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현.대.사 2012.01.04 17:15
위안부 동원 관련 일제의 공식 문헌자료가 워낙 소략한 탓에 그동안 학계의 연구는 관련자의 구술자료에 의존하여 왔다. 어쩔 수 없는 한계임은 분명하나, 구술의 내용에 대한 교차검증 없이 이를 100% 맹신하거나 과학적 근거가 결여된 통계치를 바탕으로 결론을 속단하는 자세는 바람직하지 못하다.

소위 정대협이나 여성부에서 발간한 각종 위안부 피해자의 증언들을 확인해 보면 일부는 역사적 사실과 맞지 않거나, 타기관에서 증언한 내용과 서로 모순되거나, 경력, 시기, 동원경위 등에 있어 신뢰하기 어려운 얘기들이 종종 보인다. 그 중 몇면 분의 사례는 이미 웹상에서도 회자되고 있는 바, 일본 원숭이들의 웃음거리가 되기 전에 깔끔히 정리하고 가는 것도 좋을 것 같다.

1. 김○○ 할머니의 증언

- 위안부 최초의 증언자로 알려진 김○○  할머니의 증언은 일본군에 의한 강제납치 사례로 학계에서 늘 인용의 대상이 되어 왔다. 공식증언 자료집에는 14세에 기생양성소인 권번에 수양딸로 팔렸다가 17세에 기생의 적을 얻었으나, 나이가 어려 영업허가를 받지 못하자 취직자리를 구하기 위해 양아버지와 함께 중국 북경으로 가던 중 일본군에 의해 강제연행된 뒤 위안부가 된 것으로 나와 있다.

- 그러나「주님 날 살려두신건 해야할 일이 있기때문」이라는 기고문(『새가정』, 1992년)에서는 "일본군대가 여자들을 끌고간다는 소문이 돌기 시작해 양아버지와 함께 만주로 피난 가던 중 일본군에 잡혔다"고 되어 있어 중국으로 건너가게 된 경위가 다르다.

- 한편 일본 법원에 제출한 위안부 손배소 소장에는 양아버지가 "돈벌이가 있다"며 설득해 평양에서 군용열차를 갈아탄후 만주의 철벽진에 도착해 양부와 헤어진 것으로 되어 있다. 양아버지가 일본군 위안소에 팔아먹은 것으로 밖에 판단이 안된다.

-『從軍慰安婦-元兵士たちの証言』西野留美子著, 明石書店(1992)에서는 양아버지가 아닌 마을사람이 일본 순사와 와서 돈벌이를 할 수 있는 곳이 있다며 설득하자 트럭과 군용열차를 타고 만주의 철벽진 위안소로 갔다고 되어 있다. 양아버지는 사라지고 마을사람과 경찰이 대신 조연이 되고 있다. 이 책에서는 17세가 된 여자는 일본군이 끌고간다는 소문이 돌아 딸자식들을 미리 결혼시키는 조혼풍조가 있었음을 말하고, 자신 역시 그 처녀공출을 피하다보니 위안부가 된 것처럼 설명하고 있다.

- 1991년 12월 25일 아사히 신문과의 인터뷰에서는 또 이렇게 말이 바뀐다. "마을 일을 돕는 사람에게서「거기에 가면 돈벌이를 할 수 있다」는 얘기를 듣고 가까운 2명과 함께 유혹에 넘어갔다. 이번에는 일본 순사가 빠지고 마을 일을 하는 사람이 등장한다.

- 김○○ 할머니가 위안부로 팔려가게 된 경위는 이처럼 마을 일꾼 ▶ 마을사람 + 일본순사 ▶ 양아버지 ▶ 일본군대의 납치로 오락가락하고 있음을 알 수 있는데, 누구에 의해 위안부가 되었나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납치와 같은 물리적 폭력이 수반되었는가 하는 것은 위안부 문제의 성격을 규명하는 데 있어  중차대한 문제이므로 이에 대한 명확한 검증이 선행되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2. 황○○ 할머니의 증언

(1) 위안부가 된 시점
사용자 삽입 이미지

(2) 사실관계 오류   
"해방 3년전(1942년) 만 15세 이상 미혼의 조선처녀들을 정신대에 동원하라는 천황의 명령이 떨어지자"
  여자정신근로령 공포는 1944년 8월 23일이므로 1942년 천황의 정신대 동원명령설은 사실이 아님. 물론 법령 공포 이전에도 정신대 동원 기록이 보이나, 일본 본토에선 1943년 9월이 최초였고, 우리나라에서는 1944년 3월부터 일본의 공장으로 여자정신대가 동원되기 시작함.

"일본의 군수공장에 3년의 계약으로 일하러 가면 큰 돈을 벌 수 있다"
여자정신근로령 공포 이전의 관알선에 의한 모집은 계약기간이 2년이었고, 법령 공포 이후에는 1년이 되었다. 따라서 최초계약이 3년짜리는 있을 수 없다. 그리고 동원대상이 15세 이상의 미혼처녀라는 규정은 없었다. 만12세이상 40세 미만의 국민등록 가능자로서 중등학교 이상 졸업자의 학력이나 기술을 요구하고 있는 점, 영서를 받아야 하는 점 등으로 미루어 보아 할머니처럼 무학 내지는 비인가 야학 출신인 경우 해당사항 없었다.


3. 정○○  할머니의 증언

검증은 다음 포스팅에 계속.. (정△△ , 문○○ , 이○○  박○○  할머니의 증언검증 추가 예정)

Posted by 眞明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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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강희대제 2012.01.04 16:5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잘 봤습니다.

  2. Tretyakov 2012.01.04 18:0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잘 보았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늘 건강하시길...

    구술사의 최대 장점은 역사의 현장에 있었던 당사자들의 이야기를 생생하게 들을 수 있다는 점이지만,
    역으로 그 당사자들이 자신만의 이해관계를 갖고 있기 때문에
    무조건적으로 신뢰할 수도 없다는 데 단점이 있지요.
    그렇기 때문에 2차대전 전쟁사를 연구하는 측도 최근에서야 구술사를 많이 참고하지만,
    어디까지나 기존의 정치사, 제도사, 군사사의 관점에서 보조적으로 참고하는 듯 합니다.
    전쟁에 참여하는 "개인", 특히 구술사가 강조하는 이른바 서민이나 민중들의 구술사는
    개인사에 관해서는 (자기 자신이니까) 잘 기억하지만, 제도나 군수품 같은 것은 기억하기 힘드니까요.


    그런 점에서 보면 김할머니나 황할머니의 개인사 부분은 충분히 의심스럽지만...
    (자기가 절대 잊을 수 없다고 말하는데 저렇게 오락가락하면 신빙성이 있겠습니까.
    게다가 양아버지가 주선했다, 마을 사람이 주선했다... 양립하기 힘들군요)

    사실 관계, 법령에 대한 부분은 소문이 와전되었거나, 일부 지역에 한해서
    제도가 잘못 시행되었을 가능성도 있지 않을까요.

    • Minowski 2012.01.05 09:35  댓글주소  수정/삭제

      그렇기 때문에 그런 오류를 걸러내기 위해 학자들이 크로스체크해야 하는 것이지요...

      진명행님께서 하시는 작업도 사실 크로스체크인 것이고..

      문제는 학계에서나 정치판에서나 객관적인 사실을 알아내기 위핸 크로스체크 마저도 매우 친일적인 행위로 공격당하고 있다는 것...

  3. 백범 2012.01.05 23:1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한국인 인신매매자나 한국인 직업소개소 같은데에 속아서 팔려간 사람들, 가족이나 지인들의 속임수에 팔려간 여자들이 있다는 것만이라도 인정했으면 좋겠는데...

    그 많은 위안부가 전부 일본인들이 닥치는대로 잡아간게 아니거든요. 분명 조선 여자들을 팔아먹은 조선인 놈들도 분명 있었습니다. 그걸 인정하는게 그렇게 어렵고 힘든건지.

  4. 쪽바리 개새끼 2012.12.08 23:3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섬나라로 돌아가시오.

    • 안타깝다 2013.12.20 11:00  댓글주소  수정/삭제

      오류지적은 좋으나 할머니들의 아픈 과거까지 거짓이라 말하는 것 같네요 보기 좋지 않아요 그 분들은 팔려갔든 속아서 갔든 여러 일본인을 상대로 원치않는 성노동을 당하고 정당한 보수도 받지 못 했으며 대부분이 성노동과 더불어 잔인한 폭력또한 당했을거란 말입니다 객관적인 입장도 좋지만 같은 나라의 아픈 역사를 겪은 세대의 후손들로써 잘 해석해나가주시기 바랍니다

  5. 류화성 2013.08.05 17:0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잘 보았습니다. 이러한 역사적 문제에 있어서는 검증이 생명이라고 생각하는데 이 위안부 문제에서는 그러한것이 누락되거나 오락가락한점이 많군요. 그렇다고 해서 위안부 강제동원이 덮어진다고 생각하는것은 아니지만 철저한 검증과 연구가 필요하다는것을 알았습니다. 연구하시느라 고생많으셨습니다. 글 올려주셔서 감사 합니다.

  6. 정말 심각한 문제입니다/ 2013.10.12 12:4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7090600289111001&edtNo=6&printCount=1&publishDate=1997-09-06&officeId=00028&pageNo=11&printNo=2977&publishType=00010


    한겨레에서 찾은 신문기사네요.

    정대협이 진짜 위안부 할머니들을 위해 일하는 단체인지 정말 의심스럽습니다.



    북한 김정일이 뒈졌을 때 조문 보낸다는 것과


    http://stock.mt.co.kr/view/mtview.php?no=2011122319598271017&type=1



    조총련과도 연관이 되어있다는 충격적인 진실.


    http://news.donga.com/3/all/20010423/7679951/1


  7. 그래서어쩔 2014.12.29 00:2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1. 마을 일 돕는 사람이 마을 사람일수도 있고 양아버지 마을 사람들 일본 순사 모두가 설득하는 말을 한번이라도 했으면 거짓인게 뭔가요 뭐 양아버지가 설득했다 마을 사람이 했다 일본 순가가 했다 뭐 세부류를 다 안 말하고 그렇게 될수도 있는 것이고요 옛날에 피난을 어차피 북경으로 가려면 배타고는 못가니 만주지방인 북쪽으로 갔다 가야하니 그렇게 말씀하실수도 있지 않을까요?
    2. 만 17세 / 실제 한국에서 말하는건 19세로 만으로 안하죠... 고등학교 19살에 끝나지만 졸업은 20살 겨울때 하니 고정도는 혼돈 오실수 있고.... 3년 계약 없었다는데 뭐 전했던 일본 순사나 마을사람들이 3년으로 전할수도 있고 뭐 꼭 그 천황 공표한 그대로가 아니라 좀 장보 전달 잘못될 수도 있고 ..... 만 15세 이상이고 뭐고 조건있어도 전쟁통에 무자비한 일본인이 그낭 마구 잡아가지 그거 다 지키고 전쟁하는 나라 어딨나..... 이해 안가는건 14살 딱 하나네요....

    • 꺼져라 2015.01.28 11:27  댓글주소  수정/삭제

      사실관계를 파악하는 일에 헷갈리는 내용을 씨부리면 되냐?ㅋㅋㅋㅋㅋ 헷갈리면 아가리를 닥치고 있어야지 ♫♫♩아 ㅋㅋㅋㅋㅋㅋ

    • 2015.01.28 23:16  댓글주소  수정/삭제

      무자비한 일본인.. 애초 일본인에 대한 가치판단 부터가 대단히 주관적이면서 객관적인척 쩌시네? 하여간 이런 가식적인 새끼들은 주둥이 쳐놀리면 안되는데 말야ㅋㅋ


근.현.대.사 2012.01.03 01:22
방선주 박사가 발굴한 일본군 암호전보문에 의하면 위안부 모집과 관련 적지 않은 돈이 오갔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위안부 모집비용은 전차금 명목으로 소요된 비용이 가장 컸을 것이고, 그외에도 운임비, 식대, 숙박비가 포함되었을 것으로 보여진다. (암호 전보문 내용은「정신대연구소 소식 제30호, 2001」참조)

1945년 3월 14일 장가구(張家口)에서 일본 동경으로 보낸 비밀전보의 내용을 보면, 대략적인 1인당 모집비용을 산출해 볼 수 있는데, 구체적인 내용은 생략하고 비용 부분만 간추려 소개하자면 다음과 같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송금액을 위안부 인원수로 나누면 적게는 5,000엔에서 많게는 15,000엔이 소요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위안부를 수입한 현지 군부대에서 직접 모집비용과 소정의 수수료를 업자에게 송금하고 있는데, 송금환의 거래취소나 위조문제를 방지하기 위해 현지 은행에 3배 정도되는 보증금을 예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렇다면 조선에서 중국이나 기타 해외 등지로 위안부를 내보냈을 경우 업자들에게 들어오는 송금액이 있었을 것이고 이 송금액은 고스란히 은행 송금환 계정에 잡혀있을 것이다. 따라서 이를 추적하면 국내 학자들이 추산하고 있는 최대 20만명의 위안부설은 "장군님 뻥치신다" 수준으로 간주해도 무방할 듯 하다.

1910년부터 1943년까지 조선의 각 은행에 잡힌 위체수불고 현황을 보면, 해외에서 국내로 송금한 거래 규모을 어느정도 파악할 수 있다. 위안부 20만명이 10년에 걸쳐 해외로 송출되었다고 터무니없는 가정을 해볼때 중일전쟁 이후에는 위안부 수요가 증가해서 송출인원도 비례하여 급격히 증가했을 것이다.

그러면 상기 비밀전보문에서 추산된 1인당 모집비용을 5,000엔~15,000엔으로 계산했을 경우 송금환 수입금액은 급격히 증가하거나 어느정도 영향을 미쳤어야 한다. 하지만 아래 도표에서도 볼 수 있듯이 중일전쟁기 이후 해외 위체 수입 증가율은 그 이전에 비해 두드러진 변화가 없다. 설령 위체수입 증가분의 전액이 위안부 모집비용과 관련되었다 가정해도 위안부 20만명은 택도 없는 개솔이라 사료된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왜 이런 오류가 발생했을까 하면, 군인 몇명당 위안부 몇명이라는 아주 단순한 산수로 위안부 규모를 터잡았기 때문에 생긴 초보적 실수일 것이다. 일본이 운영한 위안소는 중국에서 남태평양에 이르는 각지의 모든 부대에 설치된 것이 아니라, 병참이 운영되는 거점 부대를 중심으로 설치된 것이기 때문에 이를 감안하지 않으면 저런 무리수가 나올 수 밖에 없다.

20만명의 위안부를 고용할 수 있는 천문학적인 돈을 대체 어떻게 일본 정부가 감당했을 수가 있겠나. 상식적으로 말이 되는 소릴 해야지 이 양반들은... 설마 이 많은 인원을 돈도 안주고 그냥 납치나 유괴로 데려왔다고 하진 않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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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님 2013.01.20 13:0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20만명 가지는 안되더라도 그렇게 될수도 있는겁니다.
    당시 일본정부가 그 돈을 제대로 지불 하지 않았을 것을 감안하셔야죠...

    • 眞明行 2013.04.11 19:3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일본군이 돈을 제대로 지불하지 않았다면, 모집업자들은 그냥 공짜로 위안부를 잡아다가 자비로 전선까지 끌고가서 인계한모양이군요.

  3. 감탄고토 2013.04.09 10:5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일본군 위안부에게 돈이 한푼도 지급된 적이 없다는 일본군 회계 담당 모리카와 마치코씨의 기록이 있었습니다. 돈이 한푼도 지급되지 않았으니 충분히 가능한 이유겠지요.

    • 眞明行 2013.04.11 19:3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모리카와 마치코씨의 나이가 몇인데, 당시 일본군 회계담당이었다는 말입니까? 그 양반은 위안부 문옥주의 이야기를 전한 일본의 프리랜서 작가일 뿐입니다.

  4. 2013.05.22 03:2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조선인만 20만명이 아니에요

    조선인 50% 중국인 30% 일본인12% 그외 8%

  5. 2013.06.06 20:4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20만명은 근로정신대에 동원된 수입니다. 그중 조선인이 5만~7만이고 13만명은 일본인이었답니다. 일본군위안부는 정신대 간 여자 소수가 취업사기나 납치등을 당해서 생긴겁니다. 우리가 도와야할 할머니들은 이 할머니들이죠. 정신대와 위안부는 다릅니다. 이 정신대와 위안부를 혼동하기 시작하더니 정신대 20만명이 위안부 20만명으로 둔갑되어 왜곡을 했습니다. 위안부 할머니들 이용해먹는게 꼴페미들입니다. 이걸로 노무현때 꼴페미들이 엄청 설쳤습니다. 근로정신대 아니라도 20만명이 말이 안돼는게 20만명이 말이 안돼는게 그 당시 조선인구가 2천만명인데 어떻게 20만명이 동원될 수 있을까요. 여자인구만 7,8백만명인데 20만명이면 20대 여자 대부분이 위안부였다는건 이건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숫자입니다. 위안부가 실존했었다는건 사실이지만 자꾸 수를 부풀리는것도 일본한테 빌미를 주는겁니다.

  6. 2013.06.06 20:4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 숫자 계산도 이영훈 교수가 단순계산한거죠. 어쨌든 20만명은 완전 개뻥입니다. 조선인 강제징용수도 날조구요. 자꾸 한국에서 저런식으로 날조하니까 일본에서 지랄하는거지요.

  7. 2013.06.06 20:4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강제징용도 2백만 3백만 이러는데 상식적으로 말이 안됩니다. 그럼 조선남성 대부분이 끌려간게 돼거든요.

  8. 01 2013.06.07 00:2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잘 정리된 글이네요.

    논리적으로 생각하고 합리적으로 정보를 분석하는 한국이 되어야 하는데

    마냥 동정여론으로 할머니들 불쌍하다며 근거없이 일본 미워하는건 이제는 그만해야합니다.

    쓸데없는데 에너지를 낭비할 필요는 없죠.

  9. 아아 2013.06.09 01:4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럼 저렇게 월급주고 한게 끝이고 일시켜준다고 데려가고 강제로 끌려간거는 없다는소리인가요??

  10. J X 2013.08.08 09:3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와.. 미치겠다.!! 뭔 말이 되는 소릴 해야.. 들어주지!!!!
    옆 섬나라에서 갖혀들 사니까. 심심하고 답답하신가봐~
    당장 우리내 할머니, 할아버지께서 겪으신 일들입니다.
    반성합시다.

  11. zzgs 2013.09.25 07:1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잘 보고 갑니다. 예전에는 미처 생각못하던 걸 짚어주시는군요.(윗글보고 말문이 막힌 나머지 딴소리하는 인간들도 몇몇 보이긴 하는군요. ㅋㅋㅋ) 사실 근거없이 숫자를 부풀려대는 짓거리를 하는 인간들이 꽤 많긴 하지요. 예전에 본 한 진상중엔 통일되면 북한지역의 인적자원유출을 해소하기 위해 남한사람 천만명을 강제징용해서 부칸에 쳐넣을거라는 아스트랄(?)한 소리를 하던 작자도 생각납니다. 솔직히 천만명이면 20세이상 청년층의 대다수를 다 부칸에 끌고가겠다는 뜻인데 애초에 개념이 없는것이지요. 그런 사람들 보면 마치 감정호소를 위해서 닥치고 다 숫자 안에 집어넣는게 특징인것 같습니다..

  12. 맹목적 2013.12.01 00:0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맹목적인 애국심은 비웃음만 받을 뿐입니다. 역사를 올바르게 알아야 일본에 대적할 수 있습니다. 20만명 위안부설은 매우 허황된 것이며, 이것은 일본 우익들의 표적이 되어 비웃음을 사고 있습니다. 상식적으로 20만명이란 엄청난 숫자를 위안부로 삼을 동안 우리나라의 가족들과 이웃들은 가만히 있지 않았을 거니까요. 이것이 위안부가 있었다는 것을 부정하는 것도 아닌데 사실을 증거로 둔 주장에 대해 친일파냐? 이딴 소리 하는 사람들은 무식한 사람들입니다. 일본에게 무식함을 보여주고 망신을 당하는 겁니다.

    • 동감 ㅇㅇ 2013.12.18 11:59  댓글주소  수정/삭제



      공감합니다.


      http://pds26.egloos.com/pds/201310/11/56/d0065056_5257c2043d791.jpg



      http://pds21.egloos.com/pds/201310/11/56/d0065056_5257c20734369.gif



      http://pds21.egloos.com/pds/201310/11/56/d0065056_5257c20ab5dd4.png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7090600289111001&edtNo=6&printCount=1&publishDate=1997-09-06&officeId=00028&pageNo=11&printNo=2977&publishType=00010




      이것들만 살펴보아도 종군위안부 문제는 다시 재조명되야 한다고
      봅니다.

    • 동감 00 2013.12.18 12:2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을 다시 수정해서 올리면


      http://pds26.egloos.com/pds/201310/11/56/d0065056_5257c2043d791.jpg



      http://pds21.egloos.com/pds/201310/11/56/d0065056_5257c20734369.gif



      http://pds21.egloos.com/pds/201310/11/56/d0065056_5257c20ab5dd4.png

    • david yoo 2016.02.15 03:52  댓글주소  수정/삭제

      20만명 위안부설은 일본 요시미 요시아키 교수의 5 - 20만명 사이 일거라는 설에서 시작된것으로 알고 있으며 여기서 주의해야할 것은 한번에 20만명이 동원됐다는것이 아닙니다. 베트남전의 경우 8년동안 31만명의 군인이 파견되었으나 그렇다고 해서 동시에 31만명이 참전한건 아닌것처럼 말입니다. 위안부의 경우에도 마찬가지겠죠. 또한 20만명에는 한국 위안부만 포함된게 아니라 다른 나라의 위안부 역시 포함되어 있으며 한국 여성들은 약 50프로 정도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13. rkddkwlzb 2014.04.14 19:0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보여지는 자료가 전부일 거라 생각하는 건가요?
    위안부와 관련한 많은 자료들이 폐기되었고 남아있는 자료가 있더라도 일본은 불리한 자료는 절대로 내놓지 않고 은폐하죠.

  14. 녹두장군 2014.10.08 10:2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설마 이 많은 인원을 돈도 안주고 그냥 납치나 유괴로 데려왔다고 하진 않겠지?
    //
    이게 실제 한국인들이 믿고있고 주장하고 있는 내용임 ㄷㄷ

  15. ㅁㅎㅁㅎㅁㅎㅎㅁ 2015.01.07 13:4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뭐지 이 논리적 비약은?
    성노예 숫자에 대한 정확성이 떨어진다. -> 일본은 강제 동원 하지 않았다?
    아휴~ 이런 또라이 세끼 블로그에 글 다는 시간도 아깝다만
    너 정신병자냐? 지엽적인 거 몇 개 물고 늘어지면서 별 꼴같잖은 호도질은
    애~휴~
    미친 세끼들이 왜이리 많어

    • 2015.01.13 22:56  댓글주소  수정/삭제

      이래서 멍청한놈들은 댓글달면 안되
      이 글 주제가 위안부 20만명설에 대한 반론이지
      위안부 강제동원설에 대한 반론은 아닌데?
      물론 글쓴이의 이론이 위안부 강제동원설에 대한 반박이 주를 이루지만 적어도 이 글은 아닌데?
      팩트에는 팩트로 반박해라 시덥잖은 개소리 지껄이지말고

    • 지랄탱이 2015.07.15 12:41  댓글주소  수정/삭제

      닭대가리 같은놈 당시 조선 인구가 몇명인데 여자를 20만명을 데리고 갔다는 거냐? 머저리개뼈다구병신같은새끼야

  16. 다크소울 2015.03.16 16:1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솔직히 인용한 자료가 블로거가 손으로 그려서 조작한건지 정말 맞는 자료인지도 의심스럽습니다.
    하지만 정말 맞는 자료라고 치더라도,
    위안부 모집에 들어간 돈이 모두 "대기타외국" 예산에만 들어갔다면 혹시나 만의하나 블로거 의견을 조금 고려할 가치가 있을지도 모르죠.
    하지만, 그보다 훨씬 규모가 큰 "조선내" 예산에 조선 위안부 모집비용이 섞여 들어가 있다면.....
    1943년과 1942년간 예산 차이인 813,953,000원만 쳐도, 블로거가 역시 수상쩍은 종이 쪽지 하나에 근거해서 주장하는 평균 모집 비용인 10,000원 기준으로 81,395명이나 위안부를 모집할 수 있는 금액입니다.
    최저 모집 비용인 5,000원 기준으로는 162,790명이나 모집할 수 있는 금액이구요.
    이 따위 수상쩍은 글과 자료를 올려서 위안부 규모 축소를 시도하는 이유는 블로거가 일본인이기 때문인가요? 아니면, 친일파 매국노이기 때문인가요? 말투가 공손하지 못하지만, 반말이나 욕을 쓰고 싶은 걸 참고 적고 있으니 양해 바랍니다.

    • 한심한엽전 2015.03.20 14:36  댓글주소  수정/삭제

      지가 진실이라 믿는 세계관과 다른 사실들을 접하게되면 생각짧은 한국인들이 보이는 전형적인 반응이 이런것임.

      "아닙니다 아닙니다 이럴리가 없습니다. 이건 쪽바리들의 날조입니다. 글쓴이는 매국노입니다"

      순진한 열정이 눈을 멀게하는 20대 초중반이라면 그나마 이해하겠는데 나이 30대 들어서도 저런다면 답이없다. 답없는 좌좀 감성팔이 테크로 민족팔이 정치꾼들에게 이용이나 당하며 들쥐근성으로 한평생 살아가는거지.

    • 眞明行 2015.03.21 11:1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다크소울 / 위안부 모집비용은 모집업자에게 군에서 지불하도록 되어 있고, 현금이 아닌 보증금이 예탁된 계좌로 이체를 하도록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당연히 대외계정으로 잡히는 것이고요. 계정상 잡히는 금액의 규모가 아니라, 저쪽분들 주장처럼 위안부가 일제말에 급증했다면 계정상 돈 부친 규모도 급증했을테니 계정의 증가율을 봐야하는 겁니다. 반론도 좀 그럴싸하게 하시죠. 한심합니다.

  17. 제대로보자 2015.07.15 12:5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일본군대는 위안소를 운영하는 데 일정규칙이 있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입니다. 위안부 한 명당 병사들의 비율은 대략 1:100이었습니다. 요즘으로 말하면 1개 중대당 한 명 정도의 위안부가 있던 샘입니다. 그런데 대동아전쟁 상시 일본군의 숫자는 8-9백만 정도로 추산됩니다. 그리고 말기에는 최대로 충원되어 천만이 넘었다고 하는데 사망자도 많았지요. 천만을 가정해도 위안부의 최대숫자는 10만입니다. 그런데 위안부의 대부분은 일본여자였고, 일본여자로 이 비율을 맞추지 못했기 때문에 조선과 대만여자로 충원한 겁니다. 전체적으로 일본여자가 80%였기에 20% 즉 2만명이 조선과 대만 출신입니다. 그러니 조선여자가 1만명 정도였다라고 보는 것이 합당합니다.

  18. david yoo 2016.02.14 15:0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주인장이 일부러 그러는건가 아니면 단순한 실수 일까???? 왜 조금씩 팩트를 바꾸지?

    번역된 해당 비밀 문서를 잘 살펴보면, 당지는 해당 지역 즉 중국 장가구(張家口)를 뜻하고 장가구에서 일본 군인들을 위해 위안부 관련 업체들이 위안소를 설립했고 위안부의 수입을 신청했는데 송금 발송지(일본)에서 발송하는 금액의 3배를 당지(장가구)에서 해당 업체들이 은행에 먼저 비치해야 일본에서 송금된 금액의 수령이 가능한데, 너무 높은 금액으로(수령액의 3배) 비치가 불가능하기 때문에 이 규정을 제거하든지 낮쳐주기 바란다는 내용이다. (2번 내용) 난독증 있는 넘들은 차근 차근 잘 읽어 봐라.


    현금까지 (일본)군 전용의 위안소를 위한 수배(手配)는 이루어지지 못했었는데 근래에 와서 군의 요구에
    부응하여 당지의 업계에서는 1 개소를 설립했고 위안부의 수입을 신청했다. 그러기 위하여 다음과 같은
    조치를 바라고 있다
    1) 송금총액의 허가 인준
    2) 송금 규정에 의하면 당지에서는 송금액의 3배의 금액을 (은행에) 비치하여야 된다. 그러나 현 상황하
    에서 당지의 업체들이 이러한 자금을 축적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고 함으로 이 규정을 제거하든지
    경감시키는 방책을 고려하여 선처해 주기를 우리는 바라고 있다.


    조선에서 중국이나 기타 해외 등지로 위안부를 내보냈을 경우 업자들에게 들어오는 송금액이 있었을 것이고 이 송금액은 고스란히 은행 송금환 계정에 잡혀있을 것이다. 따라서 이를 추적하면 국내 학자들이 추산하고 있는 최대 20만명의 위안부설은 "장군님 뻥치신다" 수준으로 간주해도 무방할 듯 하다.


    1. 그 당시 조선에서 해외로 위안부를 보냈을 경우 일본 본토에서 보낸 송금 기록이 어딘가 남아 있을 것이나 그 송금이 조선으로 유입됐다는 근거는 무었인가? 업자들이 위안부를 데리고 간 해외에서 수령한게 아니라 조선에서 수령했다는 근거는 무엇인가?

    2. 저 금액이 단순히 위안부 1인당 모집하기 위해 쓰여진 금액이 아니라 다른 부대 비용도 포함되어 있다면 어떻게 분리해서 계산할건가? 왜 업소 마다 5000 - 15000엔 까지 3배까지 차이가 날까?? 이런건 안 궁금하지?


    3. 해당 문서를 보면, 업체마다 요청한 금액이 이상한게 아직 위안부들을 데려오기 전인데 어떻게 무슨 근거로 산출해낸 금액일까? 만약, 이미 위안부를 구한 상태에서 산출해낸 금액이라면 저 업소에 포함된 위안부 들이 정상적인 절차를 거친 합법적인 일본 위안부일까 아니면 각 식민지에서 강압적으로 송출된 위안부인가?


    4. 일본의 경우 그 당시에 선진국중의 하나 였으며 이미 1910년 부녀매매금지에 관한 국제조약과 1921년 부인 및 아동의 매매금지에 관한 국제조약에 가입을 한 상태였는데, 이런 불법적인 행위에 관한 자금을 기록이 고스란히 남을수도 있는 금융권을 통해서 합법적으로 보냈을까?? 만약, 그랬다면 그런 기록들이 온전히 남아 있거나 공개 될수 있을까?





    • 眞明行 2016.02.20 20:5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뭐래니?

      당발송금, 타발송금 뜻 모르면 답을 달지마세요.
      1938년~1942년 대장성이 개정한 해외송금규정은 읽어보고 온거?
      기가차서 하나하나 댓글 달기도 짜증나네.

  19. 병신 2016.02.25 09:1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20만명은 13개국에서 동원된 위안부 숫자입니다.
    병신새끼..에휴..
    뉴라이트 깨시민인 척 하는 게 더 무섭네.
    역사 바로보기는 그렇게 하는 게 아닙니다.

    • 2016.02.25 21:08  댓글주소  수정/삭제

      누가 그래~? 20만이 존 세계인이라고

    • 眞明行 2016.02.26 01:2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군위안부 총수에 대한 학자들의 의견

      千田夏光 8.4만 (이중 조선인은 6.5만)
      金一勉 20만 (이중 8~90%는 조선인)
      秦郁彦 6만~9만
      吉見義明 5만~20만
      板倉由明 3만
      上杉千年 4만~6만
      林博史 수만~수십만 (위생콘돔 배분으로 추계)
      高木健一 10만~20만
      鄭鎭星 8만~20만 (절대 다수는 조선인)
      蘇智良 30만~40만 (조선인은 10만~20만)
      G.힉스 13.9만 (700만명에 50:1로 계산)
      C.S.soh 7만~20만 (80%는 조선인)

      20만명이 13개국에서 동원된 위안부수라고?
      저 중 절대다수는 조선인이라는데? 그럼 뭐가 달라져?
      누가 병신인지 이제 잘 알겠으면 꺼지렴.

    • 2016.03.05 18:44  댓글주소  수정/삭제

      ㅋㅋㅋㅋㅋㅋㅋㅋ 위안부 20만이 전세계 13개국 총합 와 진짜 정말로 웃겼다 이런 개새끼들이 귀향보고 팝콘뜯나며 양아치짓 하겠지 아마?

  20. ㄻㅄ 2016.03.10 14:1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http://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49628
    이거라도 보고 와라.
    20만명은 학자들마다 주장이 다른 부분인데 지가 본 게 팩트인 것마냥ㅋㅋㅋㅋ
    글 병신같이 적어 놓고 좆도 안 되는 반박하는 꼴 좀 보소
    '설마 이 많은 인원을 돈도 안주고 그냥 납치나 유괴로 데려왔다고 하진 않겠지?'
    크 뉴라이트님 무서워서 지리겠습니다ㅠㅠ
    당사자들이 말하는 건 구라고 니가 추측하는 건 팩튼가요??

    • 2016.03.20 17:55  댓글주소  수정/삭제

      우우우우우 우리 할머니 명예를 훼손하였단 말이냐아아아아아^^

    • 2016.03.20 17:56  댓글주소  수정/삭제

      할말이 없으니 다큐 들이대면서 욕만^^ 제발 위안부 관련해서 책이나 좀 보고 오지?

  21. 다음 이용자 2016.04.24 16:5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멍청이 일본은 고용한게 아니라 납치하고 강제로 끌고간거다! 다른 나라까지 합쳐서 20만명이고~
    5 세 소녀까지 위안부 ... 일제 강제 동원의 증거 나왔다 2014 년 02 월 10 일 08시 35 분 [ⓒ 중앙 일보 / 중앙 일보 일본어 버전] comment 16 share mixi 일본군이 제 2 차 세계 대전 당시 위안부를 강제 동원한 사실이 문서를 통해 확인되었다. 또한 위안부 관련 기록에 대한 유엔 교육 과학 문화기구 (유네스코) 세계 기억 유산 등록도 추진된다. 성균관 (성균관) 대학 동아시아 역사 연구소의 한 · 혜인 연구원은 8 일 중국 상하이 사범 대학에서 열린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위한 한중일 학술회의'에서 상하이党案館 (정부 기록 문서 실)에 소장되어있는 「시민 (중국인) 楊水 길이가 우라 카미로 6 번지에 개설 한 위안소 상황에 대한 이슈 "(R-3-134)를 공개했다. 이 문서는 상하이 경찰 국장이 1939 년 2 월 25 일 시장에게보고 한 것으로, 楊水 길이가 위안소 개설을 위해 당시 상하이를 점령하고 있던 일본군 헌병대와 육군 경비대에 행정 허가를 받았다는 사실을 기록하고있다. 이 위안소는 "일본군 전용"이며 통역 및 미성년자 15 세의 여성을 포함한 7 명의 위안부가 있었다고 문서에 기록되어있다. 한 연구원은 "일본군이 직접 부녀자를 강제 연행 해 친일 중국 업체를 통해 위안소를 개설 한 공문도있다"며 "일본군이 중국의 괴뢰 (괴뢰) 정부를 이용하여て 군 위안소를 개설하고 관리하는 제도를 만들었다는 사실을 확인 한 것 "이라고 밝혔다. 샤베이 남경시 당 案 館 책임자도 "일본 괴뢰 정부 위생국이 작성한 기록은 위안부의 정기 신체 검사의 내용이 상세하게 기재되어 일본군이 중국 기업의 사무실과 3 층 주택도 빼앗아 위안소로 활용했다는 자료와 이에 대한 시민의 진술이 포함되어있다 "고 밝혔다. 이날 회의에 참가한 일본의 후지 나 소우 · 大阪産業大 교수는 "위안부 문제는 여성의 잔혹한 인권 침해이며, 보편적 인 인류의 양심에 관한 문제 다. 최근 상황이 최악으로되어 있지만 일본은 당연히 사과하고 반성해야한다 "고 지적했다. 이번 회의에서는 중국인 위안부의 숫자가 한국인 위안부 (최소 5 만명에서 최대 29 만명)보다 많은 최대 30 만여명에 달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회의 참석자들은 한중일 협력은 물론 인도네시아 · 필리핀 · 대만 · 네덜란드 등 국가의 위안부 문제를 연구 한 각국 연구자들과 국제 연대 강화를 모색 해 나가기로했다. 그들은 또한 위안부 관련 기록의 유네스코 세계 기억 유산 등록을 추진하기로했다. 이에 앞서 한국 여성 가족부도 지난달 일본군 위안부 관련 자료의 현황을 조사하고 2017 년에 유네스코 세계 기억 유산 등록 신청 준비에 들어가면 밝혔다.


근.현.대.사 2012.01.02 01:00
고대의 역사를 보면 처녀를 권력자의 부장품과 함께 순장하거나 또는 신전에 제물로 바치는 행위를 반복해 왔다. 단순한 인간의 생명이 아닌 처녀를 희생하는 행위 이면에는 종족번식과 관련된 인간의 욕망을 읽을 수가 있는데, 여성의 정조가 이들에게 어떤 의미였는지 쉽게 알게 해준다. 반만년(?)의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우리나라의 경우 삼국시대부터 이미 처녀를 공출하여 중국에 보내왔다는 기록이 있다.

외세의 강압에 의한 처녀공출의 역사는 어느 민족에게나 아픔일수 밖에 없고 수치의 역사였을 것이다. 위안부로 희생된 여성들의 처녀성을 강조하는 이유가 이런 집단적 수치심을 자극하고, 내재된 역사적 트라우마를 동조화하려는데 있지 않나 하는 의구심이 든다.

일본인 위안부는 매춘녀 출신이 많았는데, 조선인 위안부는 대부분 순결한 미혼 처녀들이었다는 식으로 논리를 전개한 뒤 그 죄질의 경중을 상대화 하려는 시도는 창녀에 대한 강간이 부정되었던 19C의 전근대적 사고방식과 무엇이 다른지 모르겠다.

예컨대 이런 식의 자료를 들고 와서,
사용자 삽입 이미지
이런 식으로 무리한 논리 확장을 시도한 후
사용자 삽입 이미지
일본은 성병의 예방을 위해 조선의 미혼녀를 위안부로 집중 동원했다는 결론을 도출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군의관 麻生徹男의 보고서에 등장하는 고작 80명 내외에 불과한 조선女들이 상해에 설치된 17군데 위안소를 대표하지도 않으며, 이러한 제한된 샘플의 표본만으로 일군 상층부가 조선여성의 "순결성"과 "상품성"을 인정했는지는 확실치 않다.

위의 주장이 설득력을 가지려면 조선인 위안부가 일본인 위안부보다 화대가 비쌌어야 하는데, 현실은 그렇지 못했고 천진(天津)의 육군병원에서는 麻生徹男의 보고와는 정반대로  조선인 위안부의 성병이 심각하여 주의를 요한다는 자료도 보인다. 天津陸軍病院特設分院,, 杭州陸軍病院,, 蘇州陸軍病院에서 공동으로 성병에 감염된 장병들을 조사한 결과, 조선女에게 성병이 감염된 경우가 4,403명, 일본女에게 감염된 경우가 2,418명, 중국女는 3,050명으로 조선女로부터 성병이 감염된 경우가 가장 많았다는 것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이 조사에의 비고란에는 '조선女들의 활약이 타지 출신을 압도하므로 장래 전지에 참고를 요한다'는 견해가 첨부되어 있다. 이 견해가 조선女들의 활약을 칭찬한 얘기인지, 아니면 성병의 감염에 유의하란 얘기인지 판단이 어렵지만, 적어도 조선인 위안부들이 일본女에 비해 순결한 처녀들로 구성되었다는 식의 주장은 설득력이 없다고 해야 할 것이다.

이와 비슷한 조사보고로 보병 제224연대본부 의무실의「1939~1942년도 위생관계 참고서류철(1/3)」중 1940년에 작성한 성병에 관한 제 통계표에 따르면, 일본女의 경우 1,427명 조선女의 경우 2,455명, 중국인은 1,535명으로 조선女의 성병 감염률이 타지 출신을 압도하고 있다. 이 조사보고서에도 '이번 사변에서 반도 부녀의 진출이 활발하나 병원(病源)을 가진 자가 많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일부 자료의 기록만을 가지고 일군 상층부에서 조선의 미혼처녀들에 눈독을 들이게 되었다는 식의 의도까지 간파하는 연구자의 놀라운 창작력에 머리가 숙여지는 바이다.

Posted by 眞明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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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에드워디안 2012.01.02 11:3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성병에 감염된 국적 불명의 위안부도 3700여명이 넘었다니, 이들은 주로 어디 출신이었을지가 궁금해지네요.

  2. 강희대제 2012.01.02 16:1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잘 읽었습니다.

  3. 2012.01.02 16:2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 MAUS.K 2012.01.02 22:20  댓글주소  수정/삭제

      근거없이 자기비하적인 역사관을 갖거나 상대방에 대한 지나친 동경심에 정체성을 잃는 사고도 그다지 바람직 하지는 않다고 봅니다. 다만 제 자신부터가 조선까나 일빠로 불리는 판국에 이 부분에 대해 한마디 거드는 것은 괜한 참견이 될 거 같습니다.

  4. tex2100 2012.01.03 00:3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무조건 포스트 콜로니즘, 종속 이론, 민족주의 역사관으로 봐라 본다고 해서 해결되는 문제가 아닙니다. 위안부 문제는 조선인 스스로가 한 면이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나 그들이 알겠습니까? 일본이나 서구 같은 제국주의 국가 앞에서는 조선 민중은 '힘 없는 약자'가 되는 겁니다. 조선인 스스로가 위안부에 공헌했다는 것을 무조건 인정하지 않은 체로요.

  5. 45acp 2012.01.03 05:0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일본 근현대사를 공부하면서, 그리고 일본이라는 나라에 3년 가까이 머물면서 느끼는 것은 일본이란 나라는 옛부터 사회적 약자에게 잔인하고 강압적인 나라였다는 것이었습니다. 패전 후 미점령군의 성욕 해소용으로 그쪽의 직업여성으로 수요가 모자라자 정부차원에서 도시로 상경한 순진한 자국의 처녀들을 단순여급이나 사무직, 영어를 배울수 있는 기회라고 속여서 모집해 위안부로 '헌상'해놓고도'다수 일본 여성들의 정조를 지키기 위한 용단'이었다고 주장한 기시 노부스캐의 개드립이 대표적 사례겠지요.
    자국민에게도 저따위로 대하는 인간들이, 식민지인들에게 '평등'하게 대해봤자 저모양이 아니었을까? 그리고 저런 일본의 지도층들에게 무턱대고 사죄와 반성을 논해봤자, '우리국민들도 똑같은 꼴을 당했는데 새삼스럽게 무슨?' 식의 모럴해저드적 대응만 돌아오는게 아닐까란 생각이 들때가 많습니다.(그런 식의 모랄 해저드가 일본인들의 '우리도 전쟁의 피해자'라는 우리입장에서 이해하기 힘든 드립으로 발전하지요)
    그런 상황에서 어설픈 팩트로 그들을 비난해 봤자, 그들의 모랄해저드만 공고히 할 게 뻔하기에 좀더 객관적 차원에서 위안부 문제에 접근하려는 MAUS.K님의 시도도 분명 가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나아가 위안부 문제는 제국주의 국가의 식민지에 대한 성적 유린문제만이 아닌 당시 일본사회자체에 내포되어 있던 약자, 여성에 대한 잔인함(1930년대에도 동북 시골의 10대 소녀들이 빚 대신에 유곽에 팔려가거나 끌려가는게 비일비재하던 곳입니다.)에까지 시각을 확대하고 그 잔인함을 타 민족에게까지 행사했다는 측면에서 접근해 보는 것은 어떨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 에드워디안 2012.01.03 06:34  댓글주소  수정/삭제

      '사회적 약자에게 잔인하고 강압적인 나라였다'

      그런 측면에서 바라본다면, 한국도 일본을 떳떳하게 비난할 수 있는 입장은 아닙니다. ...1930년대 대공황기 일본 농촌의 '딸 지옥' 현상을 언급하셨는데, 당시의 (전세계적) 기준에서 '인권'이나 '휴머니즘'에 신경을 쓴 정부가 얼마나 존재했을지 의문입니다. 전체주의가 기반을 잡았던 독일과 소련이야 말할 것도 없고, 프랑스 같은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조차 공개처형 제도가 버젓이 유지되고, 자국 출신의 죄수들을 남미 오지로 유배보내 반쯤은 노예마냥 부려먹으며, 인간 이하로 취급하던 실정이었는데요. 북아프리카 일대의 '매춘 제국'은 또 어떻구요?

      지금도 유럽(특히 계급의식-학벌이 정관계를 지배하는 영국과 프랑스)이나 일본 지배층의 특권의식, 엘리트주의, 대중 멸시의 감정은 상당한 수준인 것으로 알려져 있습죠. 권력이란 암세포에 감염된 위정자들의 만행과 추태는 동서고금을 불문, 정도와 스케일의 차이만 제외하면 어디서나 마찬가지인 셈입니다.

    • 45acp 2012.01.03 07:41  댓글주소  수정/삭제

      에드워디안 님의 답글을 보니 확실히 제 표현이 좀 애매한 부분이 있었다는게 느껴지는군요.
      다만 일본은 자신들의 과오에 대해 당시 전세계 어디서나 비슷하지 않았느냐? 그런데 왜 우리만 갖고 물고늘어지느냐 식의 경향이 강하기에 일명 '어그로'를 끄는 측면이 강하다는 생각입니다.
      그리고 선악관이 우리들과는 상당히 다르다는 것도 약자에 대한 잔인함으로 연결되는게 아닐까란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우리야 좀더 감정적이고 즉물적인 정의감에 의해 선과 악을 구분하는 경향이 강하지만, 일본인은 그것이 질서냐? 질서에 반하느냐?라는 기준으로 선과 악을 구분하는 경향이 강하더군요 일명 和에 부합하냐 부합하지 않느냐는 것이지요. 따라서 전체적인 질서의 안정에 별 영향이 없다면 소수자나 약자의 희생은 그냥 넘어가고, 심지어 전체의 안정에 폐가된다는 이유로 저런 부조리에 대한 항의조차 묵살하는 경향도 느껴집니다.
      뭔가 사람을 위해 질서가 존재하는게 아니라 질서를 위해 사람들이 존재 하는 것같은 느낌까지....
      후쿠시마 원전 문제를 다룬 일본 정부나 피해지역 외의 일반 시민들의 모습을 보면 그런경향이 더욱 강하게 느껴집니다. 한국인들은 광우병 소동같은 과장된 선동에 너무지나치게 잘 혹하는 반면, 일본인들은 평소의 일상 다시말해 和가 깨어지는게 두려워 자신들이 요구할수 있는 정당한 요구까지 참고 인내하며, 당장 자기들 생활에 안정만 해치지 않는다면 후쿠시마 원전 문제같은 것도'모르는 게 약이다' 식으로 부조리를 방치하는 경향이 강하더군요.
      이런 느낌은 지진이래 1년가가운 시간동안 더욱 강하게 느껴졌고, 일본의 지인들도 저의 저러한 지적에 어느정도 동의하더군요. 저런식으로 문제점에 대해 안다해도 현재로선 바꿀 길이 없어 보인다 식의 자조섞인 동의 였지만......
      물론 저의 경우에도 한정된 인간관계와 경험만으로 일본을 정의하는 오류를 범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다만 저런 모습을 보면서 왜 우리와 일본사이에서 과거사 문제를 두고 왜 계속 평행선상태인지는 조금은 감이 오는 것 같습니다.

    • MAUS.K 2012.01.03 11:08  댓글주소  수정/삭제

      저 역시 에드워디안님의 말씀처럼 그게 일본만의 문제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국민 개개인의 인권과 가치보다는 국가의 이익이나 대의명분을 내세워 당위성을 부여하는 경우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참 많죠. 다만 일본의 경우 관이 주도하는 위기극복의 역사가 유난히 길었던 탓에 국민들의 자율성보다는 타성에 의존하려는 경향이 더 강한듯 합니다.

      일사불란함과 침착함은 그래서 때로는 경외의 대상이 되기도 하면서, 사회의 내재적 발전을 저해하는 요소로 작용하는 양면성을 가지고 있죠. 따라서 일본이라는 국가적 특성을 이해하고 외교적 갈등이나 문제를 해결하자는 45acp님의 취지에는 일부 공감하는 바입니다.

    • 백범 2012.01.05 23:24  댓글주소  수정/삭제

      일본이 '일본은 자신들의 과오에 대해 당시 전세계 어디서나 비슷하지 않았느냐? 그런데 왜 우리만 갖고 물고늘어지느냐 식의 경향이 강하다'면

      한국인들은 '자신들의 잘못이나 과오를 언급하는 것조차 허용하지 않고, 만약 그것을 허용하면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거나, 불평불만 많은 사람 정도로 치부해버리고 매장'시키려 듭니다.

      많은 한국인들은 피해자가 아니라 피해자인 척 하는 비열한 사기꾼들이 대부분입니다. 그리고 정말 중요한 것은 쉬쉬 하고 숨기고, 외부인 바가지씌우는데 명수들이지요. 솔직히 한국인들은 피해자라고 자칭할 자격도 없습니다.

      조선인 인신매매나 직업소개 업자들이 위안부로 팔아먹거나 가족, 친지들이 속임수를 써서 팔려간 여자들도 많은데, 그런데도 100% 일본만의 잘못인 것처럼 사실을 호도하는 것부터가 참 쓰레기같고 무책임한 발상일 뿐이지요.

  6. 2012.01.04 06:1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 MAUS.K 2012.01.05 14:31  댓글주소  수정/삭제

      삿쿠(콘돔)착용이 의무화된데다 삿쿠를 착용하지 않은 장병은 관계를 거부할 수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위안부는 매주마다 검진을 받았고 성병감염이 확인되면 격리조치가 되었다니 무한정한 감염자를 양성하지는 않았겠지요.

      물론 하루 최대 100명까지 상대해야했다는 어느 할머니의 증언은 말도 안되는 소리구요. 24시간 내내 식음을 전폐하고 스섹만 한다고 해도 1인당 14분 내에 처리를 해야 가능한 일이지요. 통상은 10인~15인 내외였던 것으로 조사되고 있습니다.

    • 2013.05.07 06:21  댓글주소  수정/삭제

      비밀댓글입니다

  7. 2012.01.05 23:3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8. w 2013.05.07 05:3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보통 표본 조사는 만명이면 만명 일일이 다 할 수 없고 무작위 추출로 조사합니다.
    위에서 언급하신 사료 외에도
    일본군 고위층의 1938년 언급 등이 있는데 대충 내용은 이렇습니다
    -위안부는 어릴수록 좋은데 내지인(일본인)보다 조선인이 어리고 초심자라 흥미롭다-(일본군 관료의 이름은 정확히 생각나지 않는군요)
    이 외에도 같은 말(성관계 경험이 없는, 어린 여자)이 반복되어 증언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물론 일본인 여자는 모두 매춘부 출신에 늙은 여자였고 조선인 여자는 어리고 성경험이 없는 여자만 존재했다!라고 단정지을 수는 없을 것입니다만
    여러 일본군들의 증언과 자료, 보고서를
    보았을때 전반적으로 조선인 여성은 20세 이하의 성경험 없는 처녀가 "대부분"이고
    일본인 여성은 "대부분" 매춘 경험이나 성경험이 있던 20세이상의 여자이다. 라고 유추할 수 있을 것입니다.

    매춘 경험이나 성 경험등으로
    조선인과 일본인을 구분 짓는 것은
    일본인들은 조선인이 순결해서 위안부로써 선호했다고 말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많은 일본군들, 당시 위안부들의 증언을 보면)조선인 여성은 취업사기로 온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에 어린 여성이 많고, 성경험이나 매춘 경험이 없는 여성이 대부분이었던 것과 다르게
    위안부로 일본인 여성들은 매춘이나 성경험이 있으니 자발적으로 왔을 가능성이 있으니 엄연히 조선인위안부와 일본인위안부는 그 문제의 성격이 다릅니다.

    첫번째,왜 일본인 여자보다 조선인 여자의 가격이 낮았냐?라고 물으신다면
    그 시절은 일본 아동 노동자가 조선 성인 노동자보다 많은 임금을 받던 시절인데, 내지인보다 식민지 여성의 몸 값이 더 높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이해할 수 없습니다. 성병 유무로 가격이 책정되거나 성관계 유무로 가격이 책정된다고 착각하신건지요...

    두번째,조선인 성병 비율이 타민족보다 높았던 이유는?

    먼저, 조선인의 성병 검사가 언제 이루어졌는지 봅시다.
    조선인은 성병에 걸린 사람이 극히 적었다-라고 말하는 군의관의 조사는
    조선인 여성이 처음 위안소에 왔을 때입니까? 조선인 여성이 위안소에서 생활하고 있을 때입니까?

    즉, 당신은 조선인이 위안소에 오기 전부터 성병 보유자인지, 아닌지,
    위안소에서 옮았는지, 위안부 생활에서 걸리게 된 성병인지 하는 여부를 전혀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예를 들어
    조선인 여자들이 처음 위안소에 왔을 때 하는 성병 검사를 통해서 조선인은 성병 보유가 극히 드물고 건강체가 많다는 당시 일본인 군의관의 언급이 있습니다만
    조선인에게 성병을 옮은 일본 병사 비율을 통해 위안소에 존재한 조선인의 숫자는 50%으로 통계된다(나머지는 중국인,일본인 순서)라고 조사 발표한 일본인 교수가 있습니다.

    이럴 경우, 보통
    아-성병이 없었던 조선인 여성이 위안소 생활을 하는 동안 성병이 걸렸구나,라고 생각하는 것이 보통 아닐까요?


    마찬가지로 일본군들의 증언을 보면
    중국에 있는 위안소들에 있는 여성들은 대부분 조선인이고 90%가 조선인이거나 100%가 조선인이었다는이야기들이 많습니다.

    예를 들어 위안소에
    조선인 1000명이 있고 일본인 10명이 있습니다. 조선인에게 성병 옮은 일본인이 많을까요? 일본인에게 성병 옮은 일본인이 많을까요?

    만약 조선인과 일본인이 각각 100명씩 있는데 조선인에게 성병을 옮은 일본군은 60명인데 일본인에게 성병을 옮은 일본군이 20명이면, 조선인이 순결하지만은 않다는 결론이 나올 수 있습니다만

    위안소에는 조선인이 대부분이었으므로
    당연히 타민족보다 성병 보유 가능성이 더 높을 수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위안소에 조선인이 몇명 있었는가 대략적인 비율로 통계한 자료는
    위에서도 언급했다싶이
    조선인 여성을 상대해서 성병에 걸린 병사 숫자, 일본인 여성을 상대해서 성병에 걸린 병사 숫자, 기타 중국 여성을 상대해서 성병에 걸린 병사 숫자로 조사했습니다.

    그 말 뜻은 무엇이냐하면,
    위에서도 말하고 있습니다만
    만약 위안소에 50명의 조선인과 50명의 일본인이 있는데 조선인한테 전염된 일본군이 60명이고 일본인한테 전염된 일본인이 20명이라고 말하면 글쓴이님의 주장처럼 조선인은 순결하지만은 않다!라고 말할 수 있겠지요.
    하지만
    당시 위안소에는 90명의 조선인과 10명의 일본인이 있습니다. 똑같은 환경에 처해져있고 성병은 서로간에 전염됩니다.
    이런 상황에서 조선인으로부터 전염될 확율이 높은건 당연한건데 이런 배경은 전혀 고려하지않고 성병의 통계만 보고 기존 자료를 부정하는 행위는 비이성적으로 보이네요.

    순결한 여성을 데리고 왔다-라고 하는 주장에 반박을 하고싶으면, 위안소에 오기 전부터 성병에 걸렸었다드라, 하는 것을 증명해야 합니다만 글쓴이님께서 위안소 생활에서 걸리게 된 성병 통계와 혼동하고 있어 도대체 무엇을 말하고 싶어하는지 의문입니다.

  9. ㅎㅎ 2014.01.16 15:2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한국말잘하는 극우 일본인이라고 믿을게요 정말 같은 한국인이라면 이런블로그를운영하는것 자체가부끄러워질것같아요 이년전 글인데 지금뉴스에 나오는 증거들 일본도부인못하는 수많은 비인간적인만행 사진자료들 일본도반박못하는것 어디한번반박해보시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