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기정군의 개선 감상담(談)...「孫基禎君의凱旋感想談」在滿朝鮮人通信,  19p
마침내 마라손 제패의 위업을 완성하야 우리 스포츠 일본의 의기(意氣)를 세계에 선양한 손기정군은 동료이자 친구인(僚友) 남승룡군과 의좋게 우리(我) 육상대표 48명과 아들의 개선을 기뻐하여 우정조선서 상경, 고베까지 환영나온 남승룡군의 부친 기타 출영자와 한가지로 지난 17일 빛나는 경성에 개선하였다.

도중까지 마중나온 기자에 대하여 감격의 눈물을 어리면서 양군(兩君)은 말하기를 "고국을 떠나서 일본의 위력을 비로소 깨달았습니다. 우리 일본인이 베를린 거리를 어깨맞춰 걸어갈 깨에 거기 사람들은 길을 피하여 주는 형편이었습니다. 재류(在留) 중인 우리나라 사람들(日本人)의 지성을 다한데 대하여는 오직 감격하였을 뿐입니다.
 
울면서 응원하고 울면서 뛰던 때의 기분은 전혀 말로서는 피력치 못하겠습니다. 처음부터 이길것으로는 생각하였습니다마는 이기고나서 가만히 갱각을 하여보면 전혀 여러분의 성원하여 주신 혜택으로 오직~ 감사이외에 더 사뢰올 말씀이 없습니다."


뭐 당시에는 다 이런 식이었다고 본다. 지금 시각으로 보자면 신문기사 한두개를 가지고 사람 하나 몹쓸 인간으로 만들기는 식은 죽먹기보다 쉬운 일이다. 손기정 선수의 우승 후..조선에는 어떤 일이 일어났을까..언론에서는 있지도 않은, 또 하지도 않은 무용담과 미담(美談)들을 창작해서 센세이션을 일으키기 위해 광분을 했다.

손기정 선수를 위하여 무슨무슨 체육관을 건립한다는 둥, 전국 각지에서 성금이 신문사로 답지되어 손기정 선수에게 전달되었다는 둥, 평생 무료 수선을 약속한 양복점, 구두수선점이 나타나고, 심지어는 무슨 자기들이 만든 보약을 먹고 손기정 선수가 우승을 했다는 약장수들까지 등장했다. 그러나 우승 후 손기정이 실제 혜택을 입은 것은 육영회에서 지급하는 소소한 장학금이 전부였다. 나머지는 손기정 본인도 모르는 그냥 다 뻥이고..

요즘 우리가 흔히 접하는 언론들의 삽질과 크게 다를 바가 없었다. WBC나 월드컵 같은 국제대회가 있을 때마다 야구장을 짓는다, 축구장을 짓는다 말만 많았지 뭐 하나 제대로 실천하는 꼬라지를 거의 본 일이 없는터라.. 세월이 흘러도 이런 한심함은 유구하다. 당시 이러한 언론들의 오버질과 세간의 유언비어로 말미암아 실의에 빠진 손기정 선수가 한때 운동을 중단했다고 한다.

촉망받는 스포츠 유망주들이 언론들의 지나친 관심으로 말미암아, 소리도 없이 사라져간 사례를 너무 많이 봐왔는데 그때라고 다르지는 않았던 것 같다. 문제는 이런 손기정 선수의 유명세를 이용해 국내 언론은 물론이고 일본과 만주의 친일단체까지 가세하여 자기들 편할 대로 우려먹었던 것 같다.

위의  在滿朝鮮人通信 기사의 사례도 그런 선상에서 볼 수 있다. 在滿朝鮮人通信은 만주에서 악명높았던 친일단체인 興亞協會에서 발간한 잡지다. 위 기사는 두가지 가능성이 있다. 하나는 취재기자가 하지도 않은 말을 소설썼거나, 아니면 진짜로 저런 말을 하긴 했는데, 분위기상 어쩔 수 없이 마음에도 없는 말을 했거나일 것이다.

문제의 기사 속에 등장하는 京城 환영회가 개최된 것은 사실이므로 아주 날조는 아니겠지만..보는 사람 여하에 따라 이 기사를 악의적으로 사용한다면, 어떻게 될까? 일제시대, 특히 일제말 신문이나 잡지에 올라간 친일기사를 그대로 믿을 수 없다고 한 이유도 바로 여기있다. 하버마스도 언급했듯이 평면적으로 드러난 자료들을 근거로 죽고 없는 사람을 멋대로 재단하는게 후손의 특권은 아닌 것이다.

덧, 여담이지만 손기정의 우승 후 시상식때 태극기 대신 일장기가 올라가 마음이 아파 눈물을 흘렸다든가, 의도적으로 일장기를 가렸다든가, 하는 얘기들은 후일 누군가에 의해 윤색된 흔적이 역력하다.(설령 그게 후일 본인의 고백이라 할지라도 말이다) 당시 국내신문, 잡지 기자들의 인터뷰들을 살펴보면.. 그는 아무 생각이 없고, 시상식 당시 단지 돌아가신 아버지 생각만 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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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眞明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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