 고통이 너무 심하고 참기 어려워서 "하늘아 차라리 내 가슴에 무너져 내려다오" 하고 통곡하며 울부짖을 것이다. 일본의 경제는 마비되고 사회는 공포와 지진 트라우마로 생지옥으로 변할 것이다. 일본 사회 전체의 패배주의와 고독감, 그리고 무력감은 말할 수 없이 팽배할 것이다. 중상자만도 수백만명에 달할 것이기 때문이다.

    주요내용: 미국, 캐나다, 호주 등지로 유학을 간 우리나라 초, 중고생들이 현지에 잘 적응하지 못하고 쉽게 좌절하는 이유와 대책, 그 밖에 청년 실업 해소 방안, 청년들에게 희망을 주는 희망의 메시지, 우리나라가 미래에 무엇으로 먹고 살 것인가? 우리나라의 새로운 성장동력 산업에 관한 내용들, 우리나라 젊은 과학자들이 서울에서 뉴욕에 2시간반만에 도착하는 초우량 여객기를 생산하도록 지원해 주어야한다, 황혼 이혼을 방지하는 방안 등, 우리나라 동포(교포) 3세가 2052년에 미국의 대통령이 될 것이라고 논리 정연하게 제시하고 있고, 일본 동경 일대에 2029 - 2031년 경에 진도 10.9의 초 강력한 지진이 발생할 것이다. 지금까지 역사에 없었던 초 강력한 지진으로 수백만명이 사망하고 일본은 엄청난 재앙에 직면할 것이다 . 일본은 아수라장이 됭 것이다. 지진피해를 당하거나 부상당한 일본인들은 지옥이 따로 없다고 하늘을 원망하고 가슴을 치며 통탄할 것이다. 지진으로 화상을 입은 일본 사람들은 고통이 너무 심하고 참기 어려워서 "하늘아 차라리 내 가슴에 무너져 내려다오" 하고 통곡하며 울부짖을 것이다. 일본의 경제는 마비되고 사회는 공포와 지진 트라우마로 생지옥으로 변할 것이라고 합니다. 저자와 메일로 문의하니까 중상자만도 수백만명에 달할 것이라고 추정하였습니다. 그밖에 결혼을 잘 준비하는 방법, 이혼을 방지하는 방법, 자살 방지 방안 등 흥미가 있었습니다.

  12. 2016.02.29 09:3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탈북자들도 거짓으로 증언하고 부풀려서 책을 쓰는데 위안부들이라고 거짓이 없겠어요
    그들도 탈북자들만큼 위선을 떠는 이들많습니

    증거가 있나 증언해 줄 사람이있나
    탈북자나 위안부나 어떻게든 돈이나 더 좀 만제보자는 사람들 많을겁니다 탈북자나 위안부나 깉은 처지의 사람들로 봐야ㆍㆍ그렇다고 그들을
    다 거짓말쟁이로 몰아갈 수도 없는 것이 현실
    ㆍㆍㆍ자유없는 나라에서 일어나는 서글픈 일
    들에 관해 자유를 만끽하고 사는 사람들은 각
    성하고 겸허해야ㆍㆍ

  13. 2016.02.29 09:3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탈북자들도 거짓으로 증언하고 부풀려서 책을 쓰는데 위안부들이라고 거짓이 없겠어요
    그들도 탈북자들만큼 위선을 떠는 이들많습니

    증거가 있나 증언해 줄 사람이있나
    탈북자나 위안부나 어떻게든 돈이나 더 좀 만제보자는 사람들 많을겁니다 탈북자나 위안부나 깉은 처지의 사람들로 봐야ㆍㆍ그렇다고 그들을
    다 거짓말쟁이로 몰아갈 수도 없는 것이 현실
    ㆍㆍㆍ자유없는 나라에서 일어나는 서글픈 일
    들에 관해 자유를 만끽하고 사는 사람들은 각
    성하고 겸허해야ㆍㆍ

  14. 빛나리 2016.03.27 18:5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네이버 무비의 영화 "귀향" 리뷰글 순위권에 주인장님 블로그 링크가 걸려 있습니다.

    그것 때문에 아무래도 최근 기입된 댓글이 많이 늘어난 것 같습니다.

    그나저나 문옥주 할머니에 대한 이야기는 http://fightforjustice.info/?page_id=3252&lang=ko 이 사이트에서 반박하고 있는데 어느쪽이 진실인지 모르겠습니다.


근.현.대.사 2012.01.04 17:15
위안부 동원 관련 일제의 공식 문헌자료가 워낙 소략한 탓에 그동안 학계의 연구는 관련자의 구술자료에 의존하여 왔다. 어쩔 수 없는 한계임은 분명하나, 구술의 내용에 대한 교차검증 없이 이를 100% 맹신하거나 과학적 근거가 결여된 통계치를 바탕으로 결론을 속단하는 자세는 바람직하지 못하다.

소위 정대협이나 여성부에서 발간한 각종 위안부 피해자의 증언들을 확인해 보면 일부는 역사적 사실과 맞지 않거나, 타기관에서 증언한 내용과 서로 모순되거나, 경력, 시기, 동원경위 등에 있어 신뢰하기 어려운 얘기들이 종종 보인다. 그 중 몇면 분의 사례는 이미 웹상에서도 회자되고 있는 바, 일본 원숭이들의 웃음거리가 되기 전에 깔끔히 정리하고 가는 것도 좋을 것 같다.

1. 김○○ 할머니의 증언

- 위안부 최초의 증언자로 알려진 김○○  할머니의 증언은 일본군에 의한 강제납치 사례로 학계에서 늘 인용의 대상이 되어 왔다. 공식증언 자료집에는 14세에 기생양성소인 권번에 수양딸로 팔렸다가 17세에 기생의 적을 얻었으나, 나이가 어려 영업허가를 받지 못하자 취직자리를 구하기 위해 양아버지와 함께 중국 북경으로 가던 중 일본군에 의해 강제연행된 뒤 위안부가 된 것으로 나와 있다.

- 그러나「주님 날 살려두신건 해야할 일이 있기때문」이라는 기고문(『새가정』, 1992년)에서는 "일본군대가 여자들을 끌고간다는 소문이 돌기 시작해 양아버지와 함께 만주로 피난 가던 중 일본군에 잡혔다"고 되어 있어 중국으로 건너가게 된 경위가 다르다.

- 한편 일본 법원에 제출한 위안부 손배소 소장에는 양아버지가 "돈벌이가 있다"며 설득해 평양에서 군용열차를 갈아탄후 만주의 철벽진에 도착해 양부와 헤어진 것으로 되어 있다. 양아버지가 일본군 위안소에 팔아먹은 것으로 밖에 판단이 안된다.

-『從軍慰安婦-元兵士たちの証言』西野留美子著, 明石書店(1992)에서는 양아버지가 아닌 마을사람이 일본 순사와 와서 돈벌이를 할 수 있는 곳이 있다며 설득하자 트럭과 군용열차를 타고 만주의 철벽진 위안소로 갔다고 되어 있다. 양아버지는 사라지고 마을사람과 경찰이 대신 조연이 되고 있다. 이 책에서는 17세가 된 여자는 일본군이 끌고간다는 소문이 돌아 딸자식들을 미리 결혼시키는 조혼풍조가 있었음을 말하고, 자신 역시 그 처녀공출을 피하다보니 위안부가 된 것처럼 설명하고 있다.

- 1991년 12월 25일 아사히 신문과의 인터뷰에서는 또 이렇게 말이 바뀐다. "마을 일을 돕는 사람에게서「거기에 가면 돈벌이를 할 수 있다」는 얘기를 듣고 가까운 2명과 함께 유혹에 넘어갔다. 이번에는 일본 순사가 빠지고 마을 일을 하는 사람이 등장한다.

- 김○○ 할머니가 위안부로 팔려가게 된 경위는 이처럼 마을 일꾼 ▶ 마을사람 + 일본순사 ▶ 양아버지 ▶ 일본군대의 납치로 오락가락하고 있음을 알 수 있는데, 누구에 의해 위안부가 되었나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납치와 같은 물리적 폭력이 수반되었는가 하는 것은 위안부 문제의 성격을 규명하는 데 있어  중차대한 문제이므로 이에 대한 명확한 검증이 선행되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2. 황○○ 할머니의 증언

(1) 위안부가 된 시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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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사실관계 오류   
"해방 3년전(1942년) 만 15세 이상 미혼의 조선처녀들을 정신대에 동원하라는 천황의 명령이 떨어지자"
  여자정신근로령 공포는 1944년 8월 23일이므로 1942년 천황의 정신대 동원명령설은 사실이 아님. 물론 법령 공포 이전에도 정신대 동원 기록이 보이나, 일본 본토에선 1943년 9월이 최초였고, 우리나라에서는 1944년 3월부터 일본의 공장으로 여자정신대가 동원되기 시작함.

"일본의 군수공장에 3년의 계약으로 일하러 가면 큰 돈을 벌 수 있다"
여자정신근로령 공포 이전의 관알선에 의한 모집은 계약기간이 2년이었고, 법령 공포 이후에는 1년이 되었다. 따라서 최초계약이 3년짜리는 있을 수 없다. 그리고 동원대상이 15세 이상의 미혼처녀라는 규정은 없었다. 만12세이상 40세 미만의 국민등록 가능자로서 중등학교 이상 졸업자의 학력이나 기술을 요구하고 있는 점, 영서를 받아야 하는 점 등으로 미루어 보아 할머니처럼 무학 내지는 비인가 야학 출신인 경우 해당사항 없었다.


3. 정○○  할머니의 증언

검증은 다음 포스팅에 계속.. (정△△ , 문○○ , 이○○  박○○  할머니의 증언검증 추가 예정)

Posted by 眞明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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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강희대제 2012.01.04 16:5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잘 봤습니다.

  2. Tretyakov 2012.01.04 18:0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잘 보았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늘 건강하시길...

    구술사의 최대 장점은 역사의 현장에 있었던 당사자들의 이야기를 생생하게 들을 수 있다는 점이지만,
    역으로 그 당사자들이 자신만의 이해관계를 갖고 있기 때문에
    무조건적으로 신뢰할 수도 없다는 데 단점이 있지요.
    그렇기 때문에 2차대전 전쟁사를 연구하는 측도 최근에서야 구술사를 많이 참고하지만,
    어디까지나 기존의 정치사, 제도사, 군사사의 관점에서 보조적으로 참고하는 듯 합니다.
    전쟁에 참여하는 "개인", 특히 구술사가 강조하는 이른바 서민이나 민중들의 구술사는
    개인사에 관해서는 (자기 자신이니까) 잘 기억하지만, 제도나 군수품 같은 것은 기억하기 힘드니까요.


    그런 점에서 보면 김할머니나 황할머니의 개인사 부분은 충분히 의심스럽지만...
    (자기가 절대 잊을 수 없다고 말하는데 저렇게 오락가락하면 신빙성이 있겠습니까.
    게다가 양아버지가 주선했다, 마을 사람이 주선했다... 양립하기 힘들군요)

    사실 관계, 법령에 대한 부분은 소문이 와전되었거나, 일부 지역에 한해서
    제도가 잘못 시행되었을 가능성도 있지 않을까요.

    • Minowski 2012.01.05 09:35  댓글주소  수정/삭제

      그렇기 때문에 그런 오류를 걸러내기 위해 학자들이 크로스체크해야 하는 것이지요...

      진명행님께서 하시는 작업도 사실 크로스체크인 것이고..

      문제는 학계에서나 정치판에서나 객관적인 사실을 알아내기 위핸 크로스체크 마저도 매우 친일적인 행위로 공격당하고 있다는 것...

  3. 백범 2012.01.05 23:1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한국인 인신매매자나 한국인 직업소개소 같은데에 속아서 팔려간 사람들, 가족이나 지인들의 속임수에 팔려간 여자들이 있다는 것만이라도 인정했으면 좋겠는데...

    그 많은 위안부가 전부 일본인들이 닥치는대로 잡아간게 아니거든요. 분명 조선 여자들을 팔아먹은 조선인 놈들도 분명 있었습니다. 그걸 인정하는게 그렇게 어렵고 힘든건지.

  4. 쪽바리 개새끼 2012.12.08 23:3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섬나라로 돌아가시오.

    • 안타깝다 2013.12.20 11:00  댓글주소  수정/삭제

      오류지적은 좋으나 할머니들의 아픈 과거까지 거짓이라 말하는 것 같네요 보기 좋지 않아요 그 분들은 팔려갔든 속아서 갔든 여러 일본인을 상대로 원치않는 성노동을 당하고 정당한 보수도 받지 못 했으며 대부분이 성노동과 더불어 잔인한 폭력또한 당했을거란 말입니다 객관적인 입장도 좋지만 같은 나라의 아픈 역사를 겪은 세대의 후손들로써 잘 해석해나가주시기 바랍니다

  5. 류화성 2013.08.05 17:0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잘 보았습니다. 이러한 역사적 문제에 있어서는 검증이 생명이라고 생각하는데 이 위안부 문제에서는 그러한것이 누락되거나 오락가락한점이 많군요. 그렇다고 해서 위안부 강제동원이 덮어진다고 생각하는것은 아니지만 철저한 검증과 연구가 필요하다는것을 알았습니다. 연구하시느라 고생많으셨습니다. 글 올려주셔서 감사 합니다.

  6. 정말 심각한 문제입니다/ 2013.10.12 12:4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7090600289111001&edtNo=6&printCount=1&publishDate=1997-09-06&officeId=00028&pageNo=11&printNo=2977&publishType=00010


    한겨레에서 찾은 신문기사네요.

    정대협이 진짜 위안부 할머니들을 위해 일하는 단체인지 정말 의심스럽습니다.



    북한 김정일이 뒈졌을 때 조문 보낸다는 것과


    http://stock.mt.co.kr/view/mtview.php?no=2011122319598271017&type=1



    조총련과도 연관이 되어있다는 충격적인 진실.


    http://news.donga.com/3/all/20010423/7679951/1


  7. 그래서어쩔 2014.12.29 00:2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1. 마을 일 돕는 사람이 마을 사람일수도 있고 양아버지 마을 사람들 일본 순사 모두가 설득하는 말을 한번이라도 했으면 거짓인게 뭔가요 뭐 양아버지가 설득했다 마을 사람이 했다 일본 순가가 했다 뭐 세부류를 다 안 말하고 그렇게 될수도 있는 것이고요 옛날에 피난을 어차피 북경으로 가려면 배타고는 못가니 만주지방인 북쪽으로 갔다 가야하니 그렇게 말씀하실수도 있지 않을까요?
    2. 만 17세 / 실제 한국에서 말하는건 19세로 만으로 안하죠... 고등학교 19살에 끝나지만 졸업은 20살 겨울때 하니 고정도는 혼돈 오실수 있고.... 3년 계약 없었다는데 뭐 전했던 일본 순사나 마을사람들이 3년으로 전할수도 있고 뭐 꼭 그 천황 공표한 그대로가 아니라 좀 장보 전달 잘못될 수도 있고 ..... 만 15세 이상이고 뭐고 조건있어도 전쟁통에 무자비한 일본인이 그낭 마구 잡아가지 그거 다 지키고 전쟁하는 나라 어딨나..... 이해 안가는건 14살 딱 하나네요....

    • 꺼져라 2015.01.28 11:27  댓글주소  수정/삭제

      사실관계를 파악하는 일에 헷갈리는 내용을 씨부리면 되냐?ㅋㅋㅋㅋㅋ 헷갈리면 아가리를 닥치고 있어야지 ♫♫♩아 ㅋㅋㅋㅋㅋㅋ

    • 2015.01.28 23:16  댓글주소  수정/삭제

      무자비한 일본인.. 애초 일본인에 대한 가치판단 부터가 대단히 주관적이면서 객관적인척 쩌시네? 하여간 이런 가식적인 새끼들은 주둥이 쳐놀리면 안되는데 말야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